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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Apr 18. 2021

"불같은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

네. 그럼요.

 우리가  만나고 있는 것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찌 보면 무던한 성격이다. 우리는 서로이해하지 않는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수용하고, 상대방에게 애정과 신뢰가 아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원하는 조건이 있다면 스스로가  모습을 갖출 뿐이다. 가끔 다른 사람들이  말을 들으면 우리가 너무 차가운, 이성적인 커플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이게 좋다. 회사에서 부장님들이 연애사를 물어오실  이런 내용을 담아 대답하곤 하는데,  부장님이 진지하게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어보신다.

 "불같은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

 다시 떠올려봐도 인상적인 질문이었다. 평소 누구보다도 이성적이었던 부장님께서 그런 질문을 하시다니 특히 놀라웠다. 아마 불같은 사랑이라는 것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청춘의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경험이라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물어보신 것 같다.


 남들에게 전하는 말에 우리의 모습을 정확하게 담아낼 수는 없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리는 지금도 불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 우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불같은 사랑에 대해 생각해본다. 서로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 예를 들면 하루 종일 나와 연락이 닿아있어야 하고, 상대가 이성이 있는 자리에 가면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보고 싶어서 안달복달하고, 그런 것이 불같은 사랑인가 싶기도 하다. 당연히 그런 때가 있었다. 우리가 첫 번째 연애를 할 때는 그랬다. 우리는 같은 학부에 같은 동아리인 한 학번 차이 캠퍼스 커플이었다. 학교에서는 새로 들어온 신입생 후배들과 밥 약속을 잡는 일이 허다했다. 당연히 이성 후배와 약속을 잡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2학년 때에는 동아리 회장을 했고, 3, 4학년 때에는 학번 대표와 과대표를 했기 때문에 그런 약속이 더 많은 편이었다.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후배가 몇 없는 걸 보면 딱히 의미도 없는 밥 약속이었지만, "선배님, 언니, 누나~ 밥 사주세요~" 하는 것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남자친구는 꼭 그렇게 해야겠냐며 굳이 남자 후배들을 만나 밥을 사주는 것을 탐탁지 않아했다. 나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없던 시간에 남자친구와 잠시라도 엮였던 사람들이 아주 신경 쓰였다. 그 사람들은 이미 지나간 일이라 매우 높은 확률로 아무 생각이 없었겠지만 나 홀로 질투에 불타올랐다. 하필 또 한 인물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어휴. 지금에 비하면 그때는 거의 불에 타올라서 파스스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두 번째 연애를 할 때에는 불의 결이 달라졌다. 물론 지금도 상대가 이성을 만나는 자리에 가면 기분이 유쾌할 것은 없지만 남자친구나 나나 오로지 상대가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우리의 사랑을 불에 빗댄다면 타닥타닥 계속 장작이 들어오는 모닥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뜨겁기보다는 따뜻하고, 사랑이긴 하지만 생에 더 가깝다. 별이 쏟아지는 어두운 하늘 아래서 모닥불 가까이에 모여 앉아 있자면 그 유일한 밝음과 낭만적인 따뜻함에 젖어드는 것처럼 희망적이고 편안하다. 우리는 통화를 하지 않고 카카오톡으로 매일매일 대화를 나누는 편인데, 뭘 하고 있는지 뭘 먹었는지 시시콜콜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특별한 일이나 약속이 있으면 통보하고, 연락이 안 되어도 그러려니 한다. 서로 생업이 있음을 이해하고 연락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어서 오후에 안녕할 때도 있고, 몇 마디 못하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도 있다. 그래도 매일 자기 전에 꼭 굿나잇 사랑고백은 하고 잔다. 만나는 횟수도 잦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것도 수능 국어 강사인 남자친구의 일정에 맞춰 랜덤하게 만나는 편이고, 일주일에 한 번도 못 만날 때도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은 답을 찾아 꾸준히 자가발전해야 하는 남자친구의 모든 일을 마땅히 존중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남자친구를 보며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 모든 무던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툴툴대며 서로를 놀리긴 한다.

 "오호~ 잘생겼어!"

 우리가 세간의 기준에 맞는 미인은 아니지만 서로의 눈에는 더없이 아름다워 보이니 종종 그런 말을 하곤 한다.

 "나는 잘생겼다는 사람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

 "그런 삶이 어떤 삶인데?"

 "아니 뭐, 어딜 가나 번호 물어보는 사람이 있고 그런 거지."

 "에이.."

 "OO이 눈에 잘 생겨 보이면 성공한 거지."

 "근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랑 엮였어?"

 "아니..."

 "아~~~ 오빠 레드벨벳 슬기 같은 외모 좋아하지? 그중에는 그런 사람 없었나봐?"

 "아! 안 해!"

 이 정도면 불같지 않습니까, 부장님?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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