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필리핀으로 출장 갔을 때, 법인 담당자는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가 그렇게 물었다. 실은 그때까지만 해도 곱창이란 걸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 씩씩하게 대답했다.
나로 인해 법인 담당자가 오래도록 고민하는 게 미안했고, 우르르르 여러 명이 가는 석식 자리에 메뉴로 까탈스럽게 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 만한 연차도 되지 않았을 때고.
자신 있게 대답을 하고 모두가 함께 이동하는 봉고차 안.
어릴 적 일요일 점심때마다 했던 삼겹살 먹는 척(!) 신공을 다시금 선보여야 하나, 점차 걱정이 몸집을 불렸다.
3박 4일간의 출장 동안 법인 담당자들은 매끼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고 노력했다. 황송하고 호사스럽다고 여길 정도로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식당으로 데려가 주셨는데, 그러하기에 깨작거리는 건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열심히 먹는 척을 할 테지만 아무래도 출장자가혼자라 자주 시선이 모이게 되어 금세 탄로 날 것이 틀림없었다.
퇴근길, 막히는 고속도로를 꽤 오랜 시간을 달려 한식당이 몰려있는 식당가에 도착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식당 문을 열고 곱창집에 들어서니 벌써부터 끈적한 기름기가 온몸을 휘감는 듯 눅진한 기분이 들었다. 예약된 자리에 앉자 좌석이고 식탁, 수저 그리고 물컵에까지 끈끈한 기름기가 달라붙은 듯한 느낌.
곧 단단하고 까만색의 석쇠가 테이블 한가운데 놓였다. 두툼한 석쇠 위에 둘둘 말린 곱창과 잘라진 양파, 양념된 부추, 생마늘 등등 한국 식당에서 먹는다 해도 믿을 만한 비주얼이었다.
지글지글 구워지면서 냄새가 피어올랐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옅은 갈색빛이 돌자 누군가 가위를 들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그리고는 조각난 곱창을 앞으로, 뒤로 굴려가며 구웠다.
그러는 동안 곱창은 꽤 많은 기름을 토해냈고, 그 기름은 양파와 김치, 부추무침 사이로 빠짐없이 파고들어 그들에게도 촉촉함을 선사했다.
“자, 어서 먹어요.”
절대 처음 먹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나는 호기롭게 젓가락을 들고 잘린 곱창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앗! 뜨거뜨거.”
티 내지 않으려고 후다닥 입속에 넣었던 곱창에서 곱이 터져 나와 입안 가득 퍼졌다. 얼마나 뜨거웠던지 후타타 말도 못 하고 눈물까지 쏙 났다.
“곱창을 엄청 좋아하나 보네.
그렇게 뜨거운데 식히지도 않고 한 입에 꿀꺽하냐."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물을 머금은 내 모습을 보며 농담을 건네는 법인 담당자가 좀 얄미워지려는데....
와우!! 이거 왜 이리 맛있어!!
뜨거움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입안 가득 고소함이 들어찼고, 적당한 쫄깃함의 텐션도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그뿐인가. 조금 느끼하다 싶으면 같이 먹는 부추무침은 개운하게 해 줬다. 오히려 둘둘 말린 곱창의 양이 적게 느껴질 정도로 그날 나는 곱창을 먹고 또 집어먹었다. 그야말로 흡입 그 자체.
그렇게 곱창에 입문했다. 바로 필리핀에서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모든 식당의 곱창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어떤 곳은 비릿한 냄새가 났고, 어떤 곳은 비계 같은 물컹한 식감 때문에 놀라 후다닥 씹던 것을 내뱉기도 했다. 이후 몇 군데를 다녀보니 그래도 곱창업계에서 유명한 한 프랜차이즈점이 내 입맛엔 맞았다. 실험할 생각은 없어서 곱창이 메뉴로 정해지면 나는 그 식당을 고집하는 편이다.
고기를 잘(!) 먹진 못하지만 시도는 해보는 끝에 입문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곱창이 그랬고, 우거지감자탕도 그나마 조금, 순대도 병천순대 등 진짜 말고 가짜 순대 정도.
이리 육류를 가리는 데엔 사실 어릴 적 기억의 영향이 크다.
시골에서는 소, 돼지, 닭, 오리, 염소 등의 가축을 집에서 키우다 잡아먹는 일이 다반사다. 동물을 사냥하는 수렵생활에서 거주지를 갖고 동물이든 식물이든 먹는 걸 직접 키우는, 우리네 조상들이 한단계 발전시킨 것이었을 터.
