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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Mar 18. 2021

[서평] 새로운 가난이 온다



이번달 리딩리딩 북 큐레이션은 김만권의 <새로운 가난이 온다>입니다. 많이들 읽어보셨으면 하는 마음에 책의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소개에 초점을 두어 서평을 작성했어요. 가장 큰 소개 포인트는 이 인간이 울보라는 점입니다. 어찌나 울고 돌아다니는지, 프로오열러인 저도 감당이 안 되는 지경입니다.

 
글에도 밝혔듯이 저자는 제 오랜 지인입니다. 실은 이 책 표지 안쪽에 제가 쓴 추천사도 수줍게 들어 있어요. 사실 애칭으로 부르는 사이라, 정치철학자 김만권이라고 쓰려니 느끼해 죽겠더라고요. 그래도 꾹꾹 참으며 썼습니다. 지인의 책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열심히 쓴 다정하고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리딩리딩은 멤버십 기반의 유료 서비스라, 여기에 올리는 서평은 약간 다른 버전임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서평] 새로운 가난이 온다

 

이 책은 다정한 책이다. 결국은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 없도록, 뒤에 남겨지는 사람이 없도록, 서로를 존중하고 따듯하게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정성스럽게 모색하고 내놓은 책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자신의 책을 “서로를 만질 수 없는 시대의 사람들에 관한 책”이라고 소개한다. 그렇다. 이 책은 서로가 손을 잡아선 안 되는 이 새로운 언택트 시대에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어떻게 우리가 손 대신 마음을 맞잡을 수 있는가에 관한 책이다. 왜 우리에게 새로운 가난이 오며, 왜 새로운 분배가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보통 시중에 나와있는 이런 종류의 책은 “새로운 가난이 오는데 너 지금 태평하게 그러고 있을래. 쫄딱 망하기 전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남아라!”하고 된통 겁을 주거나 “가난이 오는데요, 걱정 마세요. 자, 제 눈을 봅니다. 이런 불안한 상황,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부자 됩니다.”하고 사람을 홀리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팩트로 설명해 주고 다정한 논리로 위로를 준다. 어떻게든 너만 살아남으면 된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정말로 삼촌이 고등학생 대학생 조카들을 앞에 앉혀 놓고 우리가 이렇게 세상을 이해하고 또 이렇게 풀어보면 어떨까, 다정하게 조곤조곤 설명해 주는 느낌. ‘역사’에서 배우고, ‘철학’에서 분석의 틀을 찾고, ‘정치’적으로 어떻게 지금의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생각한, 보기 드문 책이다. 

 

저자 김만권은 정치철학자다. ‘거리의 정치철학자’라는 따뜻한 애칭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정치철학자는 새로운 세계를 짓기 위해 이러저러한 생각을 해 봐도 괜찮다고 관용을 부여받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금 당장 통하지 않더라도, 좀 황당한 상상력이라도 괜찮으니 마음껏 펼쳐보고, 거기에 논리와 근거를 붙여보라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편안하고 다정하게 설득당했다. 황당한 상상력이 아닌, 새로운 시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생각과 곱씹어볼 제안들이 알알이 담겨 있었다.  

 

내용뿐 아니라 형식이며 문체도 다정하다. 플라톤의 <국가>를 강의에서 다룰 때 학생들에게 꼭 짚고 넘어가는 포인트가 있다. 바로 그 두꺼운 책이 모두 대화체로 쓰여있다는 점이다. 비슷하게 나는 이 책이 높임말로, 대화체로,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게 쓰여있다는 점을 짚고 싶다. 기본적으로 김만권은 사람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그들을 존중하며, 그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 선언적인 형태, 단언하는 형태의 문장이 없다는 점이 그의 글을 오래 보아온 내 마음을 미소 짓게 했다. 쉬운 문장 안에 진지한 질문들을 친절하게 배치했다. 문제의식 자체는 쉽지 않으나 부드럽게 이끌려간다. 기본적으로 일상 언어로 쓰여 있고,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 실제 나의 일상과 어떻게 맞물리는가 명확히 느끼게 해 주는 글이다. 술술 읽히는데, 온갖 지식이며 정보를 주머니에 슥슥 챙겨 넣어주고 머리를 두들겨 중요한 화두를 장착시킨 다음, 감동까지 입에 딱 넣어준다. 책을 덮고 나면 세상에 대한 내 이해가,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변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야기는 오늘날의 중산층 10명 중 8명이 스스로를 빈곤층으로 여기고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유례없는 풍요의 시대, 즉 기술의 발전이 인간 역사상 가장 많은 부를 만들어 내고 있는 시대, 나눌 것이 이렇게 많은 시대에 왜 사람들은 불안해할까? 단순하고도 중요한 질문이다. 이 책은 우리가 아직까지 소비하고 있는 1950년대의 경제학은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결핍의 시대를 전제로 하던, 인위적으로 수요를 만들어내던 시대의 경제학이라는 것. 즉 우리가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생산력 증대가 필요했던 '결핍의 시대의 분배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이 책은 생산 과잉의 시대, 변화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분배 방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노동 중심의 분배에서 권리 중심의 분배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그간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노동 중심의 분배였지만, 더 이상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 시대 자본의 특성상 이제는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 당연하게 자유의 권리를 가지는 것처럼, ‘사람이라면 그가 사람이라는 이유 만으로 일정한 몫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가질 수 있다’는 제안이다. 더 이상 가난을 타락의 언어로 그려내지 말라는 얘기다.

