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2, 교복의 추억

덤으로 체육복의 추억도 끼워 드립니다

by 이진민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서울 시내 중고등학교들이 너도나도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히기 시작했다. 한참 옷에 관심이 많던 여학생들 사이에서 각 학교의 교복 디자인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시 나는 슬슬 학원가의 메카로 부상하기 시작하던 대치동에 살았고 불교 재단인 진선여중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냥 다니던 대로 집에서 제일 가까운 진선여고에 배정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큰언니도 진선여고를 나왔기 때문에,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면 같은 데 배정받는 거 아니야?’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뺑뺑이의 원리를 모르는 무식한 중3 같으니라고.


어쨌든 아이들 사이에선 진선여고 교복에 대한 다양한 예측이 난무했는데, 등판에 대빵만한 연꽃이 있는 교복이라는 설과 승복 디자인을 살린 교복 스타일이라는 설이 신빙성 있게 돌기 시작했다. 진선여고에 가서 삭발을 하고 승복을 입으면 가산점이 나온다는 가짜 뉴스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등짝에 거대 연꽃이 달린 회색 교복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예상과 달리 덜컥 경기여고에 배정받았다. 명문이고 뭐고 아는 바 없이 뇌가 청순했던 나는, 친구들과 떨어져서 경기도에 배정받은 줄 알고 잠시 충격을 받았었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경기여고는 개포동에 있었다. 83번 버스를 타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진선여고 교복은 우리의 예측과는 달리 무난하고 예쁜 디자인이었다. 회색이긴 했다.)


오랜 명문이었다는 전통을 몹시 자랑스러워하는 경기여고 교복은 사진과 같다. 이 참을 수 없는 고전미. 다크다크한 남색에 흰 윙칼라가 부착된, 옛날 교복 디자인 그대로다.

사진 출처: 어른들은 왠지 에리트라고 불렀던 엘리트 학생복 + tvN 세 얼간이

학교 측에서 세 가지 디자인으로 후보를 압축한 뒤 교복 패션쇼를 열어 재학생과 교직원, 동창회 등등의 투표를 거쳐 선정했다고 한다. 주워들은 비화를 전하자면, 전통 교복파였던 동창회와 이사회에서 가장 날씬하고 예쁜 모델에게 저 옛날 교복을 입혀 패션쇼에 내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재학생들 표까지 얻어냈다나. 어쨌든 저 교복은 가늘가늘한 여학생이 입으면 단정하고 예뻐 보이기는 한다. 나인뮤지스 경리 언니의 저 예쁜 실루엣을 보라. (하긴 저 얼굴에 저 날씬함이면 그냥 쌀자루를 두른 들 안 예쁘겠냐마는.)

그렇게 나는 엘리트 학생복 매장에 가서 치수를 잰 뒤 선배님들의 자부심이 올올이 물결치는 교복을 사 왔다. 동네에서 저 교복을 입고 걸어 다니면 가끔 머리가 곱게 센 할머니께서 “어머 어머 우리 때 교복이랑 똑같다. 너무 예쁘다.”하고 교복을 한참 쓰다듬고 가셨다. 사실 그 당시에 우리 교복이 예쁘다는 생각은 못 했지만, 할머님들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한 마리의 골든 리트리버가 (내 차마 말티즈라고는 못 쓰겠다) 되어 드릴 수 있었다.

우리 교복은 좀 불편했다. 아니 많이 불편했다. 하복과 춘추복은 그렇다고 쳐도 동복 재질은 이게 대체 무슨 옷감인지 궁금할 만큼 뻣뻣하고 두꺼웠는데, 심지어 옷이 책상과 의자에 닿으면 반질반질 닳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같은 교복을 3년간 입은 3학년 언니들이 교정에서 걸어 다니면 그 닳은 부분에 햇빛이 반사되어 곧 승천이라도 할 것처럼 온몸에서 찬란한 빛이 났다. 그 찬란한 성스러움의 정도에 따라 우리는 학년을 구분할 수 있었다.


보통 블라우스와 조끼, 재킷의 3단 구성을 선보이던 다른 학교 교복과는 달리 우리는 윗옷이 블레이저 딱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불편함이 하늘을 찔러 성층권에 닿을 지경이었다. 일단은 팔을 높이 들기 어려운 반인체공학적 디자인이었는데, 책상에 엎드려 자지 못하게 만든 교복이라는 음모론이 있었다. 게다가 다른 레이어 없이 이 블레이저 하나만 입는 시스템이라, 단추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바로 친구들과 선생님께 속옷을 선보이는 리버럴한 학풍을 쌓아갈 수 있었다. 쉬는 시간에 좀 토실토실하고 덩치가 있었던 친구가 교실 뒤쪽에서 크게 기지개를 켜다가 모든 단추가 앞으로 발사되는 바람에 온 친구들이 그 조그만 단추들을 찾겠다고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리고 하얀 윙칼라. 나는 용도를 알 수 없게 큰 면적의 이 윙칼라를 윙처럼 펄럭이며 학교에 다녔다. 이게 사실 잘 다리지 않으면 구겨져서 몹시 보기 흉한 아이템이다. 그날그날 빨아서 매번 풀을 먹여 예쁘게 다려주신 엄마께 한없는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이 윙칼라의 색상과 면적을 고려했을 때, 도시락 먹다 여기에 김칫국물이라도 떨어지는 날에는 대박이 나는 것이었다. 신사임당이라면 포도덩굴 대신 앵두 가지라도 그렸을 텐데, 예쁘고 단정하게 보이는 일에 딱히 관심이 없던 나는 대체로 잭슨 폴락 쪽을 택했다. 영혼이 자유로웠던 한 친구는 일부러 칼라에다 볼펜 똥을 닦아 화려함을 추구하기도 했다.


