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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May 12. 2021

인생의 일곱 가지 맛 - 일곱째, 숙성된 맛 (2)

김치, 그리고 패스트푸드에 관하여

#


숙성된 맛을 쓰는데 김치를 안 쓸 수가 없었다.

와 김치.

김치,라고 그 매큼한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러보는 것만으로 배추는 나에게로 와서 빨간 꽃이 되고 아주 난리다.


어린 시절에 김치를 딱히 싫어했던 건 아니었지만 막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엔 김치 말고도 맛있는 반찬이 많았다. 맛도 색상도 굉장히 신묘하던 오동통한 분홍 소시지라든가, 티브이에서 방영하던 <V>에 나오는 파충류들의 속살을 닮아서 한동안 입에 못 대겠던 스모크 햄이라든가, 흰쌀밥에 척 얹어먹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오 마이 관세음보살이 절로 나오는 스팸이라든가. (뭔가 굉장히 편중된 것 같은 예시들이지만 그 시절의 저는 아마도 핑크색을 좋아했나 봅니다...) 김치는 그냥 늘 거기에 있는 말수 적은 친구 같았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엄마는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많이도 담그셨다. 깍두기, 총각김치, 열무김치, 나박김치, 백김치, 오이소박이, 갓김치, 얼갈이김치, 고들빼기김치, 동치미. 그땐 김치의 낙원에 살면서 그 행복을 몰랐다. 발효의 맛을 제대로 알려면 인생도 약간 발효가 필요한 모양이다.


아빠는 나박김치를 좋아하셨다. 잣을 넉넉하게 띄운 국물 위에 가끔 참기름도 한두 방울 얹어 드셨다. 꽃 모양으로 썰려 들어간 당근이 연녹색 미나리며 쪽파를 배경으로 하늘하늘 떠 있는 꽃밭 같은 자태도 고왔지만, 나박나박 썰어서 나박김치라니 이름부터 참 예뻤다. 국물이란 국물은 땟국물 빼고는 다 좋아하는 나도, 어렸을 때부터 시원한 국물의 나박김치는 꽤 좋아했다. 당시만 해도 실고추를 꿀꺽 삼키는 기능이 탑재되지 않아 젓가락으로 하나씩 골라내느라 애를 먹곤 했다. 5학년 때 실과 시간에 나박김치 담그기 실습이 있었다. 분단별로 꼬맹이들이 모여서 무를 썰고 배추를 썰고 당근을 썰고 파와 미나리도 썰고, 소금이며 고춧가루, 마늘 같은 걸 주물럭거렸다. 맛있으라고 설탕도 조금 넣고 배도 넣었다. 교실 뒤에 놓았다가 다음 날 모두 맛을 보았는데, 세상에.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다른 분단 애들이 만든 것도 먹어봤는데 색안경을 단단히 장착하고 먹었으니 당연히 우리가 만든 게 제일 맛있었다. 선생님께서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라고 평해 주셨을 때, 혼자 만든 것도 아닌데 어깨가 으쓱해졌다. 김치 별거 아니네.    


그런데 김치는 참 별거였다. 나박김치 난이도가 가장 낮았을 뿐이다. 특히 김장의 위용이라니. 다음 해 늦봄까지 먹을 김치를 만들어 그득하게 저장해 두는 일. 그게 별게 아니면 대체 뭐가 별거란 말인가. 손이 크고 어디서나 약간 대장격이었던 엄마의 김장은 배추 100포기가 기본 단위였다. 그러니까 100이라는 숫자가 미니멈이었고 그 위로 더 올라갔단 얘기다. 대가족이긴 했지만 우리가 다 먹을 양은 아니었고, 많이 해서 여기저기 나눠주시느라 그랬다. 보통은 2-300 포기 정도 하셨던 것 같다. 배추 300 포기가 마당에 쌓여있는 모습은 심지어 웅장하기까지 했다. 소금이며 고춧가루도 당시 우리 집에서 키우던 화리(멍멍이 이름 치고는 참 유니크한 것을 지금 깨닫는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지었던 거지.)가 빠져 죽을 만큼의 양이 마당에 놓였다. 당시만 해도 추운 날 손 호호 불어가며 밖에서 모든 걸 해야 했는데 참 그걸 다 어떻게 했는지, 아랫목에 배 깔고 누워서 책이나 보던 팔자 좋은 어린 딸년은 이제야 어른들의 노고를 마음 깊이 이해한다.  


