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잘 사는 진리 Feb 24. 2024

진짜 현실적인 일잘러의 다섯 가지 특징

일잘러가 되고 싶어?

 일잘러?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면 된다. 일을 못하는 사람과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득이 되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일을 못하면 같이 일하기 싫다. 그럼, 일은 잘하는데 인성이 나쁘면? 아무리 일을 잘해도 인성이 나쁘면 그 사람에게 일잘러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지 않는다. 기분학상 긍정적인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지 않으니까, 그 말이 아깝다 이 말이야! 가장 공적인 '업무'에 가장 사적인 '사람'의 개념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잘러는 일도 잘하고 대인관계도 좋아서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같이 일하면서 즐거웠던, 앞으로도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의 특징을 떠올려 보았다.


 첫째, 안 된다고 하는 법이 없다. 나는 회사의 짱이 아니다. 회사는 내 돈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대충 책상 앞에 앉아 있기만 해도 일개 직원을 위한 월급은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 뚱하게 군다면? 뭘 해보자고 했을 때 안 된다고만 말한다면? 하기 싫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최소한 '어려울 수도 있는데, 알아보고 말씀드릴게요!' 정도만 해줘도 땡큐다. 그리고 경험상 요구조건만 명확하게 전달한다면 안 되는 것은 없기 때문에 어차피 할 일, 서로 기분 좋게 해야 훨씬 좋은 결과물이 군더더기 없이 나온다. 물론 나는 그토록 긍정적인 업무 파트너였냐고 물어본다면, 아니었기 때문에 정신 수련을 해야 하지만.


 일잘러의 두 번째 특징은 요점을 잘 파악하고 잘 전달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문제 정의를 명확하게 한다. 회의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래서 어쩌란 거임' 하는 생각이 두둥실 떠오르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지금 하는 이 이야기가 자기 고백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도 그런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공상적인 발산을 하며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좋은 파트너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의식적으로 목적을 명확하게 하려고 하고, 요구조건을 명확하게 하려고 한다.

 새로운 서비스 오픈을 위해 회의를 하는 자리라면,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어떤 사전 조사를 왜 해야 하는지를 3가지 정도로 정리하고, 회의를 마치기 전에 한 번 더 언급한 후, 그 내용을 메일로도 정리해서 보낸다. 사실 디자이너나 개발자와 일하다 보면 '요구조건을 명확하게 해 달라'는 요구조건이 명확하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연습하고 훈련하게 되기도 했다.


 일잘러의 세 번째 특징은 혼자만 앞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려워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 생각이 오락가락하기도 했다. 어떤 일은 의사결정권자들의 요구사항은 급진적인 것에 반해, 실무자들의 온도는 낮아서 동료 실무자들을 설득해 가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 비효율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이야기해 주는 건, 그렇게 나아가서는 결국 애써 일한다 해도 일하는 방식이나 문화가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상무님이 늦다고 꾸짖어도, 실무자들이 툴툴대도, 같이 가려고 노력하고 설득해야만 내가 한 일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난 영웅도, 계몽가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무엇인가 싶었지만, 함께 가지 않은 프로젝트는 소위 말하는 광을 팔고 마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의사결정권자도 모조리 바뀌고 유관부서의 팀장, 담당자도 바뀌면서 나만 덩그러니 남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결과물을 만들어낸 거냐' 하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영웅이고 나발이고, 단지 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거라고 믿기 위해 같이 가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공범을 만드는 거랄까!


