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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수 Sep 14. 2021

꽃다발 같은사랑을 했다


마침, 어제 영화 한 편을 보았어.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너가 사라진 이후에 좋아하게 된 배우가 나와. 노래도 잘하는 배우지. 연기도 재밌어. 그 영화가 너를 아주 많이 떠오르게 만들더라고. 소설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그 취향이 너무도 잘 맞았던 거의 똑같았던 두 사람이 우연히, 운명적으로 같은 막차를 놓치고, 함께 막차를 놓쳤던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밤을 보낼 바에 들어가지. 나머지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보이려 잘 모르는 영화에 대해 지껄이기 시작하자, 거기서 남자 주인공이 말해. “그 뭣 같은 실사판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게 너네들 때문이구나”라고. 


엄청 웃었어. 바로 너가 생각났지. 영화에 대해 엄청나게 열정적이었던 너. 스타워즈, 베트맨,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누군가가 주제를 바꾸지 않는다면 영원히라도 이야기할 것 같았던 너. 혹시 알고 있었어? 몇 번이고 반복되는 영화 이야기를 들을 때, 다른 생각을 아주 많이 했어. 심지어 전화로 이야기할 때는 전화기를 멀리 두고 너가 이상함을 느낄 때 즈음, 다시 전화기를 들고 대답을 했어. 사실, 너는 내 대답이 중요하지 않았을 거야. 단 한 번도 내가 그 공간에 없었던 걸 너는 눈치 채지 못했으니. 


청춘에 대해 생각했어. 청춘의 연애, 청춘의 사랑. 푸른 봄의 사랑. 가장 순수한 파랑, 깊고, 애틋하고 아픈 색. 영화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 때에, 이번에는 여자 주인공이 이야기해. “무언가의 시작은 끝으로 향하는 시작이다”라고. 연애에 비교하는 이야기였는데, 결국 영화의 결말을 암시한 거지. 


내가 한국에 잠시 돌아갔을 때, 한 바에서 너는 울면서 말했어. 라라 랜드를 보았어. 계속해서 울면서, 라라 랜드를 보는 내내 울었다고 말했어. 울고 있는 너가 울었던 기억을 나에게 토로했어. 마치 그게 우리들의 이야기 같다고. 우리는 사실 어느 순간부터 다른 방향을 향해 미묘하게 틀어져서, 그렇게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다시 만날 일 없을 것처럼. 마치 우리의 끝을 보여주는 것 같아 슬프다고 말했어.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어. 왜 그랬을까. 서로 끝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굳이 굳이 서로를 붙잡았을까. 나는 너를 듣지 않고, 너는 나를 알아채지 못했는데 말이야. 


결국 우리의 헤어지는 날이 다가왔어. 한국행 비행기를 끊고,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너가 나를 알았던 게 한두 해도 아니고 당연히 눈치를 채더구나. 참으로 미안했어. 프랭땅 백화점 뒤쪽 도로 한복판에서 울었어. 멈출 생각도 없이 쌓아온 세월을 다 뽑아내듯 울었어. 너도 많이 울었겠지. 울면서 내가 우는 소리를 끝까지 받아내고 있었겠지. 


한국을 가서 마주한 너는 또 울었어. 넌 참, 나보다도 눈물이 많았지. 브런치 가게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는, 나와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했어. 그것만 보고 가라고. 붙잡았던 너를 단단히도 선을 그으면서 도망쳤어. 헤어지는 순간마저 영화 이야기를 하는 너가 지겨워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남이 되어버릴 너와 한시도 같이 있기 힘들어서였을까. 


영화의 끝은, 뻔하게도,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것으로 끝이나. 예전의 서로가 아님을 인정하면서 청춘의 자신을, 그리고 기억 속의 너를 놓아주기 위해 엉엉 울다가, 담담히 받아들여. 그리고는 함께 살던 집을 정리하는데, 다른 집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3개월을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나와. 헤어짐을 인정하고, 훌훌 홀가분해진 두 사람이 함께했던 자취를 정리하는 일상을 보여줘. 영화적인 마무리지. 아름다운 이별이 어디에 있겠어. 근데, 있잖아. 지금도 이것만은 후회가 돼. 그때, 그 마지막 순간에 말이야. 너가 보여주려 했던 영화가 무엇이었건, 볼걸. 우리의 마무리를 위해 함께 그 시간만은 견뎌야 했었던 것을, 이라고. 


이제는 우리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아. 친구가 되는 건 실패했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히 들어. 너는 여전히 사람들을 붙잡고 영화와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쉼 없이 설명하고 있겠지. 눈을 반짝이며 영화감독들의 인터뷰를 찾아보고, 행복해하고 있지 않을까. 세상에서 우리 둘은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내가 너를 너희 부모님보다 잘 알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헤어짐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우리는 다른 선으로 평행보다도 멀리 떨어져 가고 있겠지. 내 속의 너는 예전의 너고, 나는 그것을 간직한 채 평생 너와 만나지 않기를 바랄 거야. 내가 모르는 너를 만날 자신이 나는 없거든.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어, 내 전 남자 친구이야!라고 소리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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