당시 김희애, 최수종, 그리고 채시라 주연의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가 크게 유행했었다.

와.

그 드라마를 보고 다음 날 버스 정류장에 가 보면 다수의 후남이들과 (경기여고 학생들) 다수의 귀남이들이 (경기고 학생들)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언의 눈빛으로 우리는 서로를 가엾게 여겼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전통이 살아있는 교복을 우리는 입었다.

후남이가 입었던 저 교복이 우리 춘추복이었고 귀남이가 입었던 저 파란 교복이 경기고 하복과 비슷했다.

그러나 화룡점정은 사실 교복이 아니라 체육복이었다.

아, 체육복.

전통을 포기할 수 없으셨던 동창회에서는 그 옛날 당신들이 입던 체육복 디자인을 그대로 우리에게 입히는 친절함을 행하셨는데, 문제는 여름 체육복 바지였다. 문제의 이 바지는 다 큰 처녀들이 다리를 번쩍번쩍 들 건데 속이 보이면 안 된다는 선배님들의 상냥한 마음이 담긴 물건으로, 몸뻬의 반바지 버전이라고 보면 적당하겠다. 가뜩이나 움직이기 싫어하는 여고생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던 마법의 반바지. 처음에 보고 왓 더... 가 절로 나왔지만, 격렬한 움직임(....같은 것을 내가 할 리가 없었지만....)에도 속옷이 보일 걱정이 없어 나름 편하고 좋긴 했다. 어쨌든 중세시대 왕자님들이 입는 호박 바지라고 생각해 보아도, 입고 있으면 왠지 밭이라도 매야 할 것 같던 그 느낌적인 느낌.

이 바지의 디자인과 상당히 유사한 검은색 바지였다

이놈의 것은 뻣뻣하고 구김이 잘 가는 재질이었는데 애초에 다림질이란 걸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이 바지를 예쁘게 각 잡아 다려 입고 나오는 늘씬한 친구들을 보면 경외의 마음이 절로 들었다. 아랫단을 눌러서 잘 다리면 치마 모양이 나온다던데.... 그런 기술 따위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나는 3년 내내 그냥 몸뻬 반바지를 입었다. 내가 사물함에서 구깃구깃한 한 송이 검은 꽃을 꺼낼 때, 칼같이 다린 예쁜 체육복 바지를 꺼내 입던 친구들. 보고 싶다 얘들아. 아직도 다리미랑 친하게 잘 지내고 있니.


영화나 드라마, 만화에서 종종 보듯 치마 속에 체육복 반바지를 입어 거침없는 쩍벌의 자유를 얻는 것이 보통의 여고생들이 쓰던 방식이었는데 우리들은 저렇게 생긴 체육복 반바지 덕분에 그런 옵션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냥 치마 가운데에 커다란 옷핀을 꽂아 교복 치마를 개그 감성 가득한 바지로 만드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찾아보니 지금 후배들은 체육시간에 그냥 평범한 반바지를 입는 것 같다. 당시엔 왓 더... 였어도 지금 이렇게 생각이 많이 나는 걸 보면 그런 체육복이 있어 즐거운 추억이 더 쌓였던 듯하다.

마지막 에피소드.
옆 동네 진선여중에서 체육대회 때 가장행렬을 하는데, 주제가 3.1 운동이라고 우리 학교 교복을 좀 빌려가도 되겠냐는 연락을 해 왔다. 빵 터짐 반, 아주 약간의 자존심 스크래치 반을 경험하며 이걸 줘 말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만큼 자랑스러운 역사를 담은 교복이기도 하다는 소린데, 세상이 대체로 비뚤어 보이던 시절의 우리는 조금은 비뚤어진 눈으로 교복을 보았던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타임머신이 발명되어 세 번의 기회를 준다면 하루 정도는 교복 입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그리하여 뜬금없이 백주년도 넘은 3.1 운동을 기리며, 기승전순국선열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학창 시절에 교복을 입었던 지인들과 댓글로 수다를 떨다가, 그 시절 교복에 얽힌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생각나 이걸 집대성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그리하여 정약용 슨생님에 빙의하여 집대성해본 저의 교복의 추억입니다. 예전에 제 소셜 미디어에 올렸던 글인데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까운 추억이라 다듬어서 올려 봤어요. 웃으며 읽으셨기를.


저는 지금 쓰고 있는 <미술관에 놀러 간 철학자> 원고들을 마무리하면 올해는 조금 쉬어가면서 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쓰고 싶습니다. 이런 옛 추억 이야기나 푸드 에세이 같은 가볍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또 공부도 하고 자료 조사도 하면서, 그다음으로 쓰고 싶은 책을 준비해 볼 예정입니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슴에 품은 소망 이루시는 한 해 되기를 바랍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만드신 센스 있는 새해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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