일잘러의 네 번째 특징은 진행 상황을 틈틈이 공유하는 것이다. 이건 내가 예전 팀장님께 지적받은 사항이기도 하다. 진행상황을 가볍게라도 좋으니 자주 공유해 달라 하셨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엥? 나 완전 잘 공유드리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피드백을 받으니, 그 '가벼움'이란 도대체 얼마나 가벼운 것이어야 하는 건지 가늠이 안 돼서 어려웠다. 미팅 한 번 했다고 공유를 드리는 건 왠지 '저 열일하고 있어요, 팀장님! 잘 보고 계시죠?' 하는 오글거리는 느낌이기도 해서 뭔가 변곡점이 생기거나 이슈가 생길 때만 공유를 드렸는데, 공유를 더 자주 해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팀장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실 수밖에 없다. 일이 잘 돌아가고 있는 건지 담당자가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파악이 어렵기도 하고, 큰 진척이 일어난 후에야 보고를 받는 경우 팀장님의 의사와 다르게 일이 진행되는데도 손 놓고 있었던 셈 되니,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라도, 퇴근 전 5분이라도 간략히 내용 전달을 드리는 게 좋다.

전략 수립 업무를 하면서 또 하나 느꼈던 것은 이렇게 진행 상황을 의사결정권자께 틈틈이 공유드려야 그 전략을 대내외로 선언하실 의사결정권자와 실무자들 사이에 괴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고 받으실 분이 귀찮으실 건 모르겠고, '이렇게 반영하려고 하는데 이게 맞나요?'라고 확인을 하지 않으면 끝에 가서 '야, 내가 언제 이렇게 하라고 했어'라는 피드백이 돌아오고 팀장 이하 실무자들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하면서 부랴부랴 밤샘 작업을 하게 된다. 한 번씩 크게 혼나느냐 조금씩 자주 혼나느냐 양자택일인 게 슬프긴 해도, 한 번씩 크게 혼나기 전에 삽질했던 걸 생각하면 차라리 조금씩 자주 혼나는 게 나은 것 같다.


일잘러의 궁극은, 진짜 현실적으로, 의사결정권자와 합의된 사항, 아닌 사항을 명확하게 한다는 것이다. 솔직한 게 짱이다. 그래야 나중에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딴 말 안 하게 되고, 빙빙 돌아가지 않는다. 예산 다 확보된 척해봤자, 보고만 한 번 드리면 무조건 OK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해봤자 결국엔 뽀록이 나게 되어 있다. 오히려 의사결정권자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업무 파트너, 유관 부서 및 협력 업체 사람들과 솔직하게 나누는 게 낫다. 필요한 경우 의사결정권자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방법론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게 편하고, 빠르고, 정확하고, 유사시 덜 미안하다. 나와 만난 모든 사람과 모든 회사가 끝까지 좋게 좋게 함께 가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수 없는 경우도 많고 중간에 업무가 드롭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간혹 팀장님, 상무님은 생각도 안 하고 계시지만 내가 너무 해보고 싶은 일도 있다. 그럴 때는 팀장님께 귀띔을 드린 후 업체들을 만나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업무 담당자로서 어떠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귀사가 도움을 주셨으면 하는데, 작게 시작해서 성과 측정을 통해 보고를 드린 후 다음 단계로 확장해보려고 하니, 귀사의 색을 잃지 않는 선에서, 내가 상무님을 설득할 수 있는 예산 안에서 제안을 해달라'라고 커뮤니케이션한다. 입사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터무니없이 낮은 예산, 억지스러울 정도로 까다로운 요구 조건은 내 선에서 생략한 적도 있었다.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 있는 척하고 싶기도 했거든. 그러나 그런 것들이 결국엔 발목을 잡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직이 최고의 정책이라는 마음으로 그냥 다 이야기해버린다. 아님 말고. 나는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고 싶은데 더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분이 싫다 하시면 못하는 거지, 뭐.


여기에서 이야기 한 다섯 가지 말고도 근시안적으로 보지 않고 멀리 보고 일한다,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낸다 이런 것들도 중요한 특징이겠지만, 정말 현실적으로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위의 다섯 가지만 지켜줘도 '일잘러'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될 것 같다. 음, 쓰고 보니 나는 아직 일잘러가 아니긴 한데, 내가 본 일잘러들을 보고 깨달을 수는 있는 거니까! 그들과 함께 나도 일잘러가 되어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EBS다큐 '공부의 배신': 누가 이들을 불안하게 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