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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꼼땅꼼 Sep 29. 2024

휴우!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콩 땅콩 콩 땅콩

내 인생 메뉴 <주전부리>편


어린 시절, 집에서 걸어가도 1분 안에 도착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댁(큰집이라고 불렀다)에 가면 할아버지는 안방에 두터운 이불 깔고 앉아 꼼지락꼼지락 뭔가를 하고 계셨다. 원래도 체격이 작으신 분이었는데 그렇게 쪼그려 계시니 더 작아 보였다.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건 소일거리다. 가을이면 콩을 방 가득 펼쳐두고 콩 속에 섞인 흙덩이나 마른 나뭇잎, 못난 콩을 골라내셨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계절에 상관없이 자주 볼 수 있었던 건 일일달력을 조각내는 장면이다. 너무도 얇아서 뒤에 쓰여진 날짜가 보였던 그 일일달력을 매일같이 뜯어내 접고 또 접어 손톱으로 꾹 눌러

짙은 금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천천히 잡아당기면 도시락 김 같은 크기의 조각들이 8장인가, 12장이던가 생겨났다. 검소하셔라기보다는 할아버지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신 듯하다.


반듯하게 자른 조각난 종이는 한 곳에 모아두셨다가 화장실 갈 때마다 2장 내지는 4장을 쓰시곤 했다. 아직 동네에 현대화 바람이 불기 전인 초등학생 시절 때라 할아버지 댁의 화장실은 마루를 지나 마당을 걸어 구석진 곳에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종이를 챙겨 들고 느릿느릿 화장실에 가시면 창호지가 찢어져 구멍 난 창살문에 눈을 대고 할아버지를 살폈다.

드디어 화장실에 들어가시는 걸 본 후 나는(가끔은 동생과, 또 가끔은 뒷집 동갑내기 사촌과 함께) 서둘러 벽장의 문을 열었다. 벽장의 쿰쿰한 먼지 냄새와 함께 고소한 콩 냄새가 훅 와닿았다.


그곳은 할아버지의 간식 창고다.

묵직하고 하얀 천으로 덧댄 솜이불이 잘 개어져 차곡차곡 쌓여있었는데, 칸칸마다 손을 넣어 옆으로 옆으로 싹 겨보면 뭔가가 손끝에 만져졌다.

땅콩, 검은 서리태 콩, 하얀 백태 콩을 볶은 것이거나 가끔은 감을 썰어 말린 말랭이도 있었다. 제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면 네모난 한과(산자라 불렀다)나 오돌오돌 꿀로 뭉쳐진 오란다 같은 맛난 것들도 있었다. 박하사탕은 늘 있었던 것이고.


할아버지는 아주 드물게 벽장 속 볶은 콩을 한 줌 꺼내 우리들(나와 동생, 뒷집 사촌)에게 나눠주시곤 했다. 그런데 그 양이 너무도 적어서 매번 감질났다. 할아버지가 천천히 간식을 꺼내시는 걸 봐버린 우리는, 그렇듯 종종 심심찮게 할아버지의 간식 창고에서 잘도 빼먹었다.

할아버지가 계속해서 모르셨는지는, 모르겠다.



늦가을날이었다.

온 동네가 추수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날이 지나고, 벼로 가득했던 들판에는 지푸라기 더미가 쌓였다. 이제 논에는 황새나 까마귀들이 날아들며 지푸라기 더미 속에 숨은 도마뱀이나 땅속을 파고드는 미꾸라지와 우렁이를 부리로 쪼아 먹었다.


소나무가 사시사철 푸르르다고 하지만, 늦가을에는 여름에 파랬던 솔잎이 노랗게 변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검은 가마솥에 물을 데워서 썼던 우리 집은, 겨우내 불을 떼야하는 솔가지를 모아야 했다.

(솔가리→솔갈비→갈비, 땔감용으로 모아놓은 소나무 가지를 '솔가지'라 다.)

 

나와 동생, 그리고 뒷집 사촌은 그때쯤엔 매일같이 갈쿠리와 해진 포대자루를 가지고 산에 올랐다.


산은 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었는데, 오른편에선 주로 동네 남자애들이 놀았다. 그 애들은 매번 노는 것 같은데 우리는 심심찮게 농사일을 도와야 하고, 이렇게 솔가지도 모아야 하는 게 좀 창피했다. 그래서 우리는 강가와 맞닿아있는 왼쪽 산으로 주로 갔다.


서둘러서 하면 포대자루는 금세 찼다. 그만큼 산에는 솔가지가 많았고 갈쿠리로 쓱쓱 긁어모아 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일은 매번 그렇게 쓱쓱 되지 않는다. 우선 하기 싫은 마음이 크고, 흙놀이도 해야 하고, 땅따먹기도 해야 한다.

우리는 놀다가 놀다가 어둑어둑해질 때쯤에야 바지런히 솔가지를 담아 집으로 가곤 했다.


"우리 콩 구워 먹어볼까."


