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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Apr 05. 2021

4년? 6년? 7년? 우리 연애의 셈법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면 어떻게 계산해?

 우리는 중간에 1 정도 헤어져있던 시간이 있고  시간을 전후로  2,  4년을 만났다. 누가 물어보면 어떤 때는 7년째 만나는 중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6? 7? 정도 됐어요'라고 하기도 한다.

 정작 우리는 그 숫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사연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이따금씩 이야기를 꺼낸다.

 "너네 커플 같은 상황이면 연애 기간을 어떻게 계산해?"

 당사자는 개의치 않는 썰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같은 사람인데 그냥 7년 만났다 해도 되지."

 "헤어진 기간이 3개월이면 모르겠는데 1년이나 되면 거의 다른 사람이랑 만나는 거잖아. 4년 만났다 하는 게 맞지."

 "그렇게 오래 만났으면 그게 그거니까 그냥 대충 처음부터 끝까지 합쳐서 7년이라고 해도 돼."

 "야, 그래도 양심상 중간에 헤어져있던 1년은 빼자."


  나름대로 맞는 말인  같다. 굳이 생각을 해보면 나는 개념과 실질  중간쯤에서 6년을 만났다고 하는  괜찮아 보인다. 오래 만났다는 것으로 우리 관계의 진정성을 드러내고 싶은 것도 맞지만, 우리가 다시 만나서 함께하고 시간을 보낼  있었던 것은  전의 2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연애


 남자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2년의 시간 동안 좋은 여자친구가 되려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했다. 남자친구는 나의 첫사랑이었고, 스물한 살의 나는 어리고 미숙했다. 남자친구는 바라만 봐도 좋은 나의 연예인이었고, 나에게 더없이 좋은 남자친구였다. 나는 소중한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옳게 사용하지 못했다. 내가 싫은 것도 남자친구가 좋다고 하면 따라서 좋다고 했고 남자친구의 생각에 맞게 내 취향과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려고 했다. 갈등이 일어나는 게 낯설고 싫어서 제대로 싸워본 적조차 없었다. 남자친구는 단 한 번도 나에게 본인의 생각과 취향을 강요한 적도 없고, 다르다고 해서 불만을 표한 적도 없는데 내가 그냥 그랬다. 그게 나의 첫사랑이 실패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당시 남자친구는 의경으로 복무 중이었고, 나는 3학년이어서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위기감에 미친 듯이 스펙을 쌓고 있었다. 하루 3-4시간을 자며  번에 교내, 대외활동을 다섯 개쯤 소화했고, 매주 2시간을 걸려 남자친구가 근무하는 곳으로 가서는 피곤해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나는  자체가 노력이라고 생각했고, 남자친구는 본인이 없는 바깥세상에 사는 나를 보며 불안해했다. 남자친구는  삶에서 본인이 없어졌다고 생각했고, 나는  자신이  삶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결국 남자친구는 뭐가 문제였던 건지  써볼  없이 의아한 상태에서, 나는 혼자 일방적으로 지친 상태에서 이별을 맞게 되었다. 사랑하는데  헤어지지 싶었지만, 남자친구도 나도 서럽게 울었다. 그날은 무슨 정신으로 나가서 지하철에 몸을 싣고 무슨 정신으로 기숙사까지 돌아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슬픈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물이  돈다.



이별의 시간


 이후 1년의 시간 동안 남자친구는 나에게 금기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학교 캠퍼스를 거닐다가도 예뻤던 우리의 모습이 떠올라서 울었고, 이별노래를 들으면서도, 사랑 노래를 들으면서도 울었다. 그 잘 먹던 애가 입맛이 없어서 3일에 한 번씩 끼니를 때웠다(그때는 지금보다 10kg쯤 덜 나갔는데, 유지하지 못하고 다시 포동이가 돼서 아쉽다ㅎㅎ).

 그러다가 남자친구가 복무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우리의 공통분모가 되는 동아리 활동 때문에 여차 저차 해서 다시 이야기를 하는 자리를 갖게 되었다. 우리는 같은 학부이기도 했고 같은 밴드 동아리이기도 했다. 각자가 동아리와 동아리 사람들에게 꽤 큰 애착이 있었고, 서로에게 동아리가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다시 만남을 약속했을 때 나는 꽤 슬펐다. 교대역에 내려 약속 장소까지 걸어가던 길에 느꼈던 기분이 아직도 느껴진다.


 "잘 지냈어?"

 "... 그냥 그랬지, 뭐."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지만 서로 동아리에 애착이 있는 걸 아니까 잘 지내보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친구에게 말을 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도 나는 기숙사에 돌아가 펑펑 울었다.

 다시 만나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후 동아리 모임이 있었는데, 나에게 술을 왕창 먹인 친구의 도움(?)과 나와 남자친구가 각자의 방식으로 발휘한 용기 덕분에 다시 서로에게 하나뿐인 존재로 만나게 되었다. 기숙사 계단 앞에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며 슬퍼서 울고 기뻐서 울던 그날의 기억도 선명하다.



두 번째 연애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져야 했다. 남자친구는 이번만큼은 정말로 잘해보고 싶다고, 본인이 더 잘하겠다고 했지만, 그 올곧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더 잘할 것은 없었다. 나야말로 잘해볼 차례였다. 황당하지만 나는 나로 살기와 잘 싸우기를 목표로 삼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바로바로 이야기를 하고, 싫어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지도 않는다. 나의 지레짐작과 달리 남자친구는 애초에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나는 이게 좋은데 너는 싫구나! 그런가 보지, 뭐'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남자친구에게 본인의 취향과 다른 취향을 갖고 있다고 하면 남자친구가 싫어할 거라고 생각해서, 나는 당신과 찰떡인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그 오랜 시간을 혼자 앓았던 게 참 멍청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길 때는 이렇게 대화를 한다.


 "나 그 말이 이러이러하게 느껴져."

 "내 생각은 이런이런 것이었어."

 "그래? 나는 이러이러한 마음이 들었어."

 "나는 이러이러한 마음이 드는 걸."

 "그랬구나. 더 할 말 있어?"

 "아니."

 "그래, 그럼 화해를 받아주겠니?"


 별 것 아니었다. 물론 싸우는 걸 누가 좋아하겠으며, 지금도 싸우는 게 약간은 걱정되고 서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는 훨씬 서로를 많이 생각하고, 현명하게 대화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몇 번의 경험으로 그걸 알기 때문에 갈등 상황이 생기는 것도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



시즌 1 없이 시작하는 시즌 2는 없는 법


 내가 조금만 덜 겁먹었더라면 첫 2년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 사이에 1년이라는 시간이 없을 수 있었을까? 그 시간은 그냥 날아가버린 시간인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2년과 1년의 시간이 있었기에 깨달을 수 있었고, 성숙할 수 있었던 것임은 분명하다. 지금도 이별의 순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찔끔 나지만 그 시간을 기점으로 나라는 사람의 시즌2가 시작되었고, 나는 시즌2의 내 모습이 훨씬 마음에 든다. 당당하고 지혜로워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 또 그냥 대충 얼버무릴 거다.

 ", .. 6? 7? 정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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