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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꼼땅꼼 Oct 03. 2024

달콤 촉촉 고구마 맛탕

내 인생 메뉴 <주전부리>편


"너네 집 주소 안 바뀌었지?"


"응, 그렇지요. 왜요?


"요즘 고구마 좀 캤는데 좋아서 애들이랑 먹으라고 보낼게.

  하도 택배 보낸 지라 오래라 주소 바뀌었는지 확인하고

  보낼라 했지."


이틀 전엔가 엄마께 전화를 받았을 땐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을 때였다. 그 와중에도 엄마가 택배를 부치기 위해서는 박스에 담아 차에 싣고 운전해서 우체국을 가야 한다는 것이 먼저 떠올랐다. 무거운 박스도 신경 쓰였고 무엇보다 운전하는 것이 걱정되었다.

 

"엄마, 담에 우리가 가서 가져갈게요."


"너네가 언제쯤에나 올란지도 모르고, 아빠랑 같이 가서 부칠게."


결국 고구마가 도착했다. 이번 주 국군의 날 임시공휴일과 개천절, 그리고 내일 지나면 주말이라 쉬는 날이 많은데 딱 알맞게 도착했다.


튼튼한 박스에 담겨 배달온 고구마, 참 튼실하다


예상했던 대로 엄마가 보내주신 고구마는 10kg 박스를 가득 채워 묵직했다. 보지 않았어도 고구마를 캐느라 종일 쪼그려 앉아계셨을 테다. 또 그 무거운 박스를 우리 집, 오빠네 집, 큰언니네 집 등 곳곳으로 부치셨을 테다. 전치도 못한 허리나 다리가 얼마나 아팠을지.


엄마한테는 괜찮다고 부치지 말라고 했으면서, 막상 받아서 박스 뚜껑을 열어 튼실하고 딴딴한 고구마를 보니 마음이 풍성해진다.


"고구마 맛탕 해주세요."


박스 안에서 남자 주먹만큼이나 큼직한 고구마를 골라 물에 씻었다. 마른 흙에 얼굴을 감췄던 고구마는 물로 깨끗하게 닦아내니 참으로 말간 얼굴을 드러냈다.  

자줏빛의 고구마를 도마 위에 올리고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다시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자르기. 볼에 담아 물로 샤워시켜 주면 전분기가 한번 씻겨 내려간다.


한번 쓰고 난 후의 기름을 처치하기가 곤란해 여간해서는 시도하지 않는 튀김. 그렇지만 고구마 맛탕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해야 한다.


맹렬하게 끓는 기름 속에서 잘 익어가는 고구마


기름에 튀기는 건 두 번은 해줘야 비로소 '튀김'으로서의 그 맛이 제대로 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른 고구마를 반으로 나눠 볼 하나에 담긴 것을 먼저 한번 튀기고 기름종이를 깐 바구니에 꺼내 한 김 식힌다. 그러는 동안 또 다른 볼에 든 고구마를 또 튀긴다.

그렇게 4번을 반복하면 2개의 볼에 든 고구마가 노랑노랑 발그레하게 열이 올라 그 색감이 더욱 선명하게 변해있다.


궁중팬에 다시 부어 그 위에 끈적하고도 달콤한 꿀을 줄줄줄 충분히 뿌려준다. 그러는 동안 튀겨서 좀 딱딱해진 고구마는 촉촉해지며 한숨 누그러진다.


벌꿀도 지난 추석에 친정서 가져온 것이다.

내가 뭔가를 만들고 요리한다고는 하지만 우리 집의 근본적인 재료나 메인은 대부분 친정에서 공수한 것들이다.


꿀을 넣고 살살 저어주며 고구마 속에까지 그 달콤함이 잘 스며들도록 한다. 그러는 동안 꿀은 뜨듯한 열기에 사르르르 녹았다가 카라멜라이징이 되면서 점차 그 끈기에 밀도를 높여간다.


"엄마, 꿀타래 같은 게 있어요!"


완성한 고구마 맛탕, 참깨도 솔솔 뿌려 마무리!


막 예쁘진 않지만 나로선 최선을 다한 고구마 맛탕 완성!

포크를 든 아이들의 손이 빨라지는 시간이다.


아이들에게 외할머니께 영상 통화를 걸어 잘 먹겠다고 인사드리라 했다. 참 무심하게도 추석 이후 첫 통화다.


"우리 강아지들 맛있게 많이 먹고, 또 보내달라 해."


"잘 먹겠습니다!"




큰 애가 초등학교 3학년, 작은 애가 입학해 1학년이던 몇 년 전, 아이들을 봐주시던 시어머님께서 강릉댁으로 가시고 이제 우리끼리 해결해 나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먼저 내가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다.

입사 20년 만에 처음으로 휴직이란 걸 해보는 것이었다.

아직 법으로 육아휴직이 1년일 때였는데 내가 다니는 회사는 복리후생으로 1년을 더 줘 2년, 두 아이니까 총 4년을 육아휴직으로 쓸 수 있었다. 있으면 뭣하나, 결국 그 해 1년의 육아휴직만 사용하고 아직까지 3년이 남은 채다.


육아휴직의 시간은 참으로 귀하고 빨랐다.