우리 집에서도 저 가축들을 한 번은 다 키워보았다.
봄이면 병아리라 불릴 수 없는 크기, 그런데 소리는 삐약삐약 거리는 영계를 20~30마리 가지고 와 그 해 여름까지 초복, 중복, 말복 등에 먹었다.
염소나 소는 매일같이 산에 데리고 가 풀을 뜯겼다.
돼지는 옥수수 알갱이가 섞인 사료를 주곤 했는데 그 배설물 냄새가 지독하다. 돼지는 새끼를 정말 많이 낳는다.한 번에 10마리 이상은 거뜬. 새끼 돼지가 태어나면 손톱깎이로 이빨을 잘라준다. 어머 돼지의 젖을 물어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대개 동물들은 어릴 땐 부드럽고 귀여운데, 유독 돼지는 뻣뻣한 털을 가졌다. 돼지를 한번 만져보면 왜 머릿결이 안 좋은 사람에게 '돼지털'이라 하는지 이해가 쏙쏙 된다.
그리고 매우 시끄럽다. 밥 먹을 때도, 가만있을 때도.
돼지 멱따는 소리.
세상 시끄럽고 고통스러운 소리다. 잔인하고 미개하다 할지라도 인간은 결국 그렇게 먹이사슬의 최고점에서 다른 가축들의 피와 살을 섭취하고 살아왔다.
그저 내가 자라온 곳이 아직 덜 발달된, 세련되지 못한 시골이라 그걸 두 눈으로 목도하고 자란 것일 뿐.
우리 집에 넓은 앞마당과 그 옆에 시원시원하게 물을 쏟아내는 시암(샘의 방언인 듯)이 있는 게 싫었다.
또한 좋은 건 큰아버지께 다 해주면서 매월 지내야 하는 제사나 그 많고 많은 농사일은 둘째 아들인 아빠께 몰아주는 조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심지어 아들 없는 친척집에 아빠를 양자로 호적에 올렸다. 제사를 위한, 암묵적인 약속일 뿐이라 들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명절이나 제사, 시제 등 큰 일을 앞두고 마당에는 앞뒤 다리가 묶인 돼지가 드러누워 끊임없이 울어대는 일이 허다했다. 곧 죽을 걸 알고 누워있는 기분은 어떨까, 나는 어릴 때 창문 너머 마당에 널브러진 돼지를 보며 생각했다.
정말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면 사방이 탁 트였음에도 마당엔 비릿한 피냄새가 진동했다.
작은아버지를 비롯한 동네 어른들은 차곡차곡 발골하고 부위를 나누고 피를 모았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일이라도 저녁 늦게서야 일이 끝난다.
진짜 순대.
당연히 먹고 자랐다. 그러하기에 나는 그것이 싫었다. 오히려 '가짜'나 '인공적인' 것에 더 손이 간다.
반면 같은 집, 같은 걸 보고 자랐는데도 동생은 생 것을 좋아한다. 큰 몸집에서도 손바닥만큼 밖에 안 나온다는 어떤 내장 부위를 먹으려고 시암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어른들 틈바구니에 끼어 앉은 동생의 모습은 지금도 선하다. 그런 모습 때문에 동생은 어른들에게 이쁨을 받았다.
그래, 환경의 문제는 아니었던 듯하다.
같은 집, 같은 것을 보고 나는 오히려 육류에 등을 돌렸고, 동생은 그 맛있는 것이라 했으니. 그냥 내 입이 짧고 좀 더 유난스러웠을 뿐.
이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 까탈스러움이 사라지나 보다.
동네에서 좀 더 가면 젖소를 키우고, 돼지를 대량으로 사육하는 마을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그곳을 지날 때면 지독한 똥냄새에 인상을 구기곤 했다.
그러나 그 동네에 아이들은 참으로 부유했다. 그들의 부모님들은 소를 통해 얻은 우유를 팔았고 나중엔 소를 파니 현금유동성이 좋았던 거다.
돼지집 경숙이는 남자 애들의 놀림거리가 되곤 했다.
부모님의 직업이 자식의 무기가 되기도 하고, 놀림이 되는 건 지금이나 예나 똑같은 모양.
음식에 관한 글을 써봐야지, 시작했을 땐 곱창은 내 메뉴판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올해 또다시 필리핀으로 출장을 갔고, 오래전 만났던 법인 담당자는 임원급 팀장으로 다시 그곳에 있었다.
"팀장님, 그거 아세요? 제가 필리핀서 처음으로 곱창 먹었잖아요. 그때 팀장님 무서워서 말도 못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