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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꼼땅꼼 Oct 02. 2024

먹지 마세요, 밤의 탈을 쓴 마로니에 열매

내 인생 메뉴 <주전부리>편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지나던 아주머니 한 분이


"오메, 알밤이 여기 이리 많네."


호들갑스럽게 말씀하셨다.

도심 한가운데에 알밤이? 생율, 구운 밤, 삶은 밤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내 귀는 커질 수밖에. 무심한 척 쓰윽 곁눈질로 아주머니가 발로 퉁퉁 거리는 곳을 봤다.


알밤을 똑닮은 마로니에 열매


런.... 알밤이 아니다, 밤의 탈을 쓴 마로니에 열매일 뿐.


알밤을 닮아 토실토실하게 생겼지만 절대 알밤이 아닌,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 마로니에 열매 혹은 가시칠엽수 열매다.

계속해서 속다가 작년에 결국 검색해서 존재를 파악했지만 올해 또! 속고 말았다.  


(출처) 위키백과 사전





동네 뒷산은 대부분 소나무로 우거졌지만, 우리가 도토리라 알고 있는 상수리나무, 은행나무, 그리고 알밤 나무들이 부분 부분 군집 지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알밤 나무는 사당을 지키며 살고 있는 옥골 할매댁 뒷마당으로 수북했다. 가을 아침이면, 이슬이 걷히기도 전에 옥골 할매집 뒷산으로 숨어들었는데 밤새 툭, 툭 떨어진 알밤을 줍기 위해서였다.


(이미지.출처) Pixabay


뒷산에 있는 알밤은 실했다. 실했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리만치 옹골졌다. 뾰족한 밤송이를 양쪽 발로 야무지게 잡아 끝쪽으로 힘을 주면 탁 벌어지며 모습을 드러내는 알밤들. 대개 세 알이 사이좋게 송송 빼곡하게 박혀있고, 두 알이거나 한 일이라도 대신 아쉽지 않을 만큼의 크기였다.

큼직하고 빤딱빤딱한 알밤은 몇 알만 주워 담아도 비료포대가 금세 찰 정도로 알찼다.


드물게 늦가을이라도 초록빛의 밤송이를 발견할 때가 있었다. 덜 여문 밤송이는 그것대로의 매력이 있다. 양쪽 발로 쫙 잡아당긴 후 나뭇가지로 가운데쯤을 콕콕 쑤시면 곧 아직 여물지 않아 껍질이 하얗거나 갈색으로 변해가는 껍질을 입은 알밤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잘 여문 것에 비해 껍질이 손쉽게 벗겨진다.


앞니로 겉껍질을 깐 후 손톱으로 적당히 힘을 줘 율피 한 겹을 벗겨내기 시작하면 홀랑 맨몸을 드러낸다. 아직 덜 여문 생밤은 달지 않지만 그 나름대로의 새콤하고 떫은맛이 있다. 그 맛이 또 일품이다.  


"이 눔의 새끼들이!!"


새벽이든, 낮이든 가을날의 뒷산에는 옥골 할아버지가 지키고 있을 때가 많았다. 봄여름겨울에는 마을에서 존재감 없던 그 할아버지는, 가을만큼은 전래동화 속 도깨비 영감마냥 제법 큰 덩치에 목소리도 크고, 성을 잘 내는 할아버지로 인식될 만큼 뒷산의 알밤을 사수하셨다. 


어느 해에는 옥골 할아버지가 휘두르는 지팡이에 맞은 적도 있다. 나는 그나마 헛맞아 크게 아프지 않았고 상처도 금방 사라졌다. 하지만 동네 오빠 중 하나는 제대로 맞아 등허리에 길쭉한 짝대기 표시가 고스란히 남았을 정도로 좀 고약하신 분이었다.


"옥골 할배가 아프대."


그러고 보니 어느 해 가을, 언제 가도 동네 아이들을 쫒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그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그 해 겨울, 옥골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연세가 많으셨다.


이듬해, 그리고 한두 해쯤 더, 옥골 할매가 할아버지가 했던 역할을 하셨다. 그러나 체격이 작고 앙칼지기만 한 옥골 할매는 알밤 나무를 지키는 것보다 가을철 밭에 널어진 농산물 수확에 더 열을 올렸기에, 옥골 할아버지만큼 우리를 단속하지 못했다.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사라진 쫓김은 금세 시들시들해졌다.


그리고 곧 옥골 할매는 뒷산 사당을 떠나 동네 구멍가게였던 집으로 이사하면서, 이제 뒷산은 우리들 차지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그렇게 쫒고 쫓기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옥골 할아버지 뒷마당에 떨어진 알밤을 주워갈 땐 신나고 재미있던 일이 더 이상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는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점점 그곳을 찾지 않게 되었다. 지금도 알밤 나무가 우거졌는지는 모르겠다.




초등학교 교실 한가운데에는 난로가 있었다.

가끔 머리가 아플 정도로 매캐한 연기가 교실 한가득 채우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 난로 하나에 의지하며 겨울방학이 되기까지 견뎠다.


늦가을, 숙제를 하지 않은 아이들은 집게와 포대 자루를 들고 학교 뒷산으로 가서 빈 밤송이를 한가득 주워와야 하는 벌을 받았다.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한 반으로 지내온 우리 반에서 공부를 잘 못하거나, 숙제를 매번 하지 않아 선생님께 단골로 이름을 불리는 애들은 몇몇 정해져 있었다.


(이미지.출처) Pixabay


꽤 추웠던 그날도 서너 명의 남자아이들의 이름이 불리었고, 그들은 당연한 일상인 듯 집게와 포대자루를 들고 뒷산으로 갔다. 사실 그 아이들이 해오는 밤송이는 남은 우리를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하는 영양분이었다.


"펑! 펑! 펑!"


정확히 몇 번이었는지 모를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교단에 서있던 선생님도, 의자에 앉았던 우리도 전쟁이라도 난 듯 일제히 책상 밑으로 숨어들었다.


빈 밤송이 껍질을 주워서 난로에 넣어 태우는데, 그중 알밤이 섞였던 모양이다. 나근나근하게 타오르는 불 속에서 팽팽하게 달아오른 알밤이 펑! 하고 터진 것이다. 마치 옛날이야기 같던 이런 에피소드는, 사실 시골에 살았기에 겪을 수 있었던 이야기들. 그때는 놀라기도 하고, 몇 번 반복에 심드렁해지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아닌 추억 속 이야기다.



"맨날 뒷산에 가서 나무 해오던 멤버 중에 너도 있었잖아!"


얼마 전, 동탄에서 정육점을 하는 친구네에 초등학교 동창과 찾아갔다. 옛 얘기를 하던 중에 그런 말이 나왔는데 그 친구는 부인하지 않았다.

부인해봤자 최소 6년을 같이 지냈던 우리가 증인이기에 통하지도 않는다는 걸 이미 아는 거다.


초등학교 때, 그리고 20대 젊은 시절 패기와 반항으로 이름깨나 날리던 그 친구는 지금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멋지게 살고 있다. 매년 알차게 여물어가는 알밤처럼 말이다.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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