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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May 06. 2021

[서평] 식탁과 화해하기

이번  리딩리딩  큐레이션은 루비 탄도(Ruby Tandoh) <식탁과 화해하기(Eat Up!)> (김민수 옮김, 민음사)입니다. 기본적으로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문체에다가, 저자와 생각이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정말 신나게 읽었습니다. 저도 마침 최근에 음식과 관련한 에세이들을 쓰고 있어서  즐겁게 읽은  같아요. 그간 음식에 관한 책들을   읽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맛이 좋았습니다.  
 
리딩리딩은 멤버십 기반의 유료 서비스라, 여기에 올리는 서평은 몇 문단을 생략하고 약간 르게 쓴 버전임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세상에는 보고 싶은 책이 늘 많군요. 다른 큐레이터님들이 소개해주신, 저도 눈여겨보던 책이 두 권이나.


[서평] 식탁과 화해하기


개인적으로 나와 주파수가 딱 맞는 책이었다. 단호한 어조로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 책, 유머가 가득 든 책, 그러면서 굳어버린 내 뒤통수를 슬그머니 때려주는 책을 좋아한다.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위트가 소금 후추처럼 뿌려져 있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생각거리들을 툭툭 던져준다. 근래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맛이 좋았다. '좋은 책'과 '맛이 좋은 책'을 구별하는 편인데, 이 책은 맛이 좋기로는 최고였고 좋은 책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진부한 이야기가 없다. 저자는 지적이면서도 장난꾸러기 같은 사랑스러운 언어로 우리가 음식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유쾌하게 펼쳐 보여준다. 양파 껍질 까듯 하나씩 드러내는 이야기에는 톡 쏘는 매운맛이 돈다. 사회에 만연한 웰빙 숭배와 다이어트 문화를 산뜻하게 저격하고, 음식의 양극화 현상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침이 고이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가득하지만 사람을 홀리는 푸드 포르노도, 아는 척 고상한 척하는 미식(美食) 세계의 이야기도 아니다. 다정하고 거침없고 때로는 발칙한 음식 이야기에 덧붙여 독자들의 냉장고와 팬트리를 영리하게 비울 수 있는 소박하고 참신한 레시피들까지 알려준다. (영국 가정에 있는 냉장고와 팬트리라는 점이 좀 아쉽기는 해도 저자가 영국 사람인 걸 어쩌랴. 우리 집 팬트리에 지박령처럼 들어있는 생김이며 황기 같은 걸 기분 좋게 싹싹 비워 낼 수 있는 법을 그녀가 알려 준다면 좋겠지만, 외국 생활 15년 차인 나도 당장 그녀가 말하는 트라이플이며 애클스 케이크에서 렉이 걸렸다.)


원 제목은 <Eat Up!>, 즉 <다 먹어 치워요!>에 가까운데 <식탁과 화해하기>라는 다소 부드럽고 모호해 보이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인간이란 그렇게 형이상학적인 차원을 사는 성숙된 존재가 아니라 성미가 급하고 불완전하며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면면을 가진 존재라는 것, 선과 악 사이에서 늘 비틀거리며 사는 존재라는 것, 별 수 없이 식탁과 화장실을 오가는 형이하학적인 존재라는 것. 나의 인간에 대한 이해를 그대로 공유하는 사람의 문장이란 마음에 착착 들러붙기 마련이다. 내 머릿속(과 위장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사람이 쏟아내는 말들에 더할 나위 없이 공감하며 읽었다.


저자인 루비 탄도는 철학과 예술사를 공부했고 2013년 영국의 요리 경연 프로그램 ‘그레이트 브리티시 베이크 오프(The Great British Bake Off)’ 최종 결승전에 진출하면서 이름을 알린, 지금은 영국을 대표하는 제빵사이자 음식 칼럼니스트,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다. 독학으로 요리를 공부했다고 한다. 철학, 예술, 베이킹, 작가, 여성, 뭐 이렇게 인생의 교집합이 많아서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너무나 사랑스러운 작가를 만나서 기분 좋게 설렌다.


