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아는 사람만 두로와>
"엄마, 이번 주 토요일엔 언니랑 데이트하고 올게요."
늦잠 자고 일어나 곧바로 쇼핑몰로 출발, 아점을 먹고 놀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 저녁엔 마라탕까지 먹고 귀가하겠다는 계획을 브리핑했다.
매번 각자의 친구들과 움직이더니 이번엔 둘만의 데이트란다. 새삼 아이들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토요일 새벽에 골프 라운딩이 예정되어 있어 그러라 했다. (금요일부터 이어지는 비 때문에 가진 못했다 ㅠㅠ)
소풍 가는 날처럼 그날이 기대되었나 보다. 토요일이면 으레 10시, 11시까지 늦잠 자던 녀석들이 작은애는 9시에, 큰애는 깨우니 벌떡 10시에 일어났다.
"너네들 데이트하는 거면, 엄마랑 아빠도 데이트해야지!"
아이들을 쇼핑몰 앞에 내려주고 신랑이 찾은 연어 맛집으로 갔다. 12시 오픈이라고 해서 1시간을 기다려 1번으로 들어갔는데, 뒤따라온 손님들은 모두 예약을 해두어서 음식을 먼저 받았다.
디지털의 힘은 이다지도 강하면서도, 그걸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정성에 대해서는 외면하기 일쑤다. 다음에 또 가게 되거든 꼭 예약해야지.

아점을 먹고 신랑은 회사에 가야 한다고 해서 도서관 앞에서 내렸다. 최근 시력이 좋지 않아 뭘 읽기가 힘들어진 것을 핑계로 아예 책을 들춰보지 않았다. 사정은 여전하지만 책냄새가 맡고 싶었다.
도서관에는 언제나 그렇듯 책들이 나란히, 빼곡하게 정렬되어 있다. 나는 매번 그 책들을 읽고 싶다는 마음보다 언제가 내 책도 저 어딘가에 꽂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는다. 그러니 또 글을 써보자 다짐도 하고.
열다섯 쯤에 품은 꿈은 언제쯤 사그라들지 모르겠다. 30년도 더 지났으니 그 형제가 묘연해질 만도 한데 말이다.
사그라들지 않는 것에 다행이고 고마우면서도, 그것에 온전히 쏟지 못하는 정성에 매번 자책하며 산다.
도서관에서 나와 집으로 향해 걷는데 발아래 빤닥빤닥하니 탐스러운 열매들이 툭, 툭 떨어져 있다.
작년에 이름을 알게 되고 브런치에도 올렸던 그 주인공, 마로니에 열매다, 그러고 보니 벌써 1년이 지나 그때의 계절이 된 거다.
반가우면서도 세월의 빠름에 당혹스러움 한 스푼.
어느 때보다 무덥고 끈적했지만 계절은 시간을 이길 수 없다.
신랑도, 애들도 없는 빈 집에 도착해 모처럼 고요한 집에서 뒹굴거렸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는 게 아까우면서도 이랬던 적이 있었나 싶어 이 또한 만끽하고 싶은 맘.
주말을 맞아 애들 간식으로 먹이려던 알밤이 배송되었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러저러하게 가을을, 계절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날인가 보다,
이어서 하루 종일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두 아이가 재잘재잘거리며 귀가했다. 어느새 부모가 지켜보지 않아도 서로를 보듬으며, 서로에게 맞춰가며 놀이를 할 줄 아이들.
인간의 원성 속에서도 차곡차곡 익어가고 있었던 계절.
그렇게 사람도, 계절도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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