나는 어린이가 보기엔 다소 지루한 작업의 반복이었던 절인 배추 짜기, 무채 썰기, 양념 만들기나 버무리기 같은 것들이 모두 마무리되고서, 어른들이 김칫독을 파묻을 자리를 물색해 땅을 파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마치 집안의 큰 어른 같은 포스로 슬그머니 나가보곤 했다. 내가 통째로 들어갈만한 커다란 김칫독이 두 개쯤 땅에 토닥토닥 묻히고, 그 안에 곱게 양념 옷을 입은 배추 반토막들이 포대기에 아기 싸이듯 하나씩 겉잎으로 얌전히 싸여 차곡차곡 들어차는 모습은 보는 재미도 있었거니와 그때쯤이면 배추전이며 맛있는 보쌈 같은 게 준비되는 냄새가 흐뭇한 밀물처럼 마당을 채웠기 때문이다. 독 안에 들어가는 조그맣고 빨간 아기 포대기가 몇 개인지를 세어보다가 입으로 들어오는 보쌈 한 입에 그만 정신도 잃고 세고 있던 숫자도 같이 잊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묻어둔 독 위에는 비도 내리고 바람도 불고 눈도 내렸다. 볏짚 같은 걸 둘러놓고 독 뚜껑 위에는 도톰한 스티로폼이며 모포를 얹고 돌로 눌러두었기 때문에 안에 든 김치가 얼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나씩 가져오는 김치는 정신이 번쩍 들만큼 차가웠다. 맛이 잘 든 김치는 이게 차가워서 시원한 건지 맛이 잘 들어서 시원한 건지, 어쨌든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한 맛이었다. 아삭하니 혀에 착 달라붙는 맛. 자꾸만 입에 밀어 넣고 와삭와삭 씹고 싶은 맛이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정말 수많은 김치를 먹어봤지만 나는 우리 마당에 묻어둔 독에서 꺼내던 그 김치보다 더 맛있는 김치를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참기름 두른 나박김치며 달달한 깍두기를 좋아하던 꼬맹이는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잘 익은 김장김치의 맛을 최고로 치는 인간으로 자라났다.


겨우내  김치를 가져다 먹고 이듬해 봄이 되어 고무장갑을  엄마도 몸을 잔뜩 기울여서 팔을 깊이 뻗어 김치를 꺼내야  때가 되면 김치는 곰삭아서  쏘는 맛이 잔뜩 생겨났다. 그러면 엄마는 돼지갈비를 잔뜩 넣고 김치보다 고기가 많은 김치찌개를 였다. 커다란 들통 가득 끓이는 김치찌개의 비법 재료는 물론  밑바닥에 있던  김치와 푸짐하게 살이 붙은 돼지갈비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시간이었다. 살이 뼈에서 쏙쏙 부드럽게 빠질 정도로 오랜 시간을 뭉근히 끓여 내면 감칠맛이 폭발하는  가족의 소울푸드가 생겨났는데, 큰언니가 솥을   습격하고 지나가면 그건 보통의 김치찌개로 변했다. (고기, 고기 어디 갔어.)


딸 딸 딸 아들, 우리 넷의 대장이었다가 가장 먼저 결혼한 큰언니는 집에 놀러 오면 엄마한테 종종 그 고기 반 김치 반 김치찌개를 끓여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시간이 늘 우리 편은 아니라서 우리 넷 사이도 시간의 궤적을 따라 곰삭으며 톡 쏘는 맛이 생겨버리긴 했지만, 자라면서 언니들에게 받은 것을 생각하면 나이 든 동생의 마음은 배추처럼 짠기를 머금고 쪼글쪼글 절여진다. 보고 싶은 큰언니. 외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느라 당최 만나기가 어려운, 정 많고 성격 지랄 맞은 우리 언니. 언제 한 번 언니랑 김치 한 포기 통째로 썰어 넣고 돼지갈비 그득 넣은 찌개를 폭폭 끓여 옛날 얘기하면서 푸짐하게 먹어보고 싶다.


세 번째 숙성된 맛, 김치


#


사실 뉴스도 스낵처럼, 책도 패스트푸드처럼 뚝딱 씹어먹게 만드는 이런 스피드의 시대에 발효의 진득함과 느긋함이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점점 정신 차리기 어려운 속도로 내달리고 있기에, 숙성이라는 차분하고 조용한 과정에 우리가 더욱 가치를 두는 것 같기도 하다. 숙성이라는 것은 그렇게 음식에도 인간에도 깊이를 준다.


