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수선

열네 번째 시

by 이진민

2021. 3. 16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담장 수선(Mending Wall)'


[담장 수선]


무언가 담장을 좋아하지 않는 게 있다.
그것은 담장 밑 얼어붙은 땅을 부풀게 하여
햇볕 속에 위쪽 둥근 돌들을 떨어뜨린다.
나는 언덕 너머 사는 이웃에게 알리고
날 잡아 하루 만나 경계를 따라 걸으며
우리 사이에 담장을 다시 세운다.
그는 모두 솔밭이고 내 쪽은 사과나무 과수원이니
내 사과나무들이 그쪽으로 건너가

소나무 밑 솔방울들을 먹어치울 리 없다고 말해보지만,

그는 "담장이 튼튼해야 좋은 이웃이지요"라고 말할 뿐.


[Mending Wall]


Something there is that doesn't love a wall,

That sends the frozen-ground-swell under it,
And spills the upper boulders in the sun...

I let my neighbour know beyond the hill;

And on a day we meet to walk the line

And set the wall between us once again.

He is all pine and I am apple orchard.

My apple trees will never get across

And eat the cones under his pines, I tell him.

He only says, "Good fences make good neighbours."




담백한 말투로 작은 이야기를 만들어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내공에 감탄합니다.


봄이 되면 얼었던 땅이 촉촉하고 부드러워지면서 땅이 부풀고, 담장 위 돌들이 몇 개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모습.

그걸 보고 (역설적으로 이름에 겨울 기운이 가득한) 프로스트는 ‘무언가 벽을 좋아하지 않는 게 있다’고 말합니다.

담장 윗부분의 돌들이 몇 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서 그 이면에 작용하는 무언가를 보는 게 시인의 눈이고

‘돌들이 떨어져 내린다’가 아니라 ‘무언가 벽을 좋아하지 않는 게 있다’고 말하는 게 시인의 입이죠.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왠지 담이며 벽을 좋아하지 않는 도깨비나 요정이라도 생기는 느낌이라, 이 첫 문장이 귀엽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은 대체로 경계를 허무는 쪽이죠.

강줄기도 시간이 쌓이면 몸을 살짝 틀고, 뾰족한 봉우리는 조금씩 발톱을 오므리고요.

그렇게까지 시간이 쌓이지 않아도 뿌리며 가지들은 인간들이 그어놓은 금 따위 잘 모르겠다며 다른 쪽을 향해 손발을 뻗고는 합니다. 금 너머로 낙엽이며 열매들을 떨어뜨려보기도 하고요. 인간이 넘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는 선 위로 민들레 씨앗들은 보송거리며 날아 올라 올해는 이쪽, 이듬해에는 저쪽에 살아봅니다.


이렇게 자연은 계속 금을 지우고 경계를 허물고 싶어 하는데, 인간은 부지런히 경계를 확인하고 금을 긋고 심지어 그렇게 튼튼한 벽을 쌓는 것이 ‘좋은’ 이웃이 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이 둥그런 세상에 수없이 그어둔 금들, 그 위로 오간 피와 눈물과 거친 말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어린 시절, 짝꿍에게 넘어오지 말라면서 책상에 빨간 색연필로 그어놨던 말랑말랑한 금에서부터 통곡의 벽, 베를린 장벽, 휴전선 같은 시퍼렇게 위압적인 금까지.


인간은 대표적인 영역 동물입니다.

영역이 넓을수록 많은 식량과 짝을 차지하는 야생동물의 섭리가 인간 세상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편이죠.

수많은 영역 동물들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인간도 사실은 자연의 일부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자연이 꼭 경계를 허무는 쪽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크린 세이버에 명멸하는 선들처럼, 경계가 변화무쌍하게 그어졌다 사라지는 쪽이 자연인지도요.

다만 생존 본능이기에는 인간들이 만들어 온 명멸하는 금이 과하게 잔인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라고 노래 부르던 시절에는 확실히 벽을 넘는 것, 담장을 허무는 것이 이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 부르며 자란 꼬맹이는, 그 노래를 조금 덜 부르고 자란 후배가 “언니, 그거 내 소원 아닌데?”라고 말했을 때 사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더랬죠. (반공교육 받고 자란 옛날 사람… 저의 생애 첫 극장 영화는 <똘이장군>이었습니다.)

지금은 저 역시 그 금에 대해 생각도, 감정도 꽤 복잡합니다.


실은 이 시를 필사했을 때, 모임에 계신 분들이 대체로 “경계가 너무 없어도 서로를 힘들게 하죠,” “선을 현명하게 적절한 높이에서 잘 긋는 게 좋은 이웃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살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내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드디어 자유주의적 마인드가 기본 배경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구나. 특히 “얼굴이 살짝 보여 서로의 미소가 보일 만큼의 높이가 좋겠어요”라는 김민정 님의 말씀에 그래, 이거지-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수없이 많은 선을 잘 긋는 일’은 모두에게 주어진 인생 미션이기도 하죠.

우리는 오만 군데에다 선을 그렸다 지웠다 하며 삽니다.

실은 저 스스로가 ‘무언가 벽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담장이 튼튼해야 좋은 이웃이죠’라고 말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좋아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벽에 구멍이라도 하나 내고 싶어서 주먹질을(…) 하다가, 또 벽이 급히 허물어질라치면 금세 안절부절못하고 그 벽을 부여잡게 되기도 하는.

인간이란 게 원래 그렇게 양가적인 감정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땅에 그어져 있는 가장 단단하고 가장 차갑고 가장 잔인했던 금에 대한 논쟁이 최근 분분합니다.

지도에다 급히 자대고 그었을 법한 그 금 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고통받았는지요.

종전선언에 대한 논의가 이번에는 과연 말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가시적인 성과로 이루어지려는지, 아니면 오랜 금을 두고 또 필요에 의한 허무한 밀당을 하다 그칠 것인지, 매번 그럼 그렇지- 하면서도 매번 궁금하네요. 사실상 우리는 가끔 아슬아슬하긴 했어도 꽤 오랜 시간 종전의 시간을 살아왔는데, 말 하나 분명하게 만드는 게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싶기도 합니다. 서로 미소를 지을 마음을 가졌을 때, 그 미소가 살짝 보일 만큼의 높이에서 담을 쌓고 문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11월은 기온도 내려가고, 숫자에 직선이 두 개나 있어서 그런지 조금은 차가운 느낌인데요.

날이 차가운 만큼 살아있는 것들의 온기가 그리워지기도 하죠.


내가 오늘 그을 선들이 연필로 긋는 선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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