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아는 사람만 두로와>
유튜브 알고리즘이 어떻게 됐는지 내 재생목록에 <25 Minutes>라는 팝송이 들어왔다. 노래, 게다가 팝송은 잘 알지도 듣지도 않는데 말이다.
여고생 시절, 고등학생이 되었다는 설렘 속에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막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첫 부임해 온 남자 영어 선생님이 있었다. 180cm는 되었을 법한 훤칠한 키와 또렷한 이목구비. 그 자체만으로도 여고생들의 마음을 흔들기 충분했다.
"오늘은 팝송 한 곡을 해석해 보자. 팝송으로 영어에 흥미 붙이는 사람들이 꽤 많거든."
여름날이었나. 수업하기 싫다고 징징댔더니 다음 수업에 까맣고 뭉툭하고 못생긴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고 오신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의 눈이 커지고, 어느 때보다 똘망똘망 빛났다.
은은한 피아노 선율에 올려진 남자 가수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무심한 듯, 뒤로 갈수록 애절했다. 한번 쭉 듣고 한 줄, 한 즐 듣고 해석 시작. 이 노래의 내용은 사랑하는 여자에게 늦게 도착한 한 남자의 회한이 서린 것이었다.
그래서 25분 늦었다는 제목을 가졌구나...
하는데, 늘 씩씩하고 톤이 높았던 영어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먹인다는 느낌이 들어 얼굴을 보니 세상에!! 얼굴 한가득 눈물범벅이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우리 반은 물론 옆반에까지 이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아마도 영어 선생님이 실연을 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오갔다.
그 비슷한 시기에 양호 선생님이 결혼한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는데, 그의 상대는 다름 아닌 '변태'로 소문난 국어 선생님.
하지만 그들의 연애는 우리가 입학 전부터 학교에서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기에 여러 말들만 무성했다.
영어 선생님의 실연이 사실인지, 그저 노래에 심취했던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 채 그 사건은 시간이 지나 조용해졌다.
지금은 좋은 사람 만나 잘 살고 계시겠지.

성이 '손'씨인 데다 웃을 때 큰 목소리로 주책맞게 웃는다 해서 '손지랄'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고등학교 친구는, 셀린디온이 부른 <The Power of Love>를 정말 잘 불렀다.
체격이 작고, AI처럼 수학 문제를 쉬지 않고 쑥쑥 칠판에 풀이했던 수학 선생님을 '어린 왕자'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손지랄 친구가 그 선생님을 대놓고! 흠모하여 수학시간이면 우리는 그 친구를 꼬드겨 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 친구가 수학선생님께 잘 보이게 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수학시간이 너무 싫어 그걸 핑계로 수업시간을 대충 때워보려는 속셈이 훨씬 더 많았다는 건 안 비밀.
노래는 한 곡도 안 부르시면서 일을 하실 때는 꼭 라디오나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두셨던 아빠는, 지금 생각하면 노동요처럼 즐기셨던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트로트 붐이 불면서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해진 가수들이 많다. 그들이 경연을 할 때는 선배 가수들이 불렀던 노래들을 부르는데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 김지애의 <몰래한 사랑>을 들으면 어린 시절, 젊고 힘 있던 아빠가 떠오른다.
곧 복귀한다지.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빠르고 숨통이 터지도록 폭주 기관차처럼 쉬지 않고 노래를 불러댔던 김건모의 노래를 들을 때면,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가 나오면 환호하던 작은 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짝궁이었으면서도 왜 이리 괴롭혔던지. 책상을 반으로 갈라, 지우개나 책 모서리가 조금만 넘어가도 샤프연필로 내 손등을 찔렀던 동창은 그 해 2학기 때 서울로 전학을 갔다.
10년 내내 연락이 없었는데 동창 찾기 어플인 '아이러브스쿨'로 제대 전 100일 휴가를 나왔을 때 다시 만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집과 내가 살던 곳은 같은 동네, 바로 코앞.
덕분에 20대 내내 잘 어울렸는데, 그 친구가 곧잘 불렀던 솔리드의 <천생연분>.
신랑과 연애를 시작하고, 신랑은 아침저녁으로 서울과 수원을 오가며 매일매일 출퇴근을 시켜줬다. 노래에 큰 관심이 없던 나와는 달리, 신랑은 차에 타기만 하면 노래를 듣곤 했다.
그때 들었던 슈프림팀 <그땐 그땐 그땐 >. 노래도 처음 들었거니와 그 노래의 가수도 처음 알았다. 15년이 흐른 지금은 골프 연습할 때 내 운동요가 되었네.
요즘에도 운전할 땐 꼭 음악을 듣는 신랑.
한동안 나얼, 성시경이 부른 <잠시라도 우리>를 불러대 나도 그 노래를 외워버렸다. 언젠가는 둘이 저녁 먹고 들어가는 길에 노래방에 가자고 해서 코인노래방에 들러 둘이서 파트를 나눠 저 노래를 불렀었다.
물론 노래 솜씨는 둘 다 형편없었지만, 그날 그 감정선만은 진중했고 노래에 흠뻑 빠졌었다. 근래에는 잘 부르지 않지만 달큰하게 술이 취한 날에는 샤워할 때 들으며 간드러지게 부르는 것은 빠지지 않는다.
노래를 잘 모르고, 잘 부르지 않는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금방 비라도 쏟아질 것 같은 날씨라 그런가. 오늘은 지인들을 떠올릴 노래를 찾아 들어봐야겠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어떤 맥락으로 어떤 음악을 추천해 줄지도 궁금해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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