 

이런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중심에 두고 책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는다. 제1 기계 시대와 제2 기계 시대는 무엇이며 어떻게 다른지, 신자유주의와 불평등은 어떻게 얽혀있는지, 기술의 분배 속성 자체가 어떻게 양극화를 부추기는지, 기술의 발전은 노동과 자본을 어떤 방식으로 변화시키는지, 소비력이 없는 인간은 왜 잉여로 여겨지고 종래에는 혐오의 대상이 되는지, 능력주의의 함정은 무엇인지. 또 변화된 자본과 노동의 관계 속에서 국가는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 우리 시대에 경계의 모호성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코로나라는 판데믹이 준 변수는 무엇인지, 우리는 만남을 어떻게 재정의하고 민주주의를 시들지 않게 키워갈 수 있는지 등등. 이 모든 중요한 이야기들이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결국 모든 것이 가리키는 지점은 하나다. 우리는 어떻게 존엄하게 살 수 있을까.


마음 속에 잔상을 남겼던 문장들을 몇 가지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부디 이 문장들이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마음에도 어떤 무늬를 남기기를 바라며.

"인류가 인간을 닮은 기계를 두려워하는 속 깊은 이유는 기계를 믿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인간을 믿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간을 닮은 기계일까요,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인간일까요?" (53)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우리들 대다수가 자신이 이룬 성공을 오로지 자기 노력만으로 얻었다고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이에요. (...)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결국 자신의 성공을 만들어 준 사다리를 다음 세대들이 쓸 수 없게 걷어차 버리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난 거예요." (102)

"근데 이 일하는 자들의 복지라는 게 참 역설적이에요.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누가 더 복지가 필요할까요? 더 나아가 복지에 근로라는 조건이 붙으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라도 부당한 노동조건을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어요." (108)
"능력주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연대 대신 능력 없는 자는 차별 받아도 괜찮다는 비뚤어진 의식을 키우고, 평범한 다수를 배제해 버림으로써 그들이 수치심과 혐오를 느끼게 만들고 있는 거죠." (271)


사실 저자와는 젊은 시절 투닥거리며 함께 공부했고, 이제는 서로 다독이고 갈구며 정답게 나이 들어가는 오누이 같은 사이다. 그래서  안다. 김만권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울보인지. 컨대  살짜리  아이보다 훨씬  운다. 기뻐도 울고, 슬퍼도 울고,  읽다가 울고, 강의하다가 울고, 이쯤 되면 눈물로 체중을 적절히 유지하는  아닌가 싶을 만큼 그렇게 울고 돌아다닌다. 학자 중에서 마음에 굳은살이 박이지 않아 이렇게까지  우는 사람은 귀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다정한 눈물을 글로 빚어냈구나.  다정한 철학자의 슬픔이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결국 힘이 되고 기쁨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이름대로 만권에 가까운 책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기쁘다.  책을 통해 우리가 부디 서로의 마음을 맞잡을  있기를.



이번 서평의 리딩맵으로는 거의 열 개에 가까운 키워드들을 붙였는데, 여기에서는 그중 리딩리딩 사이트에서는 누락된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에 관한 설명, 그리고 가장 소개하고 싶은 영화와 책만 가져와 붙입니다.

1. 기본소득과 기초자본
 

1) 기본소득: 노동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모든 시민들에게 오로지 정치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조건만으로 소득을 주어 소비력을 갖게 하자는 아이디어. 지속적인 소비력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방어막 역할을 해 준다는 생각에서 왔다.  

2) 기초자본: 국가가 성년에 이른 시민들에게 일정한 정도의 자본을 목돈의 형식으로 제공하자는 것. 사회계층의 이동 가능성을 만들어 주기 위해, 개인이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을 수 없다면 사회가 상속해 주겠다는 취지. 이를 통해 사람들은 단 한 번 만이라도 자신을 위해 인생을 설계하고 실행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김만권은 우리가 일자리를 양보한 대가로 받은 로봇세는 ‘모두를 위한 소비력’을 제공하는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우리가 집단적으로 정보를 만들고 창조하는 부불노동(unpaid labor)의 대가로 받는 구글세는 ‘모두를 위한 상속’을 위해 기초자본의 재원으로 쓰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2. 영화: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미안해요, 리키(2019)>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보면 좋을 영화로 저자가 직접 꼽은 영화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아픈 노동자가 일할 수 없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과, 증명하지 못했을 때 맞게 되는 한계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고, <미안해요, 리키>는 플랫폼 자본과 플랫폼 노동이 작동하는 방식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3. 책: 마이클 영 <능력주의의 부상(1958)>, 대니얼 마코비츠 <능력주의의 함정(2019)>

<새로운 가난이 온다>의 에필로그는 “위기에 뒤로 남겨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라”라는 제목 아래 능력주의의 함정을 조명하는데 집중한다.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공정성’과 ‘노력주의로 변신한 능력주의’가 실은 얼마나 우리를 불평등하게 만들며 서로를 혐오하게 만드는지에 관한 설명이 우리를 아찔하게 한다.

이런 능력주의의 문제에 관해 관심이 있다면 처음으로 메리토크라시, 즉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용어를 만든 마이클 영의 책 <능력주의의 부상(1958)>을 짚어보면 좋겠다. 또 다른 책으로는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대니얼 마코비츠의 최근작 <능력주의의 함정(2019)>이 있다. 마코비츠 역시 영처럼 능력주의가 불평등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엘리트 계급이 자식들에게 신분과 재산 대신 ‘능력을 만들어서’ 물려주기 시작했다는 것.    


김만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능력이란 덕목을 요구하는 대신, 보호라는 제도의 우산을 씌워 주세요. 그리고 그 우산 아래서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퍼붓고 있는 이 시대의 위기들을 함께 견뎌냈으면 해요.” (274)

이 부분을 쓰면서 이 울보 철학자는 아마 또 울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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