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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Feb 20. 2021

프롤로그

I eat, therefore I am

음식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해, 나를 키워온 음식에 대해, 음식에 담긴 마음들에 대해 쓰고 싶다고.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인생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힘내 싸우는 것이다”라고 했다죠. 맛있는 음식, 좋아하는 음식은 떠올리는 것만으로 우리의 마음을 미소짓게 합니다. 사실 우리는 삶의 많은 순간 음식에 기대어 한 발 내딛곤 해요. 이것만 끝내고 아껴둔 맥주 꺼내 마셔야지 하는 그런 마음, 기운의 알갱이가 한 톨도 남지 않은 순간에 엄마의 집밥을 떠올리는 그런 마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그런 마음.

저는 여러 종류의 책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편이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메뉴판입니다. 단 한 번도 설레지 않은 적이 없어요.

메뉴판은 사랑입니다

"I think, therefore I am" 이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I eat, therefore I am"이라는 제목으로 바꾼 매거진을 하나 만들어서, 밥을 짓고 빵을 굽듯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을 요리해 쌓아두려고 했어요. 그런데 매거진 제목에는 쉼표도 쓸 수 없고 글자수 제한도 있어서 저 제목을 사용할 수 없더라고요. 아쉬운 대로 'Therefore I eat'이라는 제목으로 결정했습니다. 어떤 음식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왔는지, 그런 고소하고 짭짤하고 들쩍지근한 얘기들을 나누려고요. 음식에 관한 글은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저의 소복하고 든든했던 순간들에 대해 기록하고 싶습니다.


음식은 나입니다.

내가 먹는 게 내가 되는 거죠.


음식은 사람입니다.

음식을 나눠 먹지 않는 사람과는 소중한 관계가 될 수 없죠.


음식은 세상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손에 쥔 테이크 아웃 커피 한 잔 안에 세상이 담겨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게 된 인류의 역사, 적절한 커피 한 잔의 값은 얼마여야 하는가 하는 수요와 공급의 문제, 커피콩과 관련된 저개발 국가의 노동 문제며 공정 무역 문제, 빨대며 컵과 관련된 환경 문제, 선호하는 커피의 종류며 얼죽아 뜨죽따 같은 취향의 문제, 맘충이며 된장녀 같은 사회 속 혐오의 문제까지. 사람이 먹고 사는 일에 세상의 모든 영역이 얽혀있지 않을 수가 없죠.     


생각해 둔 목차는 있지만 글은 일단 쓰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쓸 생각입니다.
오늘 특별히 당기는 음식이 있으면 그때 먹어야 하듯이, 글도 그럴 것 같아서.


단맛, 짠맛, 신맛, 매운 , 쓴맛, 고소한 , 숙성된 , 인생의 일곱가지 맛에 대해서 쓰고 싶고요.

음식에 얽힌 생각을 담는 단어들에 대해서도 쓰고 싶습니다. 환대, 조화, 정의, 기다림, 도전, 본질 같은 그런 단어들.

제게 특별한 음식들, 그에 관한 추억이며 그것을 함께 나눈 사람들에 대해서도 한 그릇 한 그릇 떠올려가며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습니다.


이 매거진은 보고싶은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보고싶을 땐 메모장을 엽니다. 보고싶은 마음이 흘러 넘쳐서 약간 곤란해질 때 키보드로 몇 문장을 달그락거리면 도움이 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의 습관입니다. 감정 표현을 잘 못해서, 속상한 일이 있어도 기쁜 일이 있어도 그냥 연필을 쥐곤 했어요. 그러다 보면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쓰는 일 자체에 집중하느라 어느새 마음이 얌전히 가라앉아 있곤 하더라고요. 가장 많은 음식을 내 입에 넣어 주신 엄마, 많은 음식을 나누며 자라온 형제들, 식구(食口)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가족들, 함께 먹고 마시며 웃음과 눈물로 서로를 토실하게 살찌워 온 친구들과 소중한 지인들이 아마도 그들의 이름을 그대로 갖고 등장할 겁니다.


늘 맛있을 수는 없겠지만 맛있게 준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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