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어디서 오는 걸까?

마르 베네가스 글 / 하셀 카이아노 그림 《새의 심장》

by 그림북오름


바닷가에서 태어난 소녀는 인간의 말보다 바다의 말을 먼저 배웠다. 세상 모든 것이 소녀에게 말을 걸었고 소녀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소녀는 엉뚱한 질문을 하고 낱말들을 가지고 놀았다. 소녀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소녀는 처음으로 시를 썼다.《새의 심장》주인공 소녀 나나는 그렇게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나도 어릴 적에 나나처럼 시를 썼었다. 9, 10살쯤 어떤 여인의 초상이 흐릿하게 그려져 있는 하드커버 표지의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 종종 생각나는 대로 또박또박 나름 정성 들여 시를 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조숙했던 난 어린아이답지 않게 시도 꽤 거창한 제목을 달아 썼더랬다.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고 제목만은 또렷이 떠오르는 시 하나가 있다. '용의 해를 보내며'라는 제목의 시였다. 그땐 그저 어른의 시를 흉내 내고 싶었었던 것 같다. 이유는 잘 떠오르지는 않지만 어느 날 그렇게 썼던 시들을 다 찢어버렸다. 지금까지 남겨두었으면 꽤나 쑥스러울 거 같은 시들. 어디론가 날아가버린 낱말들을 그땐 무슨 마음으로 모으고 모았을까? 이후에 시를 쓰진 않았지만 종종 시집을 사서 소리 내어 읽어보고 시가 주는 리듬에 마음을 맡겨보곤 했었다. '나는 왜 시를 읽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단어가 주는 적확한 의미보다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그 어떤 분위기를 즐기는 것 같다.



내가 찾은 해가 진짜 보물이라고 선생님이 그랬어. 영원히 잘 돌봐 줘야 한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 말이야. 폭풍이 고함치는 소리나 떨어진 낙엽 같은 것. 그런 것들을 시라고 부른대.


그림책을 많이 보고 있는 요즘은 동시를 더 자주 본다. 특히나 문삼석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그의 시는 쉬운 낱말로 사물의 마음과 모양, 소리를 다정하게 만들어준다. '바람과 빈 병'이라는 시가 있다. 바람이 숲 속에 버려진 빈병을 보며 쓸쓸할 거라며 빈 병 속으로 들어가 놀아준다. 병은 기분이 좋아 "보오, 보오" 맑은 소리로 휘파람을 분다는 내용이다. 버려진 병과 바람이 들려준 이야기가 시가 된 것처럼 책 속 나나도 말한다. 주변에서 들려주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시라고.


나나는 자신이 있는 해변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시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나는 도시로 시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나는 나나를 위해 제빵사 친구 마르탱은 나나에게 새 모양의 빵을 건네준다. 소년은 소녀가 새의 날개를 달고 빨리 돌아올 수 있길 바라며 빵을 전해 준 것이다. 빵으로 만든 새는 그들의 심장이 되었다.



그들은 사랑과 전쟁, 삶과 죽음, 시골과 도시, 과거와 현재에 대해 이야기했어.
낱말들은 실이 되고 실은 거리로 뻗어 나갔지.

도시로 간 나나는 시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찾아낸다. 도시에서 발견한 실오라기를 따라다니며 보이는 것들을 쓰면서 걷고 또 걸었다. 실이 끝나는 곳에서 시인들을 발견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나나의 행동과 말이 무엇을 얘기하는지 단번에 이해되지는 않았다. 세 번 정도 읽으니 애초에 이 책은 이해하면서 보는 책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냥 나나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시는 꼭 시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며 누구나 내가 가지고 있는 낱말을 엮어서 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들과 함께 이 책을 읽었는데 어렵고 까다롭게 느껴진 부분들을 아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듯했다. 소녀가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눈앞에 그 광경이 펼쳐지는 것 같아 좋았다며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는 시를 써 본 적이 없다. 아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시를 썼던 나의 마음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냥 썼던 시. 이유 없이 썼던 시. 이해가 필요하지 않은 시. 나도 아들과 같은 마음으로 시를 썼나 보다.



나나의 여정은 도시에서 끝나지 않고 시의 마음을 찾기 위해 숲으로 이어진다. 처음으로 가 본 숲에서 나나는 마르탱이 그리웠다. 숲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소년에게 자신이 본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편지로 바다와 숲을 공유한 소년과 소녀. 나나는 첫 번째 시집 '새의 심장'을 쓴다. 나나가 찾은 시의 마음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나의 경험과 시간을 누군과와 함께 나누고 싶은 그 마음이 시의 마음일 것이다. 아들은 책을 본 이후로 생각날 때마다 시를 쓴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시를 보여주며 나의 감상을 기다린다. 먹기 싫은 비타민에 대한 이야기,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야기, 엄마에 관한 또 아빠에 관한 이야기 등등 아들의 일상과 마음이 가득 담겨있는 시들이다.


그래서,

시는 어디서 오는 걸까? 시는 어디서든 찾아온다.

비타민을 먹으면서도 친구와 시간을 보내면서도 사랑하는 엄마 아빠를 바라보면서도, 그렇게 어디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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