그녀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한마디로 건강하고 긍정적인 식문화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복잡하고 생각할 게 많은 영역이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모든 단계마다, 한 입 한 입 씹을 때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윤리적 딜레마로 가득 차 있다.” 오늘 저녁에 뭘 먹을까 하는 단순한 질문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지뢰밭으로 변해 버린 이 세상에서, 그녀는 음식을 먹는 단 하나의 옳은 방법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그녀가 들려주는 초콜릿과 그레이엄 크래커에 얽힌 전복적인 역사를 듣다 보면, 음식에 들러붙는 가치라든가 의미 같은 것은 시대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라는 담백한 사실을 접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는 식의 이분법적 자세는 식문화에서도 마땅히 경계의 대상이다. 그녀는 잘 먹는다는 것은 “온당한 존경을 표하면서 먹는 것”이며, “식욕과 건강이 꼭 원수처럼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면 적잖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중략)


그녀의 레시피에는 편견이 없다. 꼭 유기농 마트에서 가장 신선한 최상급의 토마토를 가져와서 쓰라고 하지 않는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평범하게 만날 수 있는 토마토 통조림을 주저 없이 담백하게 재료로 사용한다. 구하기 힘든 재료와 화려한 조리법으로 기 죽이지 않고, 그저 평범하고 저렴한 재료로도 어떻게 하면 영양가 있고 따듯하며 마음에 위안이 되는 수프를 만들 수 있을지를 소개한다. 인스타라는 찬란한 이미지의 세계에서 더욱 극명하게 보이는 음식의 양극화 현상, 즉 음식을 먹는 일에 보란 듯이 계급적 질서를 담는 일에 그녀는 차분하고 따뜻하게 반대한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쓴 <감시와 처벌>의 캐주얼한 음식 버전 같다는 생각을 했다. 푸코는 개인의 신체를 시대와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른 권력관계들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파악했다. 그는 규율이나 바른 자세 같은 것이 어떻게 ‘훈련된 신체, 순종적인 신체’를 만들어내는지 설명함으로써 그간 별 자각이 없었던 우리 몸을 새삼스레 돌아보게 했다. 일상에서 안온한 방식으로 우리를 세밀하게 통제하는 그 보이지 않는 힘에다 대고 누구나 볼 수 있게 엑스레이를 찍어버렸던 것이다. 루비 탄도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음식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선언한다. “큰 규모의 무리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식단을 감시”해 왔다고 말하면서, "수많은 이데올로기들이 음식을 매개로 우리 몸과 정신을 억누르는 데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우아하고 위트 있는 어조로 살핀다. 푸코가 정상과 비정상을 구별하는 기준에 대해 통찰력 있는 비판을 남겼듯이, 그녀도 우리가 평범한 음식과 이상한 음식을 구분하는 기준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들이 얼마나 이상한지 생각해 보고, 우리에게 덜 익숙한 음식에 담긴 경이로움을 자세히 들여다보자고.


‘제철음식 먹기’라는 소제목이 붙은 1년의 묘사는 음식의 축복에 관한 이 책의 정말 아름다운 페이지들로 꼽을 수 있고, 음식과 제국주의를 이야기하는 부분은 음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추악하고 씁쓸한 맛을 남길 수 있는지 가감 없이 보여주는 어둡고 냄새나는 페이지들이다. “영국에는 차밭이 단 한 군데도 없다. 이것이 영국의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스튜어트 홀의 글을 빌려 말하는, 전통적인 영국 음료로 알려진 홍차를 기술하는 그녀의 태도며 논조가 참 좋았다.


