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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니, 트럼프

내 마음 아는 사람만 두로와

by 땅꼼땅꼼


중학 입학 전부터 학교 밴드부에 들겠다고 했던 큰 애의 도전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드럼 학원을 끊은 후 집에 있는 전자드럼도 잘 안쳤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한창 드럼을 배울 때 대공연장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박수와 환호 속에서 드럼을 연주하던 때를 떠올렸더라면 좀 더 열심히 연습했을 법도 한데.


꽤 큰 공연장서 멋드러지게 연주하던 시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아니면 하고 싶은 마음보다 좀 더 쉬고 싶고 애니메이션을 보는 게 더 좋은 현재에 부등호의 입이 벌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가장 속상한 건 큰 애지만, 그 결과를 만든 것도 큰 애이기에 조금 싫은 소리, 잔소리를 했습니다.


잘 자리에 누워서 불 꺼진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시각보다 청각이 예민해집니다. 혹시 내 말에 울고 있지는 않을까, 어떤 표정으로 내 말을 듣고 있을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이어가는 중, 항상 언니 편인 작은 애가 불쑥 끼어들었습니다.


"엄마, 언니에게 트럼프가 왔나 봐. 나도 피아노 칠 때 그랬거든."


엉? 트럼프?

"나 불렀수?" 출처)네이버


작은 애가 말하려는 것은 분명 '슬럼프'였을 겁니다.

'트'와 '슬' 사이에 우리는 왈칵 웃음을 쏟아냈습니다.

작은 애 덕분에 무겁던 분위기도 살짝 따뜻하게 데워진 채 잠들 수 있었습니다.


슬럼프는 아닐 겁니다. 그만큼의 뜨거운 고민도 하지 않을 걸 봐왔기에. 연습이 부족하고 절박함이 없었던 탓이겠지요.

나 또한 아이에게 맡겨둔 채 뒷짐 지고 있다가 이제야 바들바들 한 거니 반성합니다.


이번 실패를 계기로 조금 더 연습하고, 긴장하는 큰 애를 기대해 봅니다. 언제나 그렇듯 보란 듯이 잘 해내버리는 그런 모습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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