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질 거라는 믿음의 감옥

by JMK

'2년 동안만 참자. 그 안에 아버지는 다시 걷게 될 거야. 그리고 빨리 내 일상을 찾자.'

그때 나에게는 기한이 있었다.

2년.

2년 안에 아버지를 회복시키고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서 내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간병은 노력하면 결과가 따르는 일이라 믿었다.

매일 병실 복도를 걸었고, 물리치료사에게 묻고, 재활 영상을 찾아보았다.
“걷는 연습만 잘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말 하나에 하루를 버텼다.


아침마다 아버지의 운동화를 신겨드리고 팔과 다리를 주물렀다.
아버지는 여전히 말이 없으셨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나아질 거야.’


내가 선택한 병원은 하루 다섯 시간,
오전 두 시간 반, 오후 두 시간 반 —
365일 쉬지 않고 재활을 하는 곳이었다.
집과는 조금 멀었지만, 그만큼의 희망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는 말씀도 못 하시고, 인지도 없었다.
그래서 재활 시간 동안에는 물리치료사들의 손길에 이끌려 몸을 움직이셨다.
나는 그 사이 병실을 오가며 빨래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침대를 정리했다.

30분 재활이 끝나고 5분 쉬는 시간이 되면

재활실로 내려가 뉴케어나 간식을 챙겨드렸다.

“아빠, 한 모금만 더요.”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그게 괜찮다는 뜻인지, 그만하자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떠먹였다.
그 시간마저도 나에게는 재활의 일부였다.


그때의 나는 아직 희망의 감옥 안에 있었다.

“열심히 하면 분명 나아질 거야.”
노력하면 결과가 따라올 거라 믿었다.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요즘 걸음이 조금 좋아졌어요”라고 하면,

그 한마디에 하루 종일 힘이 났다.

낮에는 재활 파트너,
밤에는 체위변경을 하는 간병인이자
아버지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아버지가 말을 잃은 대신
나는 점점 더 많은 말을 하게 되었다.
“아빠 괜찮아요.”

“조금만 더 버텨요.”
“2년만 참아요. 우리 둘 다.”
그 말이 닿지 않아도, 나는 계속 반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전부였다.


하지만,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갔다.
아버지는 종종 음식을 거부하셨다.
“아빠, 조금만 더 드세요. 그래야 힘내서 걷죠.”

재활이 멈추면 회복도 멈출 거라 믿었기에, 그 두려움이 나를 몰아붙였다.
그 두려움은 결국 아버지를 향한 압박이 되었다.


“아빠 안 드시고 운동도 안 하면,
내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요.
그럼 저는 집에 갈게요.
아빠는 여기서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밤이 되면 후회가 밀려왔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으면

‘내가 너무 몰아붙였나…’ 하는 자책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또다시 다짐했다.
“2년만 참자. 조금만 더 버티면 달라질 거야.”


그때는 몰랐다.
이 시간이 ‘끝나지 않을 하루’의 시작이 될 줄은.
이건 회복의 싸움이 아니라,

인내의 감옥이었다는 걸


밤이 깊을수록 피로는 쌓였다.
낮에는 아버지를 부축하고,

밤에는 체위변경을 하며 새벽을 넘겼다.

잠은 사치였다.

한밤중에 들려오는 기계음, 환자들의 신음,
그 사이사이마다 아버지의 숨소리를 확인하며 살았다.


‘이게 언제 끝날까.’
그 물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곧 죄책감으로 삼켰다.
그 끝을 바란다는 건,
아버지의 삶의 끝을 바라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다시 되뇌었다.
“나아질 거야. 반드시 나아질 거야.”


그 믿음이 나를 버티게 했지만,
동시에 나를 가두는 감옥이기도 했다.
나는 그 감옥의 열쇠를 스스로 쥐고 있었다.


이제 와서야 안다

그 믿음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믿음 때문에 더 오래 아팠다는 것도 사실이다.


희망은 나를 살렸고,
또한 나를 갇히게 했다.
그 두 마음 사이에서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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