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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머리 짐승 Jun 12. 2020

Like father like son

“아빠, 내가 같이 놀고 싶어서 방에 들어갔는데 여자애들이 자꾸 발로 차고 날 끌어내”

“아, 진짜 속상했겠다. 아빠가 뭘 도와줬으면 좋겠어?”

“나 여기 있기 싫어. 집에 가자”

“그래, 그런데 초대받아 온 지 얼마 안 됐으니 어른들 얘기하는 동안 기다려줄 수 있어?”

“그럼 나 아빠 옆에 앉을래”

“그래, 그게 좋겠다. 고마워”

아이를 옆에 앉히고 간간이 가슴을 쓰다듬어 주면서도 아빠는 끝내 “사이좋게 지내야지” 하지 않았어요. 사이좋게 지내려면 사이좋을 마음이 생겨야 하거든요. 마흔 넘은 아빠 역시 사이좋을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에겐 다가가지 않아요.


“내려오려면 아직 멀었어? 우리 늦었어”

“나 머리에 물 좀 바르고. 앉으면 바지가 자꾸 내려와. 갈아입을래”

‘(속으로) 30분 전부터 재촉했건만 지금까지 뭘 하다!!!’

“알았어. 대신 조금만 서두르자”

마흔이 넘었어도 머리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위아래 옷 맞춤이 어색하면 아빠 또한 종일 거울만 보고 싶어요. 아이도, 아들이라도 다르지 않아요. 


“아빠, 나 엄청 운 좋아”

“너 캐릭터 새로 뽑았구나”

“응, 나 어제도 뽑았는데 오늘도 ‘비’가 딱 나오는 거야! 나 진짜 운 좋아!”

무슨 말인지 모를 거예요. 마흔 넘은 아빠도 앞뒤 사정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사람이 있으면 든든하고 막 좋고 그래요. 아들이 뭘 하고 노는지 말없이 들여다봐요. 어린 아들도 앞뒤 사정 설명하지 않고 느낌부터 말하고 싶을 때가 있을 거예요. 그때 더 이상 묻지 않고 알아듣는 사람이 있으면 좋잖아요.


“아빠, 나 오늘 학교에 차로 데려다줘”

“그래”

“쪼옥(이 소리는 열 살 아들이 잠에 취한 아빠에게 뽀뽀하는 소리입니다)”

마흔 넘은 아빠도 이유 없이 어리광 부리고 싶은 때가 있어요. 하물며 열 살 아들은 오죽할까요. 그런 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아요.


열 살 아들은 마흔 넘은 아빠가 가지는 모든 감정을 모르지 않아요. 마흔 넘은 아빠는 열 살 아들도 가질 법한 모든 기분을 포기하지 않고요. 어려도 늙어도 모르지도 포기하지도 않아요. 아들이 불러요. 가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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