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 커피보다 더 달콤한...
장마가 이어지니 기분이 가라앉는다. 이건 어쩌면 나의 고정관념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다 쏟아지는 소나기는 시원함을 넘어서 마음속에 가라앉은 묵은 찌꺼기를 날려버리는 듯한 유쾌 상쾌 통쾌함을 가져오지만, 주르륵주르륵 하루 종일 내리는 장맛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기분도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리고 만다.
꿀꿀할 때는 꿀물을 먹고 기분을 달달하게 만들어보자고 호기롭게 꿀물을 우려 마셔보지만 오늘은 영 효험이 없네. 이럴 때는 좀 더 강한 기분 전환이 필요해. 소파에 앉아 흥미로운 전자책을 찾아 읽어보지만 기분이 회복되기는커녕, 글이 머릿속에 맴도는 기분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남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향한 곳은 집에서 5분 거리의 커피숍.
비가 내려 우산을 쓰고 걸어가니 기분이 조금씩 나아진다. 장마철을 대비해 예쁜 우산이라도 장만해 놓는 건데... 다이소에서 산 투명우산이 가벼워서 요즘 이 우산을 주로 쓰는데 왠지 커피숍에 가져가기엔 모양새가 빠지는 것 같다. 그래도 남편과 우산 쓰고 걷는 기분이 나쁘지 않네.
남편과 커피숍을 자주 가는 건 아니지만, 가끔 커피쿠폰이 선물로 들어오면 기분 좋게 데이트를 하곤 한다. 물론 아주 가끔은 뷰가 좋은 커피숍을 일부러 찾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집에서 인스턴트커피를 즐기는 편이다.
남편은 늘 그렇듯 아이스아메리카노 (지금은 여름이라.. 여름을 제외한 계절엔 아메리카노), 난 라테류 커피를 주문한다. 오늘은 특별히 돌체라테를 선택했는데 유난히 꿀꿀한 기분을 없애려면 보다 강렬한 달달함이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평소 잘 마시던 까페라떼는 우유의 부드러운 맛이 더 강하다면 돌체라테는 좀 더 단 맛이 강하고 뭔가 진한 풍미가 느껴졌다. 달달한 커피가 몸에 퍼지니 눅눅했던 내 마음이 조금씩 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오길 잘했어.
노트북을 켜고 무언가에 집중해 열심히 작업 중인 사람들 틈에 끼어 남편과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 별 의미 없는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도 좋았다. 컵이 점점 비워져 가는 게 아쉬웠지만.. 시간은 그렇게 흘러 흘러,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마신 다음 다시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바로 가기는 뭔가 아쉬워 근처 슈퍼에 들렀는데, 남편이 저녁메뉴로 카레를 만들어주겠단다. 남편과 장을 보면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되어 속이 상할 때가 많은데, 오늘도 역시나 카레 재료 외에도 과자, 음료 등 굳이 담지 않아도 될 간식거리들에 입을 삐죽이며 돌아왔다.
카레 얘기를 잠시 하자면, 남편은 내가 인정하는 카레 만들기 장인. 어찌나 정성스럽게 카레를 만드는지, 옆에서 보고 있으면 요리사의 혼이 느껴진달까. 난 카레가 있으면 먹지만, 일부러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편인데 남편은 주기적으로 카레가 당기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본인이 카레에 들어가는 재료를 사 와서 가끔 한 냄비씩 끓여놓곤 한다. 이런 날은 저녁메뉴와 그다음 날 아침을 비롯해, 서너 끼가 해결되니 횡재한 기분이 든다.
계산대 앞에서 잠시 입을 삐죽이긴 했지만, 오늘도 역시나 남편의 카레 요리를 맛보며 언제 기분이 상했냐는 듯, 달달한 커피를 마셨을 때도 해소되지 않고 남아있던 구석구석 눅눅한 기운까지 한 방울에 날아가는 기분이다. 맛있게 저녁식사를 마친 후, 든든한 마음으로 무장하고 비 오는 날씨에 다시 한번 우산을 쓰고 저녁산책까지 나설 기운이 생겼다. '고마워 남편!'
비가 많이 내리는 건 아니지만 우산을 쓰긴 해야 하는 날씨. 우산 쓰고 운동하는 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일단 팔을 내 맘대로 마음껏 휘저을 수 없기 때문에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 또 길바닥에 지렁이와 달팽이들을 혹여나 밟을까 신경이 쓰여 주의 깊게 바닥을 살피게 된다. 오늘도 뱀처럼 긴 지렁이를 발견하고 얼마나 놀랬던지... 그래도 비 오는 날에도 걷기 운동을 빠지지 않고 했다는 내 안의 자부심이 차오르며 맑은 날 운동한 것보다 배 이상 뿌듯했다. 와우~ 잘했어 OO야.
오늘 하루 내 마음의 날씨는 흐렸다 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