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잘 사는 진리 Apr 16. 2021

여전히 새로운 일이 일어날 건가 봐

설렘과 편안함 사이

 그렇게 오래 만나면 지겹지 않냐, 설렘은 없고 편안함만 남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앞의 질문에 답하자면 지겨운 마음은 없고, 오히려 각자의 지겨운 일상을 보내다가 만나면 즐겁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뒤의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흔히들 말하는 설렘에는 새로움이 전제되어 있으니 우리 사이가 설렌다 하는 것은 허세인 것 같고, 편안함은 분명하게 느낀다.


 7 정도를 만나면 새로울  별로 없다. 그냥 밥을 먹고 후식도 먹고는 각자의 일을 한다. 예전에는 영화를 즐겨보는 남자친구 덕분에 영화관도 종종 갔고,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는  때문에 그런 것들도 종종 봤고, 당구도 쳐봤고, 보드게임도 엄청 많이 했고, 방탈출도 엄청 많이 했다. 인형 뽑기도 질릴 때까지 해봤다. 그때 뽑은 인형들은 버리지 해서 만화 원피스의 쵸파 인형 5-6개는  방의 책꽂이  칸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둘 다 원피스의 용감한 사랑둥이 쵸파를 좋아한다. 한강도 종종 갔고, 가끔은 대학 동아리의 다른 커플들과도 만났다. 데이트 거리는 진즉에 바닥났다.  하는지가 중요한  아니었다. 그냥 같이 뭔가를 하면 까르르 즐거웠다. 지겨워도 지겨운 대로 너무 지겹다며 웃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이벤트는 딱히 없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할 때까지 갖고 있을 수 있을까?.?

 그래도 소소한 즐거움과 안락함은 항상 있다. 개인적으로는 설렘보다 편안함이  좋다. 우리가 편안함을 누리는 사이라서  편을  좋아하는 거기도 하지만,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편안함이라는 감정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점점  깨달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 딱 한 명 편안한 사람이 있다는 , 나를 내려놓을  있는, 내가 나다울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고 행복이다. 그만큼 우리 사이가 돈독하고 증명된 사이라는  뜻하기도 하는  같아  사실에 흐뭇함을 느낀다.


 그래도 아예 새로운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남자친구가 면허를 따면서 새로운 데이트를 하고 있다. 남자친구가 면허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분명 1년 무사고 이후에 조수석에 앉을 거라 선언했는데, 그게 어째 그렇게 되진 않았다.


 "나 김포공항 8시 도착이야!"
 "혹시, 내가 데리러 가면 내 차 탈 건가?"
에라이, 운명을 같이 하는 거지 뭐. 졸음운전을 하지 말라고 커피를 한 잔 사다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생각보다 승차감이 훌륭했다. 도전에 두려움이 없고 단정적인 성격에 비해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그를 물끄러미 지켜봤다.
 "오빠, 나 말 걸어도 돼?"
 "당연히 되지. 왜 안 돼?"
 "운전에 집중 못할까 봐."

 "에이, 그 정도면 운전하면 안 되지."

 "그래? 그럼 말한다? 방해되면 말해?"
 조잘조잘 얘기를 나누다가 웃음이 터졌다.
 "오빠, 나 너무 웃겨, 지금."
 "왜?"
 "아니, 우리가 너무 어른 된 것 같잖아. 대학생 애기일 때 만났는데 어엿한 직장도 가지고 이렇게 운전할 만큼 어른이 된 게 웃겨서."
 고작 이런 장면을 꿈꿔왔다 하면 웃길 수도 있지만 우리가 아주 오랜 시간 후에도 만나고 있으면 어떨까, 직장인이 되어서 대학생 때보다는 근사한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겠지, 어느 순간 운전을 하고 있기도 하겠지, 생각해왔는데 그런 게 현실이 되어있었다. 입가가 간질간질한 이 느낌이 좋았다.
 "혹시 차 타고 가고 싶었던 곳 있나?"
 "음... 한강 드라이브는 한 번 해보고 싶긴 하다."
 "가능하지~ 드라이브 코스 같은 거 찾아볼까?"
 "아, 나 또 웃기다. 우리 드라이브 코스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잖아. 이제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졌네? 기특해."


 우리는 쿡쿡 웃어댔다. 맨날 지하철에서 줄이어폰을 나눠 끼고 노래를 듣거나 영화를 봤는데, 드라이브를 하면서 노래를 듣는 것도 처음이었다. 드라이브 선곡은 내가 하기도 하고, 남자친구가 하기도 한다. 남자친구가 즐겨 듣는 노래는 다시 나의 플레이리스트로, 내가 추천한 노래는 남자친구의 플레이리스트로 들어가기도 한다.

 "오빠는 몰랐겠지만 나 사실 차에서 나오는 모든 아는 노래를 따라 하는 편인데 괜찮으려나 몰라?"

 "크크. 맘대로 하세용."

 그런데 남자친구가 트는 노래의 대부분은 래퍼 비와이의 노래라서 내가 따라 할 수가 없다(노린 건가?). 그래서 타이밍을 재다가 인상적인 부분만 따라 한다. 예를 들면, '찬란'의 'Brilliant'와 으, 못생겨쓰' 같은 것들이다. 박자에 잘 맞춰 내지르고 흐뭇해하거나 못 맞춰서 아쉬워하면 남자친구가 웃는다. 이제 너무 자주 들어서 점점 아는 부분이 늘어가고 있다. 거의 조각모음을 하는 수준이긴 하지만 페스티벌 같은 곳에서 비와이가 나오면 열광하면서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근데,     여기(햇빛가리개) 2달러가 있었다?"

 "오? 행운의 2달러잖아. 전주인이 다음 사람한테 좋은 운을 주고 싶었나 보다."

 "그런 거면 조수석에 둘까?"

 "응? 아니? 거기 둬. 오빠가 안전해야 내가 안전하지."

 "나는 목숨 아까워서 무조건 안전운전 하는 거 알지? 무-조건 천천히!"

 
 그 모습이 평소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려서 또 웃었다. 사실 운전을 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중이다. 남자친구는 운전을 하면서 혼잣말이 엄청 많고,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한다. 무슨 주문을 걸듯이,

 "무-조건 천천히!"

 라고 한다. 다른 운전자 욕도 한다. 화를 내지는 않고 매우 시크하게 저주를 한다.

 "저런 사람들은 운전면허 다 뺏어야 돼."

 나는 옆자리에서 100마디를 가만히 듣다가 말한다.

 "오빠, 오빠 말대로 하면 교통체증은 없겠다. 매일 운전면허증 200개는 뺏어야 될 것 같아."


 이제 함께 할 일 중에 새로울 게 별로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닌가 보다. 나의 새로움은 우리의 새로움이 되고, 그 과정을 함께하면서 느끼는 우리만의 설렘과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7년째 확인하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7년 차 커플이 잘 다투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