“Age is just a number. Maturity is a choice.” 어디서 출처도 모른 채 주워듣고는 수첩에 적어두고 아끼던 말이다. 칸트 정도가 할 법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Harry Styles라는 94년생 영국 싱어송라이터의 이름이 뜬다. 보기에 눈알이 참 흐뭇해지는 아름다운 청년이다. 성숙이라는 건 이 청년의 말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그렇게 음식이 썩지 않고 숙성되는 일도 어렵고, 우리가 깊이 있게 성숙되는 일도 어렵다. 그래서 숙성도 성숙도 참 아름답다. 머리 위에 반짝이는 별이 잔뜩 내려 앉은 멋있는 어른들을 볼 때 느껴지는 안정감이며 온기가 있다. 맛이 들 시간을 충분히 주어가며 천천히 만드는 슬로우 푸드도, 만드는 과정부터 먹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어떤 안정감이며 온기를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속성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사실 패스트푸드도  좋아한다. 별처럼 많은 롯데리아 데리버거,  입씩 베어 먹으면 달처럼 변해가던 버거킹 치즈 와퍼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곳은 교복을 입고 편한 맘으로 친구들과 즐겁게 속살거리며 깔깔댈  있었던 공간이었다.  대를 위한 공간이 변변치 않았던 시절, 우리만의 공간이라면 단연 패스트푸드점이었다. 그때의 내가 무슨 을지면옥 편육 맛을 알았겠나 팔락 파니르 맛을 알았겠나. 그저 중간고사 후에 친구들과 몰려가서 먹는 바삭바삭 짭짤한 치킨, 딸기잼  짜서 얹은 비스킷콜라  모금이 최고로 행복한 맛이었다. 노란 해가 반짝이며 비쳐들던 우리 동네 KFC 그렇게 내겐  차게 행복했던 공간으로 기억된다.  대와 이십 대를 거치며 그렇게 많은 햄버거며 길거리 떡볶이며 사발면을 먹어댔어도 나는 아직   없이 산다. 도대체 체중계가  신체 나이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나이에서 무려 일곱 살을  주기에 아이고 착하다 쓰다듬어주었다. (, 위장 나이는 환갑이 지났을지도 모른다.)


패스트푸드의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슬로우 푸드만이 선이요, 패스트푸드는 악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는 어쩐지 걱정스럽다. 음식이란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영양을 주고 살찌우는 물건이다. 사람을 가르고, 도덕적 잣대나 색안경이 되어 누군가를 배곯게 하는 물건이 아니다. ‘저런 걸 먹는 애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마라.’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패스트푸드나 정크 푸드가 가난한 사람들의 나쁜 식습관, 혹은 직무를 유기한 엄마(이런 걸 먹인다고 비난받는 쪽은 아빠가 아니라 주로 엄마들이니, 여기에서는 그냥 젠더를 그대로 특정해서 엄마라고 쓰겠다)들의 비난받아 마땅한 선택이라는 낙인을 벗어났으면 좋겠다.


거대하고 탐욕스러운 프랜차이즈라는 점을 평소에 마뜩지 않게 생각하더라도, 말도  통하는 낯선 나라에  떨어졌을  멀리서 찬란한 노란 M자가 보이면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싶은 작은 안도감이 드는 법이다. 김밥천국이나 롯데리아는 예약을 하지 않고 발레 파킹을 하지 않아도 들어갈  있는, 소박하고 열려있는 곳이다. 고급스러움만이 미덕은 아니다.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는 고집은 아무 때나 부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시간을 들여 음식을 천천히 만들 수 없는 사람도, 상황도, 분명 존재하는 법이다. 집밥만이 옳다는 도덕적인 믿음으로 흘러가는 것은 시간에 허덕이면서 아이들의 작은 입에 냉동식품이나 빅맥을 밀어 넣어 주는 부모들의 마음에 죄책감을 한 겹 더 쌓는 일이다. 소설가 권여선은 “집밥이란 말을 들으면 누구나 향수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입속에 고인 침을 조용히 삼키는데, 이건 순전히 집밥을 하지는 않고 먹고만 싶어하는 사람들의 환상이 아닐까 한다”고 말한다. 집밥의 신화 뒤에는 그 신화를 지탱하느라 의무감으로 무거운 칼을 쥐는 누군가가 있는 법이다. 집밥이 좋다고, 집밥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소소하게라도 그 집밥을 만드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숙성된 맛에 관해 쓰면서 나는 숙성의 아름다움과 함께 속성으로 먹을  있는 음식들의 은혜로움을 일부러 언급하고 싶었다. 지금으로부터 십오  전쯤,  말이 더럽게 많았던 똑똑하고 재미없는 철학자들 - 예를 들면 헤겔이라든가 헤겔이라든가, 아니면 헤겔이라든가 -  이야기로 머릿속이 온통 쑥대밭이 되던 그런 . 허덕거리며 쫓아가느라 마음이 지치고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쪼그라들던 날엔 터덜터덜 기숙사로 돌아와 후루룩 끓여먹던 라면이 얼마나  영혼에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때 누군가가  옆에서 그런  먹으면  된다, 제대로 따뜻한 밥을 짓고 영양가 있는 반찬을 해서 먹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다면 나는  입바른 소리를 하는 조동아리를 변증법적으로 찌이익 잡아 늘였을 것이다.


숙성은 숙성대로, 속성은 속성대로, 서로를 존중하고 공존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껏 언급해 온 일곱 가지 맛들이 모두 조화를 이루며 우리 밥상을 고루 빛내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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