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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수 Feb 19. 2021

택시, 코로나, 비, 삶

언제, 어디서 당신을 위로하기 위해 누군가 나타날지는 모르는 일이지. 













약속에 늦어 급한 마음에 우버를 불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고, 3분 뒤 도착한다는 차는 느리게 돌아오고 있었다.

비가 마음처럼 굵게 머리 위로 떨어진다. 봐봐. 볼썽사나운 이게 바로 너야. 불쌍하게도.


비를 맞고 있는 내 앞으로 푸조 한 대가 선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지만 열리지 않아 몇 번을 당겼다.

잠깐의 실랑이 끝에 운전사는 잠금을 풀었다. 차 안은 운전석과 뒷좌석을 나누는 큰 플라스틱판이 달려있다.


“문을 바로 열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순간 착각한 거 있지.”


세네갈, 혹은 어딘가 아프리카의 억양이 묻어 있는 빠른 프랑스어. 듣기 조금 불편했지만, 다행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괜찮아.”

“에이, 그래도. 미안해. 잠시라도 기다리게 해서.”


웃으며 거듭 사과하는 그와 백미러로 눈이 마주쳤다. 마스크를 끼고, 뿔테 안경을 낀 흑인이 나를 보며 웃었다.


“아가씨, 새해 복 많이 받아”

“새해 지난 지 오래되었는데?”

“하지만 우리는 아직 새해를 축복할 자격이 있지!”


피식, 그를 따라 나도 웃었다. 


“하긴, 얼마 전에 음력 새해였어.”

“맞아 맞아! 올해 새해 복 많이 받아. 건강하고, 행복하길.”

“당신도, 새해 복 많이 받아.”


점점 더 굵어지는 빗줄기를 뚫으며 차는 천천히 움직였다.

이렇게 외출을 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길을 바쁘게 걷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문득 나만 세상에서 동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불안함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 어때? 많이 힘들어?”

“손님은 있어. 하지만 잠재적인 손님이 없어졌어.”

“잠재적인?”

“응, 여행객, 외국인 같은. 공항을 가거나, 이벤트를 위해 들른 사람들. 미래가 사라진 기분이야.”

“힘든 시기지.”

“나만 힘든 게 아니니까. 모두가 힘들잖아? 아직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어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되지만. 의미의 문제야.”

“… 삶의 의미?”

“맞아. 직업의 의미이기도 하고.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이게 그 전과 같은 의미를 가지나? 같은 거 있잖아.”


세상은 전복되었다. 이제는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이전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단절되고,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지.


“응. 나도 사실 일거리가 엄청나게 줄었어. 집에 갇혀서 많이 우울하기도 했고”


대답한 나는 또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차 시트가 꺼지는 듯. 천천히 목이 조여드는 느낌.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던 그가 말했다.


“우리는 좀 더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어.”

“현실? 코로나 말이야?”

“응. 코로나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직도 몇몇 손님 중엔 ‘코로나는 거짓말이야!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냥 겁을 주고 우리를 조종하려는 것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하핫.”

“그런데 반대로, ‘우리 남편이 죽었어요’ ‘이번에 아내가 죽었어.’ ‘아이 두 명을 잃었어’라고 말하는 손님들이 훨씬 많아. 가족 전체가 병에 걸려 그대로 죽은 사람도 있었어.”


죽음. 프랑스 정부가 록 다운을 발표하고 외출 금지가 되었을 때 집 밖으로 나가지 못 하는 일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큰 우울감을 만들었던 건 현실이었다. 하루는 함께 일했던 동료가 세상을 떠났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때 르 몽드의 뉴스에서 하루 확진자가 4만 명이라 발표했다. 하루 1시간 허락된 외출 시간, 슈퍼를 가기 위해 지나는 공원에는 사람들이 잔디밭에서 햇볕을 쬐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과연 어느 쪽 현실이 맞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현실과 눈앞의 현실의 괴리감이 나의 존재의 의미까지도 위협했다. 슬프고, 허탈했다. 그가 덧붙였다.


“나도 사촌이 두 명 죽었는걸”

“코로나로?”

“응”

“파리에서?”

“파리에서.”


웃으며 말하는 그에게 어쭙잖은 위로라던지, 무언가 단어조차 입 밖으로 만들어 낼 수 없었다. 두 사촌은 안타깝지만 남은 가족들이 건강을 되찾아 다행이라며 또다시 그는 웃었다.


“힘들지만, 그래도 나는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해. 이전까지 이런 생각을 깊게 한 적이 없거든. 갇혀 지낸 두 달, 석 달 동안 아주 아주 많은 질문을 했어. 삶의 의미. 가치. 무엇이 맞는지. 가족, 삶을 찬찬히 들여다볼 시간이 생겼어.”

“….”

“아마 많은 게 바뀔 거야. 그냥 사회적, 경제적인 시스템 그런 거 말고. 아마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사랑하는지 이해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그게 내가 미래에 기대하는 점이야.”



차가 목적지에 가까워진다.


“이제 곧 도착할 거야.”

내비게이션을 바라본 그가 말했다.


“벌써? 아쉽다.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는데”

“걱정 마 아가씨. 이 모퉁이를 돌아가야 하거든.  아직 우리가 함께할 시간이 조금 남았어.”

“하하핫. 그것참 다행이야.”


묘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죽음의 무게를 훌쩍 가볍게 내뱉던, 묵직하고 따뜻한 철학을 가진 그 덕분인지.


“고마워.”

“나야말로 고마워. 아가씨. 즐거웠어.”


차가 올지도 모르니 조심히 내리라는 말을 덧붙이는 그에게 좋은 하루 보내, 인사를 건내고 차 문을 닫았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약속에는 조금 늦었다.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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