산자락 끝에는 할아버지네 밭이 있었고, 할머니는 바쁘셨는지 아직 콩을 수확해지 못해 콩대는 매일매일 말라가고 있었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다는 매일 반복되는 놀이에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간식창고를 채워줄 콩들이 눈앞에 잔뜩 있기도 했고, 다른 집도 아니고 할아버지네 거니까 괜찮다, 하는 서로의 다짐.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마른 솔잎을 수북하게 쌓고 그 위에 할아버지네 밭에서 뽑아온 콩대를 올렸다. 늦가을의 마른 콩은 꼬투리를 비틀어 콩알을 꺼내려하면 쑥쑥 뿌리째 뽑혀서 어쩔 수 없이 통째로 태우기로 했다. 우리는 성냥개비를 여러 번 그어 불을 붙였다.


타닥타닥, 콩대는 야무지게 소리를 내며 불탔다. 그러면 불에 달궈진 콩깍지가 몸을 비틀며 탁! 열렸고 노란 콩알이 바닥으로 굴렀다. 우리는 불이 커지지 않도록, 그리고 멀리 달아나는 콩알을 주워 다시 불 속에 던지느라 동그랗게 싸고 앉았다.


탁! 콩 투리가 좀 크게 소리를 냈고 작은 불이 붙은 그것은 툭 튀어버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바싹 말랐던 콩껍질들이 사방으로 팝콘 터지듯 터지기 시작했다.


"네가 오줌 싸서 꺼 봐."


남자인 사촌에게 오줌으로 소방수처럼 불을 끄라고 하고, 한쪽으로 돌아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냥 재미있었다. 그런데 마른 솔잎은 본격적으로 불을 끌어당겼고, 불은 순식간에 몸집을 확 키웠다.


불과 몇 분 사이, 장난스러웠던 마음이 차갑게 식고 무서움이 달려들었다. 이대로 불이 계속 커지면 산불이 날 것은 초등학생인 나도 예감할 수 있었다.

급한 마음에 신발로 을 쳐대 흙가루를 불 위로 뿌렸다. 작아지긴 했지만 꺼지지도 않았다.


이제는 길도 냇가도 정비되었지만 어린 시절에는 꼬불꼬불, 냇가도 크지 않았다. 이번 추석에 밤길 산책에 나서 산과 들, 냇가를.지났다.


"냇갈로 가서 물 떠 오자."


아직 솔가지를 담지 않은 포대 중에는 비닐로 만들어진 비료포대도 있었다. 동생에게 불을 지키라고 하고 나와 사촌은 한달음에 냇가로 갔다. 빨리 불을 끄고 싶은 마음에 포대 한가득 물을 담았는데, 너무도 무거워 산에 올라가는 길에 자꾸만 물은 넘쳤고 쏟아졌다. 마음은 바쁜데 마음처럼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사촌과 내가 냇가의 물을 세 번 정도 떠서 들이부었다. 나중에는 신발까지 벗어서 신발 안에 물을 떠갈 정도로 마음이 급했고 긴박했다.

불은 휘리릭 연기만 남긴 채 사라졌다. 다행히 산으로 불이 번지지 않았다. 우리의 옷은 물에 젖어 엉망이었고 그제야 정신이 드니 부르르르르 추위가 몰려왔다.

사촌도 나도 멍하게 있는데 두 살 어린 동생이 꾹꾹 참았던 무서움이 그때서야 느껴졌던지 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하마터면 동네 산불로 이어질 뻔한,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억이다. 럼에도 우리는 아직까지 그 일을 어른들께 말해 본 적이 없다. 나름 완전 범죄. 우리만의 기억이다.




그 후로 2~3년이 지난 봄날, 집에 있는데 비닐하우스서 일하던 엄마가 맨발로 마당에 뛰어들어왔다. 마당 시암에 있는 빨간색 큰 다라이를 들고 후다닥 나가셨다. 할아버지네 밭에서 불이 났다는 거다.(우리가 콩대를 뽑아 구워 먹으려 했던 바로 그 밭이다)


서둘러 신발을 꿰어 신고 따라가 보니 이미 뒷산은 매캐한 연기가 긴 꼬리를 팔랑대고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일렬로 쭉 서서 누군가 냇가에서 퍼올려주는 물을 옆 사람에게, 옆사람에 옮기며 불난 곳에 물을 들이부었다.


잠시 후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소방차가 도착했다.

소방관들은 긴 호스를 밭으로 끌어당겨 촤아아 물을 쏘아댔고 그 세찬 물줄기에 물은 힘없이 꺼졌다. 그날이 소방차와 소방관을 직접 본 최초의 날이었다.


시골에선 봄날 논두렁이나 밭두렁을 많이 태운다. 겨우내 잠들었던 벌레도 태우고, 그 해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다. 할아버지는 밭두렁을 태우러 나가셨고, 그런데 생각보다 사납게 부는 봄바람에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렴풋한 기억에 할아버지가 입원을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셨었다.


