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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Apr 14. 2021

7년 차 커플이 잘 다투는 법

알잖아, 그런 마음이 아닌 거

 우리도 다툴 때가 있다. 싸운다는 말보다는 다툰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다툰다.

  번은  12시에 누가 혼자 지내고 있는 자취방 문의 번호키를 조작하는 일이 있어 무서워하면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남자친구가 말했다.

 "나한테 전화를 할 게 아니라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것 같아."

 짜증과 허탈감이 몰려왔다. 당시 나는 부산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고 남자친구는 서울에 살면서 '롱디' 커플로 지내고 있었다. 남자친구 딴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접 올 수도 없고, 내가 걱정은 되니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공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지만,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모르냐고. 내가 바보냐? 놀란 가슴 좀 진정시키겠다는데 참 비협조적이다.

 대부분의 다툼은 이렇게 일어난다. 나는 남자친구의 말에서 감정의 결여를 느끼고 남자친구는 내가 가끔 이렇게 말하니 자기 선에서는 최선을 다하는데, 정작 내가 마뜩잖아해서 당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그래도 우리는 잘 다투고 잘 화해한다. 그렇게 다퉈도 괜찮은 이유, 금세 회복할 수 있는 이유를 네 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우리는 상대의 마음이 내가 나쁜 방향으로 해석한 대로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을 단정 짓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스스로의 마음을 설명하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물론 아닐 때도 있지만 드문 일이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거잖아. 그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렇게 말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어서 섭섭했어."

 이 둘은 차이가 있다. 단정 짓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대화가 단절된다. 상대를 추궁하게 되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더욱 불쾌해진다. 그 마음이 맞아도 불쾌하고 틀려도 불쾌하다. 반면 내 마음을 설명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상대에게도 말할 여지가 생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말에 오해를 하고 있을 때 내 진심을 전달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인데, 자존심을 내세운 불쾌한 말로 그 마음을 틀어쥐고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 서로를 귀찮아하지 않고, 상대의 즐거움이든 서운함이든 그 감정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으로서의 기본을 갖추고, 사랑하는 마음 대신 알량한 승부욕을 내세우지도 않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는 싸우는 순간에도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고, 믿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둘째, 우리는 내 멋대로 해석한 그런 마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서로 배려하고 또 그렇게 서로가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도 하다. 눈에 띄게 변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나와 남자친구는 나 자신도, 상대방도 모르는 새에 서로를 배려하며 어느 정도는 톤을 조절해온 것 같다. 상대가 나에게 맞췄으면 하는 마음을 강요하기보다는 내가 상대에게 맞추려고 하는 마음이 발현된 것 같은 느낌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듯이, 웃는 낯에 침 못 뱉듯이 우리는 상대가 나를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상대를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누군가가 나를 믿고 있다는 사실은 나의 손발을 느리고 무겁게 만든다. 행동하기 전에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차분히 대화를 하게 한다. 그러면 다툼도 금세 끝난다.

 셋째, 가끔은 나를 속상하게 하는 부분을 내가 이해를 못해주는 것 역시 상대에게는 서운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남자친구에게서 감정의 결여를 느낀다면 남자친구는 이성의 결여를 느끼거나 감정의 과잉을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내 남자친구는 왜 이렇게 감정이 메말랐지?"

 "내 여자친구는 왜 이렇게 감정이 차고 넘치지?"

 할 수 있지 않은가. 서로 그것을 코웃음 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도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나를 속상하게 하는 부분이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상대의 모습과도 깊이 관련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1년에 한 번쯤 나에게 하는 말에서 감정의 결여를 느끼며 불만을 표하는 나는 모순적이게도 남자친구의 감정선에 큰 기복이 없는 게 좋다. 감정의 파동이 잔잔한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아늑함을 준다. 아주 드물게 복장 터지는 일이 있을 뿐 남자친구가 주는 안정감이 좋다. 남자친구 역시 나 때문에 가끔 난처해하지만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는 나를 보며 즐거워한다. 다투기 전에 이 생각이 들면 참 좋지만 화해를 할 때쯤 이 생각이 난다는 것은 조금 안타깝다.

 

 아무튼 우리는 이렇게 다투면서도 인간적으로 잘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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