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받아들이자
한 아동 발달 관련 기관에서 어린이집 재원 중인 원아에게 발달 검사를 무료로 시행해준다고 하여 응한 적이 있었다. 두 돌이 좀 지났을 때 검사를 받았다. 다섯 가지 동물 그림을 보고 무엇인지 대답을 해야 하는 질문에 우리 아이는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한다. 꿀꿀, 야옹, 멍멍 이런 의성어, 의태어로는 정답으로 인정되지 않으나, 그런 단어조차 말하지 못했고 처참한 결과는 또래 중 유일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이의 언어 발달 상태,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갈 줄로만 알았던 나에게 제동이 걸린 순간이었다.
다음 날, 나는 바로 발달 치료 센터에 대기 등록을 했다. 그리고 아이가 31개월 때, 대기를 걸어 놓은 치료 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조만간 자리가 날 것 같다는 안내에 한 달 뒤로 언어 발달 검사 일정을 잡아 놓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나에게 조언해주는 말들,
36개월, 세 돌까진 기다려보는 게 어때?
때 되면 알아서 말해. 내버려 둬.
옆에서 말을 많이 걸어주면 곧 할 거야.
결국 나는 고민 끝에 언어 발달 센터에 가는 것을 취소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아이에 대한 믿음이 컸다. 지금은 내가 하는 말을 100% 이해 못 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내가 조금만 기다려주면 금방이라도 나아질 것 같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굉장히 긍정적인 마인드였다.
그래, 내가 더 노력하면 되지!
내가 집에서 무엇이라도 해보리라 다짐했는데, 사실은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책을 많이 읽어주면 될까?
옆에서 말을 많이 해주면 될까?
아기 용어로 이해하기 쉽게 알려줘야 할까?
다양한 경험을 체험하게 해 주면 될까?
해답 없는 나의 고민은
의미 없는 시간만 흘러 보냈다.
아이가 38개월이 되어갈 무렵, 전혀 말이 트일 것 같지 않았다. 아예 나와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했다.
그리고 한 센터에서 받은 우리 아이의 발달평가표 결과지를 보았는데, 대근육은 84.1%로 월등히 높으나, 의사소통이 0.1%로 매우 느린 수준이었다. (부모가 체크한 발달 평가표 기준으로 나온 결과)
물론 내가 엄격하게 체크하긴 하였으나, 못 하는 건 못 한다고 솔직하게 응답했고, 어느 정도는 정확한 결과였다. 사회정서, 기본 생활도 1% 수준이었고, 소근육 운동발달과 인지가 10% 이하, 대근육을 제외한 모든 영역이 매우 느린 수준이기에 2차 전문가 평가가 필요하다는 소견이었다.
더 이상은 내가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급한 대로 지금 당장 자리가 있다는 언어 발달 센터로 향했고, 아이는 그날 바로 언어 발달 평가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언어 이해력 17개월, 언어 표현력 14개월 수준이었다. 그때, 우리 아이는 38개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