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ove you anyway"

이안 팔코너 글 / 이안 팔코너 그림 《Olivia》

by 그림북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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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계획이란 게 늘 그렇듯 어그러지기 일쑤이다. 1월에 세웠던 독서계획도 마찬가지다. 12월 한 달만을 남겨둔 오늘, 한 해를 돌이켜보면 거창하게 세워놓았던 독서 계획이 마음과는 다르게 뒤죽박죽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독서계획 중 꼭 지키고 싶었던 건 아들의 잠자리 독서였다. 다 큰 것 같기도, 아직은 덜 큰 거 같기도 한 4학년 아들과 자기 전 그림책을 매일 함께 읽는 것! 하지만 한 달이란 시간이 남긴했지만 일 년 동안 통틀어 10회도 지키지 못했다. 특별히 학원을 다니지도 않고 그 흔한 방과 후 수업조차 하지 않는데도 아들은 늘 시간이 부족하다. 4학년이 되어 꽤 어려워진 교과목들을 아직까진 집에서 문제집 하나 푸는 걸로 따라가고 있는데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좀 쉬다 보면 금세 저녁 시간이 된다. 물론 아들은 교과목 복습 시간 외에 게임시간, 취미활동 시간으로 하루를 채우느라 더 바쁘긴 하다. 어쨌든 할 것들을 다 하고 나면 시간은 벌써 밤 9시가 넘어간다. 다음날의 컨디션을 위해 10시 전에 자야 하니 자연스레 잠자리 독서는 내일 하자면서 넘기고 넘겨 지금은 전혀 하지 않는다. 안 하다 보니 가끔 아들이 책을 보자고 하면 내가 괜스레 더 귀찮아질 때도 있다.



잠자리 독서를 하고 있진 않지만 요즘은 영어책을 좀 더 열심히 보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잠수네 영어에서 제시하듯 흘려듣기, 집중 듣기, 읽기 등을 열심히 시키고 싶었지만 그것도 매번 실패였었다. 원치 않고 재미없는 걸 억지로 시키느라 서로 밀당하며 진을 빼는 걸 왜 해야 되나 싶었다. 그렇게 지지부진 4학년 중반을 넘어 여름방학이 될 때쯤 넌지시 도서관에서 빌린 Oxford Reading Tree를 권해보았다. 이전에 보았을 땐 재미없어하더니 학교에서 배운 것도 있고 영어 까막눈을 벗어나 조금은 읽을 수 있어 그런지 보면서 깔깔 웃기도 하고 흥미를 보였다. 꾸준히 읽어볼지를 제안하니 아들도 선뜻 수락을 했다. 그렇게 ORT를 시작으로 지금은 영어 원서 그림책도 함께 보고 있다.



사실 30년 가까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나에게도 영어 그림책은 어려울 때가 있다. 글밥은 적은데 책 속 단어가 의미하는 게 추상적이거나 관용적인 표현이 나오면 더더욱 그렇다. 일일이 해석을 하지 않는 아들은 글과 그림을 함께 보며 잘 넘기는데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은 오히려 내가 더 스트레스받아하는 경우도 있다. 보는 영어 그림책들은 유명한 작가의 책들이 많아 대부분 우리나라 번역본들이 있어 번역본으로 보면 글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훨씬 수월하다. 어렵긴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원서는 원서만의 매력이 있다. 가장 큰 매력을 꼽자면 영어 단어만의 운율을 살려 리듬감 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소리 내어 읽으면 그 재미가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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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웨이, 요즘 하루에 두, 세 권 정도 잠자리 독서 대신으로 영어 원서로 된 그림책을 함께 보고 있는데 아들은 이 책《Olivia》에 푹 빠져버렸다. 우리나라 번역본에서는《그래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첫 장을 펼치면 허물 벗은 듯 질질 벗어놓은 빨간 드레스와 줄무늬 스타킹이 등장한다. 첫 장 왼쪽 끄트머리 쪽으로 반만 그려진 이 빨간 드레스를 보니 딱 아들이 떠올랐다. (어떤 그림책을 보아도 가장 많이 떠오르긴 하지만) 바쁘게 등교 준비를 하고 현관을 나선 뒤 남긴 아들의 흔적과 너무 똑같았다. 매일 잠옷을 잘 개켜 한 곳에 놓아두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엄마 말을 지키는 날은 위아래 잠옷을 뚤뚤 말아 공 모양으로 만들어 놓거나 지키지 못한 날은 꼭 올리비아처럼 저렇게 해놓고 가버린다.



"She is very good at wearing people out.
She even wears herself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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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주인공 올리비아는 잘하는 것이 많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것을 아주 잘한다.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올리비아는 이것저것 참 많은 것들을 한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올리비아의 모습에서 아들은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것 같다. 하교하자마자 하루 할당량의 문제집을 풀고 나면 게임에 리코더 불기, 종이접기, 아크릴화 그리기, 스크래치로 코딩하기까지 정말 올리비아처럼 하는 것이 참 많다. 올리비아를 보며 공감이 가면서도 자기보다 지나친 아이가 있구나!라는 생각에 엄청 재밌어하는 것 같다. 영어책 보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데 요 며칠은 밤마다 다시 보겠다고 하고 아빠를 보자마자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좋아하는 게 맞구나 싶다.



You know, you really wear me out. But I love any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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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자신과 닮아있는 주인공을 보며 푹 빠져들었다면 나는 이 책의 어떤 한 문장에 꽂혀 버렸다. 책의 막바지에 잠자기 싫어하는 올리비아와 엄마가 잠자리 독서를 위한 책 권수로 밀당을 하고 침대에 누워 함께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책을 다 읽고 엄마는 올리비아에게 키스를 하며 이렇게 말한다. "넌 정말 엄마를 무척 지치게 하는구나. 그래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이 대사를 보면서 며칠 전 아들과 한 대화가 떠올랐다. 툭하면 죄송하다는 소리를 잘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널 자주 혼내거나 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죄송하다는 말을 자주 하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에게 멋진 아들이 되고 싶어 나름 노력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 나 자신이 실망스러울 때가 있어서요." 순간 나도 모르게 하는 말과 행동이 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걸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하나 잠시 망설여졌지만 이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시윤아! 엄마는 우리 아들이 어떤 모습이든 어떤 상황이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 그러니 늘 최선을 다하는 네 모습을 너도 사랑해줘"라고. 아들은 이 말에 안심이라도 한 듯 살짝 고인 눈물을 거두고 슬며시 웃으며 잠들었다. 잠든 아들은 또 올리비아처럼 꿈 속의 멋진 자신과 만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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