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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Apr 11. 2021

"포르쉐에서 장점을 찾지 않는 것과 같지"

어떻게 그렇게 오래 만나냐고?

 남자친구와 2년을 만나고 1년을 헤어져있었고, 다시 만난 지는 5 차에 접어들고 있다. 3 변신 연애를 거치는 동안 우리는 변했다. 각자의 삶을 이어나가면서 독립적으로 변한 것도 있고, 우리가 겪은 이별과 만남이  관계에 임하는 자세를 바꾼 것도 있다. 때로는 이별에서 비롯된 상처가 만남의 결에 묻어나기도 한다. 그래도 서로가 서로에게 일상의 많은 순간에서 누구보다 먼저 생각 나는 이가 되어주고 있고, 짙은 믿음 애정을 갖고 있다. 어쩌면 연인이라기보다는 사람 자체에 대한 감정이기도 하다.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 오래 만나냐고, 부럽다고 한다. 또는 본인은 그렇게 못하겠다고도 한다. 내 생각에는 부러워할 일도, 할 만한 일도, 못할 만한 일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이고, 누구나 저마다의 인연이 있는 것인데 나는 좀 일찍 만났을 뿐이다. 부럽다고 한 사람들에게도 인연이 있다. 내 스스로가 기꺼이 인연이 되어줄 수 있는 인연이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을 오래 만날 수 없다, 도저히 지루해서 그럴 수 없다 싶으면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도 배우고 느끼는 즐거운 삶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는 오랜 기간을 연애한 사람과 결혼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나 1년 만에 결혼을 한 사람도 많다. 결혼 역시 연애의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우리는 그런 사례에 대해서도 별 생각이 없다. 첫사랑과 결혼한 후 후배들에게 여러 사람을 만나보라고 하고 다니는 선배들도 여럿 봤다. 거기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고, 우리는 우리니까.

 오랜 시간을 만났다고 하면 어떻게 그렇게 잘 맞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잘 맞는다는 말을 우리한테 적용하기엔 애매하다. 오래 만났다는 사실이 모든 게 찰떡같이 잘 맞는 걸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찰떡같이 잘 맞는다고 해서 오래 만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겐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 남자친구는 이성적이고 나는 감성적이다. 남자친구는 틀에서 벗어난 사고를 하고, 나는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방법을 찾는다. 남자친구는 한 명의 천재가 등장해서 극을 극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미드를 좋아하고, 나는 마음 쓸 필요 없고, 굳이 챙겨볼 필요 없는 예능을 좋아한다. 남자친구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고, 나는 한 번에 서너 가지의 일을 한다. 그렇게 다른 것에 대해서도 별 생각이 없다. 그냥 서로를 흥미로워하고 신기해한다.


 이쯤 되니 별 생각이 없는 게 비결이 아닐까 싶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는 것, 이 관계에 크게 집착하지 않고 상대에게 나라는 압력을 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우리 사이를 유연하게 이어주고 있는 것 같다. 비결이랄 게 있을까 골똘히 생각은 해본다. 딱히 나오는 정답이 없어 남자친구에게 물어본다.

 "오빠, 우리가 오래 만난 비결이 뭘까? 뭐라고 생각해?"

 남자친구가 대답한다.

 "글쎄. 예뻐서?"

 "아니, 그거는 오빠 눈이 특이한... 우리끼리 있을 때나 하는 말이고... 남들이 납득이 안 될 거 아냐. 나 이거 글로 쓸 거니까 남들도 공감할 법한 이유를 대봐."

 "운이 좋았지. 사람이 살면서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잖아. 근데 그냥 좋은 거야. 포르쉐에서 장점을 찾지 않는 것과 같지. 글에도 그렇게 써! 포르쉐에서 장점을 찾지 않는 것과 같다고."

 남자친구의 드림카는 포르쉐다. 나는 또 그 표현이 나름 창의적인 것 같아 마음에 들어 잊지 않으려고 메모를 해뒀다.


 운이 좋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처음 만난 것도 운이었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것도 운이었고, 그렇게 잘 만나고 있는 것도 운이라면 운이다. 그 자체로 잘 맞을 사람을 만났다 하더라도 그것을 잘 이어나가서 실제로 잘 만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만남 그 자체가 이렇게 생긴 예쁜 모양의 운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의 관계는 평범하지도 않고 눈에 띄지도 않는, 어딘가에 찍힌 개성 있는 좌표다. 형용하기도 어렵고 논리적으로 규명하기도 어려운 여러 차원의 합작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명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싶어 그런 생각이 든다.

 '역시 포르쉐에서 장점을 찾지 않는 것과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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