그렇게 불타오르는 산불을 보며, 어른들을 모른 채 우리끼리 고군분투해서 끈 그날의 작은 불이 생각났다. 어쩌면 그날도 이렇게 큰 불이 될 뻔했구나, 다시 한번 식겁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주에 사지 못한 쪽파를 사기 위해 다시 재래시장에 갔다. 재래시장은 항상 시끌벅적하고 생기가 돈다.

쪽파를 사는 게 목표지만  자꾸만 해찰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튀김이나 떡볶이, 찐만두, 호떡 같은 주전부리에 군침도 돌고.


* 해찰 :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하다

 "해찰하지 말아라" 어릴 때 부모님과 선생님들로부터 꽤 들었던 그 표현이 사투리인 줄 알았다. 지금 쓰면서 찾아보니 표준어다. (놀람)


그러다 시장 한복판 사거리 한쪽으로 세워진 파란색 1톤짜리 트럭에 시선이 고정됐다. 볶은 땅콩이나 아몬드, 캐슈너트, 피칸 같은 견과류를 비롯해 전병 과자를 바구니마다 각각 잔뜩 담아두고 팔고 있었다.


"땅콩 좀 살까."


여러 번 망설였지만 결국 뒤돌아섰다. 먹고픈 마음에 샀어도 내일이면 잘 먹지 않게 되고, 아이들이나 신랑이 안 먹으면 머지않아 눅어지고 쩐내가 날 게 틀림없으니.   


잘 여문 생땅콩을 기름 없이 달궈진 팬에 담고 작은 불로 오랫동안 휘휘 저어가며, 때로는 팬의 손잡이를 잡고 빙글빙글 돌려가며 볶는다. 한쪽만 타거나 덜 익지 않도록 내내 고루고루 저어주는 게 관건인데 익기 시작하면 껍질의 색이 거무스름하게 변해간다. 또한 코끝을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로도 익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볶은 후 바로 먹으면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다. 잘 식힌 뒤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이용해 살짝만 비틀어주면 분홍빛 껍질 속에 숨었던 땅콩 알이 쏙! 모습을 드러낸다.


머릿속엔 땅콩을 볶는 것부터 껍질을 까고 있는 모습이 차례대로 그려졌다. 볶은 땅콩은 참 고소하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땅콩이지만, 하마터면 죽을 뻔한 간담이 서늘했던 땅콩에 대한 기억이 있다.






래전 중식당에 갔을 때다.

그날은 관계사 지인들과의 저녁식사가 약속되어 있었다. 회사는 다르지만 꽤 오랜 기간 같은 업무를 하며 매월 회의를 한다고 얼굴을 보면서 삼삼오오 친해지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중 한 언니와 선배와의 자리였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앞에 볶음땅콩과 단무지 등 간단한 요깃거리가 나왔다. 중국집에서 나오는 볶음 땅콩은 일반적으로 먹는 볶은 땅콩과 달리 기름에 달달 볶아 껍질이 반질반질하게 윤이 난다. 그리고 소소소 뿌려진 설탕과 소금 때문에 달달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다.

식욕을 돋우기 위해 먹으라는 것일 텐데, 자꾸만 볶음 땅콩에 손이 갔다. 술이 저절로 당기는 그 맛!


볶음 땅콩을 씹다가 웃긴 말을 듣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는 게 그 숨에 볶음 땅콩 한 알이 쏙 기도 안으로 넘어가 버렸다.

순식간에 숨구멍이 턱 막혔다. 물을 마시면 흘러 내려갈까 싶었는데 그럴 새도 없었다. 컥컥 기침을 크게 하면 튕겨져 나오지 않을까 하고 여러 번 기침을 했다.


앞에 있는 일행은 내가 그 웃긴 얘기에 너무 심취해 까르르르 뒤로 넘어가는 정도로 여겼던 듯하다. 그래서 꺼억꺼억 괴상한 웃음을 지어내는 것으로. 무슨 얘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모두가 배를 잡고 눈물까지 훔치며 웃고 있던 상황이었으니까.


나는 연신 기침을 크게 하며 '흠!' 크게 소리를 내려했지만 묵직한 쇳소리만 났다.


아, 이렇게 죽는 건가.


어리석게도 그때까지도 앞에 있는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저 웃다가 사레들린 것으로, 서로가 그렇게 가볍게 넘어갈 정도로 이 상황이 정리되길 바랐었다. 공포감이 극에 달했을 때, 나는 '켁!!' 크게 기침을 밭아냈고 그와 함께 땅콩 한 알이 데구루루 바닥에 굴렀다.


전혀 내 상태를 눈치채지 못했던 지인들은 그때서야 너무 놀라 하며 내 등을 세차게 두드렸다. 내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갰고 부어올랐기 때문.


이런 땅콩 한 알에 저 세상에 갈 뻔했구나. 땅콩을 볼 때마다 중국집에서 볶음 땅콩을 내줄 때마다 따라오는 옛 기억.

그 경험은 아이들이 간식 먹을 때 고스란히 잔소리로 뿜어낸다.

"사탕이나 껌 먹을 땐 절대 돌아다니지 마. 다 먹은 다음에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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