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가져온 후회

by JMK


2020년 5월, 병원 방문이 전면 차단되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면회를 금지합니다."


병원 입구에 붙은 공지문을 보며 막막했다. 하루 세 번 병원을 찾던 일상이 갑자기 끊어진 것이다.


코로나가 심하던 그때 나는 홀로 본가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병원생활 하시는 아버지 로인해 사람들과 만나지도 어디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병원 측에 요청했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 자신 있으니 식사 때만이라도 챙겨드리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단호했다. 나라에게 지침이 내려왔고 24시간 보호자간병이 아니라 집과 병원을 오가는 면회는 안된다고 했다.

다른 환자들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나니 양해 구한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걱정 말라고 했다. 점점 회복하며 잘 계신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했고 나도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 같다. 4개월 정도 집과 병원을 오가는 생활에 지쳤던 나는 나에게 자유가 찾아왔다고 또 한편으로는 좋아했던 것 같다.


면회는 금지되었지만 가끔 유리문 너머로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조금 이상했다. 살은 점점 빠지고 있었고 내가 아는 아버지의 눈빛은 사라지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실 그동안 아빠 물리치료 선생님께서 가끔 아빠와 통화를 하게 해 주셨는데, 그때 선생님 말씀이 있었다.


"보호자님, 말씀드리기 뭣하지만... 아버님을 집으로 모셔가시는 게 어때요? 제가 치료 때마다 뵙는데 안타까워서요... 아버님은 집에 가셔서 걷기 연습만 하시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도 나는 결심하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 용기가 없었다. 결혼도 안 한 딸이, 아버지의 기저귀를 간다는 게 민망스러웠다.


아버지는 쓰러지신 후 걸음걸이가 불안정하셔서 기저귀를 사용하고 계셨다. 본인은 싫어하셨지만 낙상 위험으로 병원에서 권했었다.

그래서 그동안 걷게 하려고 더 노력했었다.

기저귀 벗고 본인 스스로 화장실 다녀야 본인 자존감도 회복되지 않을까 했었다.

의식 있고 인지 있는 환자가 침대에서 기저귀를 한채 대소변을 본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아버지는 부축하면 화장실 가시는데

다인간병실에 있었던 아버지는 간병사가 아버지만 담당하는 게 아니니 혹시나 모를 낙상위험으로 홀로 다니시지 못하게 하셨다


지금도 후회한다.

'내가 간병했더라면 어땠을까? 기저귀 가는 게 뭐라고 거부했을까?'

' 코로나로 병원출입금지 조치가 좀 더 늦게 이루어졌으면 어땠을까?'

'코로나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그때의 코로나는 단순한 바이러스가 아니라 아버지와 나의 소중한 시간들을 빼앗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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