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했다는 증거의 욕창

by JMK

아버지는 엉덩이와 오른쪽 복숭아뼈에 깊은 욕창이 있었다.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2020년 10월 말,
코로나로 면회가 금지된 지 다섯 달 만에 상급병원으로 옮겼던 날이었다.


그동안 나는 유리문 너머로만 아버지를 봤다.
병원에서는 “잘 계신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 말들을 믿었던 내게, 그날의 장면은 충격이었다.


붉게 헐어버린 살 사이로 하얀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메디폼을 붙인 자리에 손끝이 닿자
아버지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미세한 떨림이, 그게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아픔이었다.


때는 션트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수술 날짜와 검사 결과, 그리고 '옴'이라는 오진까지 겹쳐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나는 욕창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몰랐다.
그저 수술만 잘 되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병과 병원생활 모든 것에 무지했다.


욕창은 쉽게 낫지 않았다.
엉덩이뼈 근처의 상처는 기저귀로 쉽게 오염됐고,
복숭아뼈 쪽은 신발에 닿을 때마다 더 깊어졌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말했다.
“욕창은 한 번 생기면 쉽게 낫지 않습니다.
그저 더 덧나지 않게 관리하는 수밖에 없어요.”

나는 그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 낫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말하는 걸까?’
‘어떻게든 낫게 해야 하지 않나?’

인터넷을 뒤지고, 병실의 다른 간병사와 보호자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들의 경험담 속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욕창 치료에는 마데카솔 분말이 효과적이란 걸 알고 사용해 보고 쉽었지만
내 의견을 쉽게 내뱉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나는 드레싱 해주는 간호사들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치료제를 바꿔보면 어떨까요?”
하지만 돌아온 답은 늘 같았다.
“저희 병원에선 마데카솔 분말 사용하지 않아요. 지금 치료제품들이 더 좋고, 저희가 임의로 바꿀 수도 없어요”
그 말로 대화는 끝났다


가끔 오는 주치의에게 욕창 상처가 낫지 는다며 물었다.

“보호자분이 있으니까 그나마 더 나빠지지 않은 거예요.
욕창은 한 번 생기면 나을 수 없습니다.”

순간 화가 났다.
낫지 않는 게 어디 있어요? 다른 방법은 없나요?”
그때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더 나은 치료를 원하신다면 상급병원으로 옮기세요.”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른데… 환자 보호자의 절박함을

그들은 왜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까.’


병실로 돌아와 억눌렀던 화를 삼키고 있을 때,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보호자님, 스테이션으로 잠깐 오세요.”

주치의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처음 오셨을 때보다 좋아졌습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혹시 개인적으로 구비 가능하다면
레피젤, 이지에프, 마데카솔 분말로 치료해 봅시다.”


그날부터 나도 적극적으로 욕창관리에 참여했다.
간병의 밤은 길고, 고요하지 않았다.

두 시간마다 체위를 바꿔드렸다.
욕창이 다시 깊어지지 않게,
잠든 몸을 뒤집고 베개를 받쳤다.


쉽게 낫지 않는 상처와 싸우는 시간은 길었지만,
살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차올랐다.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주치의가 상처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보호자분, 흔적은 남았지만 이제 완전히 아물었어요.
보호자 덕분이에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몸이 버티고 있었고,

나는 마음으로 그 몸을 붙들고 있었다.

그제야 조금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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