음식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항상 행복하고 근사한 이야기일 수만은 없다. 우리는 인간인 이상 음식을 먹어야 살 수 있고, 아무리 고차원적인 이상을 우아하게 논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배고프고 허기진 영혼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음식 이야기는 너무 윤색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음식이 주는 기쁨과 행복도, 그 이면의 어두움과 불편함도 고르게 담는다. 그녀가 말하듯이 음식 이야기는 그 안에 드는 노력과 수고(혹은 울분!), 일상의 단조로움, 불쾌함과 잔혹함, 인간으로서 익숙한 지저분함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 꼭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이야기일 필요도 없다.


먹는 일 하나만 차분히 들여다보는 걸로도 우리는 철학자가 될 수 있다. 



[리딩맵]: 리딩리딩에는 책과 곁들여 먹으면 좋을 다양한 반찬들을 추천하는 리딩맵이라는 서비스가 있는데요. 이 책과 관련해서는 리딩리딩 측에 여덟 개의 반찬을 싸드렸는데 여기에선 반으로 뚝 잘라서 넷, 그리고 리딩리딩에 실리지 않은 것까지 합쳐서 다섯 개를 올려 둡니다.


1.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만찬을 그린 그림인데 식탁에 앉은 이 열세 사람 중에 아무도 실제로 입에 음식을 넣고 씹고 있거나 베어 물고 있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뭔가 먹으려고 시도하는 사람조차 없다. 루비 탄도는 음식을 먹고 있는 순간을 보여주는 명화를 찾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음식을 그린 그림은 많지만, 사람이 음식을 먹는 순간이 묘사된 그림은 찾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왜일까? 먹는다는 건 지저분한 행위이기 때문(53)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먹기는 우리가 세계의 모든 지저분함과 광기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행위이며, 후세를 위해 기록으로 남기기를 원하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인간의 육체가 냄새나고 지저분하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하며, 스스로를 아름답고 영적인 존재로 포장하고 싶어한다. 세상에 넘치는 음식의 서사는 이런 인간들의 욕망을 반영한, 반쪽짜리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인간을 무리하게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화인 동시에 창자이고, 빛나는 존재인 동시에 방귀를 뀌는 동물이며, 신성한 동시에 제법 무게를 지닌 덩어리다(145).”

인간을 바라보는 이런 담백한 시선이 이 책을 관통한다.

  

2. 영화와 음식
 
<줄리 앤 줄리아>나 <식객>처럼 꼭 음식이 주연으로 등장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영화에서 음식은 내용 전개상 어떤 단서처럼 필수적인 도구로 쓰일 때가 많다.


루비 탄도가 책 속에서 언급하는 다양한 영화들을 되짚어 보며 그 안에서 음식의 역할을 음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게걸스러운 잔치들의 의미라든가(277), 냉혹하고 무정한 흑인의 남성성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문라이트>에서 음식이 모성애에 가까운 다정함과 연민을 상징한다든가(203), <하트번>에서 메릴 스트립이 곧 자기와 결혼하고 바람둥이 남편이 될 잭 니콜슨에게 만들어서 침대로 가져다주는 까르보나라 한 접시의 의미라든가. 루비 탄도에 따르면 이 까르보나라는 내가 당신한테 관심을 보이는 일이 부끄럽지 않으며, 당신이 내 품위 없고 인간적인 식욕을 봐줬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는 음식이다.

<Heartburn(1986)>에 등장하는, 문제의 까르보나라 장면

“섹스가 끝난 뒤 그 나른하고 몽롱한 상태에서 레이철이 만드는 음식이 비단처럼 부드럽게 엉켜있는, 마늘 냄새가 풍기고 감칠맛 도는 짭짤한 스파게티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뭔가 할 말이 있는 음식이다(199).”