(이미지) 작은 애의 캐릭터 + 고구마^^


코로나 19가 터지기 전이었는데, 나는 나름 엄마 역할에 충실하고 싶었다. 그래서 종종 고구마 맛탕을 해서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운동장 한 편에 있는 등나무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하교 후 운동장으로 나온 아이들은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리도 반갑게 뛰어왔다. 그리고 등나무 아래서 어떤 때는 벌레에 쫓기며, 어떤 때는 친구들과 함께 내가 해준 고구마 맛탕을 먹곤 했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시간이라 기억나고, 감사하다. 아이들의 기억에 언제까지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추억할 수 있었다. 





구마는 땅 속에서 자란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배나 사과는 나무에서, 땅콩이나 고구마는 땅 속에서 자란다고 당연하게 알았는데 의외로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최근 느끼게 되었다.


땅 속에서 자라기에 그걸 수확하기 위해서는 호미 등의 농기구를 이용해 땅을 파야 한다. 아무렇게나 파서는 몇 달 동안 잘 자란 고구마가 다치기 십상이다. 상품의 가치도 떨어지거나와 곱상한 고구마가 아무래도 좋지 않겠는가.



아주 어릴 때라 기억이 선명하진 않지만, 굉장히 큰 밭에서 또 굉장히 빨간 흙(황토)이었다고 기억난다. 정말 많은 일꾼들이 삼베옷 같은 것을 입고 큰 밭에 가득했다.


고구마를 수확하는 날이었다.


곧 쟁기를 연결한 밧줄을 인 황소가 밭에 들어섰고, 한 아저씨가 후워이 후워이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하면 황소는 큰 눈을 꿈벅이며 밭을 걸었다. 황소가 지나간 뒤로 흙 속에 숨겨진 고구마들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일꾼들은 다닥다닥 붙어 앉아 황소가 일구고 지나간 고랑에서 고구마 넝쿨을 캤고, 그러면 힘쎈 아저씨들이 고구마를 바구니에 담아내어 갔다.


우리 집은 왜 이리 농사를 많이 짓는 걸까. 그럼에도 왜 이리 가난한 걸까. 어린 시절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질문 중 하나였다.


큰 황소와 많은 일꾼들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는 이유는, 뜨거운 여름 내 애써 키운 고구마를 너무나 함부로 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저 자기 갈 길을 가는 황소의 쟁기가 야속했고, 호미를 막 휘둘러 자꾸만 고구마에 생채기를 내는 일꾼들이 미웠던 것이다.




고구마 수확이라면 생각나는 장면이 또 있다.


엄마와 산뫼 밭이라는, 논보다 높은 곳에 있고 소나무 대여섯 그루가 심어진 작은 산과 연결된 밭이 있었다.

옆집 당숙모의 밭이었는데 그중 작은 땅뙈기를 얻어 고구마나 참깨를 심었었다.


고구마를 캐러 가자는 말에 따라나서기는 했는데, 그날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금세 비가 한바탕 쏟아질 듯 하늘은 묵직했고 구름은 자꾸만 두꺼워졌다.


결국 고구마를 캐고 있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니 이제 집에 갔으면 좋겠는데 엄마는 이것까지만, 이 고랑까지만 하면서 꼼냥꼼냥 앞으로 나아가셨다.


고랑의 끝은 산과 연결돼 있었다.


"소나무 아래로 가서 비 좀 피하고 있어."


마냥 쉴 수도, 그렇다고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아서 어정쩡하게 고구마를 캐고 있는 엄마 뒤를 따라갔다.


"악!!!! 저리 가!!!"


엄마의 외마디 소리 후에 뒤에서 본 엄마의 손길은 어느 때보다 빨랐고 다급했다. 쪼그려 앉았던 것에서 반쯤 몸을 세워 엄마는 호미를 내리치고 또 내리치셨다.

그러면서 연신 내게 소리를 치셨다.


"저리 가, 멀리 가!!"


나는 이유 모를 무서움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고랑의 반대쪽 끝으로 도망가 엄마의 뒷모습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넋이 반쯤 나간 엄마가 내가 서있는 쪽으로 오셨다.

엄마의 옷은 비에 젖은 데다 황톳빛 흙도 잔뜩 묻어 지저분해져 있었다.


"이제 그만 가자."


내가 캐놓은 고구마를 가지고 가야지 않느냐 하니, 엄마는 힘이 없다며 내일 와서 가져가자고 했다.


"엄마?"


엄마는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비를 맞으며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더 이상 엄마께 뭘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야 들은 말.

엄마가 땅 속 고구마를 캐다가 아무래도 뱀 집을 건드렸던 모양이다. 어미 뱀과 함께 알에서 깬 지 얼마 안 된 새끼뱀이 서로 엉키고 설켜 자꾸만 기어 나오는 통에 엄마는 화들짝 놀라셨던 것이다.


호미로 살짝 들어 산 쪽으로 툭 던진 것은 처음 한 마리, 그 뒤로 정신없이 쏟아져 나오는 뱀 무리에 엄마는 그때부터는 호미를 휘두르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그걸 내가 보면 놀라자 빠질까 봐 그 와중에도 자꾸만 나에게 멀리 가라고 소리를 치셨던 것 같다. 우리 엄마도 뱀을 엄청 무서워하시는데... 얼마나 도망치고 싶었을까.


빈 집에 혼자 있는 건 무서워하면서, 어두운 밤에 옆집에 혼자 가시는 건 무서워하시면서. 엄마는 그렇게 농사일 앞에서는 강인하다 못해 억척스러웠다. 렇게 농사지어 돈을 벌어야만 자식들 안 굶긴다는 생각, 그 생각 하나뿐이셨겠지.


그런 엄마의 고구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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