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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Jan 18. 2022

룰루와 차가운 보석

엄마가 쓰는 동화 8

내 이름은 룰루예요.

나는 파란 잔디가 깔린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 엄마랑 장난꾸러기 여동생 랄라랑 함께 살고 있어요.


내가 태어났을 때는 지금처럼 무덥지 않았어요.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고 팔랑팔랑 나비가 우리 집에 놀러 왔어요. 몽실몽실 엄마 품에 파고들면 따뜻하고 포근한 게 무척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나랑 랄라가 봉숭아 꽃에 코가 닿을 만큼 키가 큰 지금은 무척 더워요. 우리 엄마도 예전처럼 우리랑 신나게 뛰어놀아주지 않고 나무 그늘 밑에 자주 누워 있네요.  


“끼이익, 찰칵.”
어? 윤이가 현관 밖으로 나왔어요! 나를 보면 언제나 꽃처럼 방긋 웃으며 쓰다듬어 주는 윤이가 나는 정말 좋아요. 윤이 손에서는 마술처럼 소시지도 나오고 과자도 나와요. 오늘은 뭘 줄까요? 마침 랄라도 어디로 장난을 치러갔는지 곁에 없네요.  


오늘 윤이는 반짝이는 유리컵을 들고 있어요.

그 안에는 더 반짝이는, 투명하고 네모난 작은 상자들이 담겨 있어요.

응? 저게 뭐지? 꼭 보석 같아.


“룰루야, 덥지? 너 이거 하나 먹어볼래?”


우와!

코를 대 보니 엄청 차가워요!

무지개 빛이 나는 그 조그만 상자를 와사삭 와사삭 깨물어 먹으니 입 안이 얼얼해요.


와, 너무너무 시원하다.

나는 더 달라고 꼬리를 열심히 흔들었어요.


“많이 먹으면 배탈 날지도 몰라. 두 개 더 줄 테니 랄라랑 하나씩 나눠 먹어.”


흠. 나는 이 시원하고 재미있는 작은 보석을 혼자만 먹고 싶었어요.

하나는 잠시 앞발로 굴리고 놀다 혀에 붙였다가 와사삭 먹어버리고, 남은 하나를 입에 물고 달려가 윤이가 키우는 방울토마토 밑에 꼼꼼히 파묻어뒀어요. 나중에 몰래 꺼내 먹어야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지루해진 나는 방울토마토 쪽으로 달려갔어요.

어,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내 보석이 나오지 않아요!


“랄라, 너 내가 묻어 둔 보석 몰래 파서 가져갔지?”

“무슨 소리야! 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우리는 흙 위를 뒹굴며 싸우기 시작했어요.


나는 랄라의 꼬리를 물고 찌이익 당겼어요.

랄라는 깽 소리를 지르며 내 주둥이를 물었어요.

깽깽. 투닥투닥.

그 소리를 듣고 엄마가 달려왔어요.


나는 엉엉 울면서 엄마에게 이야기했어요.
“엄마, 윤이가 준 차가운 와사삭 보석을 여기 파묻어놨는데 없어졌어요. 그 안에 무지개도 들어있고 반짝반짝 정말 예뻤단 말이에요.”

“보석이라구?” 엄마는 어리둥절했어요.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가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룰루야. 그건 얼음이란다. 얼음은 밖에 놓아두면 금방 녹아서 물이 되어 버려요. 룰루가 묻어 둔 얼음은 녹아서 예쁜 방울토마토를 만드는 데 쓰였을 거야. 다음부터는 몰래 묻어두지 말고 그 자리에서 사이좋게 나눠 먹도록 해.”


저희 아이가 그린 룰루와 얼음입니다 :)

우와.

오늘은 윤이가 특별히 별 모양으로 얼린 분홍색 보석을 가져다줬어요.

윤이가 좋아하는 딸기주스로 만든 얼음이래요!


이번에는 랄라랑 엄마랑 하나씩 나누어 먹었어요.

와사삭 와사삭. 아, 정말 시원하고 맛있어요.  



* 정말 오랜만에 동화를 들고 왔네요. 서랍 속에 몇 년째 묵혀두고 있던 건데, 먼지 털어서 올려놔봅니다.  

6년 전쯤에 당시 한 살이었던 아이에게 얼음이 뭔지 알려주고 싶어서 썼던 건데요. 그다지 재미는 없지만 가장 처음 썼던 거라 애착이 가는 이야기. 얼음을 줬더니 하나 파묻어 뒀던 건 실제로 제가 키우던 토토의 이야기입니다. :-)

어쩌자고 저런 핀을 꽂고 있는지 모르겠지만(지금 핀만 문제가 아닐텐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토토와 아기들 사진 .

지인의 딸과, 또 다른 지인이 키우던 고양이 남매의 이름을 애정을 듬뿍 담아 무단도용했습니다. 윤,이라는 한 글자 이름도 반짝반짝 예쁘지만 룰루와 랄라라는 이름도 너무 예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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