음식과 정체성의 상호작용 역시 여러 영화에서 익숙하게 찾아볼 수 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해리가 주문하는 소금에 절인 소고기를 얹은 호밀빵은 그가 유대인임을 밝히는 영화적 기법이고, 샐리가 주문하는 칠면조 고기를 얹은 흰 빵은 그녀가 전형적인 미국인, 즉 앵글로 색슨계 백인 신교도임을 상징한다(234). <애니 홀>의 바닷가재는 유대교의 율법에 비추어 볼 때 바르지 못한 식품인데, 애니가 앨비의 인생을 들쑤셔 놓듯이 바닷가재는 앨비의 주방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는다(236). <나의 그리스식 웨딩>에서 음식은 그리스다움과 그리스답지 않음을 대비시키는, 유머러스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된다(274).


3. 지하철에서 먹는 여성들 (Women Who Eat On Tubes)
 
 2014년 무렵 악명을 떨치며 알려지기 시작한 페이스북 집단. 지하철에서 뭔가를 먹는 여성들을 몰래 찍어 올리고 퍼뜨리는 플랫폼 역할을 했다.


 당시만 해도 그 도촬물을 현대인의 개인적 특성이나 어떤 본질을 재치 있게 포착한 예술 프로젝트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말할 것도 없이 여성의 신체에 대한 조롱이었고, 저자의 표현을 빌면 “우리가 공공장소에서 살고 먹고 숨 쉴 때 다른 사람들이 감히 우리 몸에 대해서 떠들어대는 주장(80)”이었다. 이 집단의 책임자인 남성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공공장소에서는 감수해야 할 위험이 많다’는 식의 답변을 했지만, 루비 탄도가 보기에 그것은 “남자가 아닐 경우에 감수해야 할 위험”이었다.


4. 주디 실(Judee Sill), <마음의 음식(Heart Food, 1973)>


 포크송 가수이자 작곡가였던 주디 실의 1973년 앨범.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고 서른한 살에 이른 죽음을 맞이했던 주디 실은 ‘허기’가 뭔지 잘 알고 있던 사람이라고 저자는 평한다. 이 앨범에서 허기는 시종일관 되풀이되는 주제다.


 “주디 실이 정신과 몸의 간극, 거기에서 스며 나오는 허기에 대해 노래할 때, 이것은 실체 없는 존재의 허황된 꿈이 아니었다. 실은 세속적 뿌리나 인간으로서 느끼는 불가피한 허기를 놓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극심한 허기를 마지막 하나까지 빠짐없이 느끼고 소중히 여긴다. 허기를 느끼고, 허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놀랍게도 우리가 지금 있는 자리와 가고 싶은 자리 사이의 거리가 떠오른다(145).”


(개인적으로는 "허기를 느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지금 있는 자리와 가고 싶은 자리 사이의 거리가 떠오른다"는 말이 정말 좋았습니다.)
 

5. 검은 표범당 (Black Panther Party)
 
 저자가 이 책에서 음식이 얼마나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할 때 등장하는 예. FBI 국장 에드거 J. 후버가 “미국의 국내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불렀던 조직이라고 한다. 흑인들의 삶을 위해 열심히 싸우면서 ‘생존 프로젝트’를 통해 옷 나눠 주기, 의료 지원, 마약과 알코올 중독 재활 지원, 지속 가능한 공동체 사업 건설 등에 앞장섰다. 그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운동이었다고. 한때 5만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아침을 제공하면서 가난한 지역 아이들의 삶을 바꿔 놓았다.   
 
 “미국 정부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검은 표범당의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나고 자란 가난한 지역에 다시 관심을 쏟으며 다른 흑인들을 보살피고 지원할 방법을 찾았다. 그들은 음식의 힘을 알아보았다. 음식은 단순한 영양분이 아니었다. 음식을 제공하고 함께 먹는 행위에는 사회적 힘이 있었다. 아침 식사 모임은 조직과 교육, 공동체 결속을 위한 토론의 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이 시간에 제대로 된 식사뿐 아니라 사유의 양식까지 얻어갔다. 아침 식사는 배에서부터 차오르는 혁명적인 행위였다(222).”


오늘도 모두들 맛있는 식사 행복하게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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