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시
2021. 11. 11.
신현수, ‘자화상 2 - 술값’
신현수 시집, <나는 좌파가 아니다 (작은숲, 2012)> 중에서
말 많이 하고 술값 낸 날은
잘난 척한 날이고
말도 안 하고 술값도 안 낸 날은
비참한 날이고
말 많이 안 하고 술값 낸 날은
그중 견딜만한 날이지만
오늘, 말을 많이 하고 술값 안 낸 날은
엘리베이터 거울을
그만 깨뜨려버리고 싶은 날이다.
시인들의 자화상이라는 건 늘 부끄러움과 관계되는 걸까요.
시인이란 부끄러움이 많은 종족인가 봅니다. 그만큼 영혼이 맑은 사람들이겠죠.
산모퉁이 논가의 외딴 우물이,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대던 구리거울이, 귀갓길 아파트 엘리베이터 거울로 바뀐 세상입니다. 한 젊은이의 영혼을 갉아대던 망국의 그늘이, 그보다는 다소 보는 사람 마음이 편한 일상의 부끄러움으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됩니다.
처음에 이 시를 읽었을 때, 얼굴이 불콰해진 시인이 제 앞에 비틀거리며 서 있는 것 같아 슬쩍 웃었던 것 같습니다. 술값과 말의 좌표 속에서 시인의 감정이 그리는 그래프가 귀엽기도 짠하기도 했고, 그렇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이 참 투명하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대한민국 술 소비에 일조했던 저의 젊은 시절, 그 수많은 말들과 술값들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진앙이 서너 군데쯤 되는 강진의 지진 강도 그래프만큼 정신없을까요. 사실 조금씩 나눠 내면 되는 걸 우리는 참 "내가 쏜다”에 집착하는 사람들이기도 하죠.
그런데 필사하면서 읽으면 읽을수록 경우의 수가 꼭 2x2일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요. 어떤 사람과 마시느냐에 따라 경우의 수는 무한히 늘어나고, 또 그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술값이란 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변수가 되기도 하니까요. 대화가 너무 좋았기에 술값 같은 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날들도 있고, ‘네 입으로 들어가는 술은 모두 내가 사 줄 테니 너는 말만 해줘, 내가 마시고 싶은 건 술보다 네 말이야’ 같은 마음이 드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이 시와 함께 읽으면 좋을 글을 친구가 한 자락 끊어다 소개해 주었습니다.
“마음 맞는 친구하고, 막걸리든 소주든 맥주든 술을 앞에 놓고 마주 앉으면, 내 속에서 잠자고 있던, 그리고 사실은 나 자신도 내 속에서 잠자고 있는 줄 몰랐던 말들이 줄줄, 아니 술술 나올 준비를 한다. (…)
복 지느러미를 넣은 정종에 불을 붙여본 이후에 나는 ‘불꽃이 조그마한 소리를 내며 알코올 표면으로 내려가는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 불타는 술이 위 속으로 들어가면 말의 성감대를 움직여 사람의 입을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술 마신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래서 아름답다. 그것은 조그마한 소리를 내는 불꽃의 말이기 때문이다. (…)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혀를 불태운다. 술 마시며 하는 이야기는 불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 중에서도 사랑의 이야기가 가장 아름답다. 사랑이야말로 불 중의 불이기 때문이다.”
작고하신 문학평론가인 김현 선생님의 <불꽃의 말>이란 글이라고 합니다. 전문을 구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로 이루어진 인간들이 불이 되는 순간. 차갑고 스산한 11월에 읽으면 글맛이 참 좋을 것 같네요.
이 글을 읽고 있자니 술과 말에 관해서 이전에 써놓았던 글이 떠올라 그것도 갖다 붙여 봅니다. 소주의 쓴맛에 대해 썼던 건데 글에서 술냄새 나네요. :)
내가 이 놈의 술을 다시 입에 넣으면 사람이 아니고 멍멍이다, 싶은 생각을 몇 번이나 했더라. 그렇게 속을 뒤집고 세상을 뒤집었던 소주지만, 이 쓰디쓴 액체는 내게 약이었다. 스무 살 언저리가 될 때까지 나는 평소에 감정 표현이 크지 않고 극도로 말이 없는 인간이었다. 그나마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땐 명랑했지만 집에서조차 거의 말이 없었다. 오죽하면 친척들이 내 목소리 들어보는 게 소원이라고들 하셨다. 얘가 말도 하냐고, 너 아무 말이나 좀 해 보라고. 대학 동기들도 대체로 나를 묵언수행하며 지하 세계에 있던 인간으로 기억하지 싶다. 그런데 술이 들어가면 나는 한없이 발랄해졌다. 말도 많아졌고 웃음도 많아졌고 에헤헤거리며 사람을 덥석덥석 안았다. (유학 가서 알게 된 사실인데 술을 마시면 심지어 영어도 유창해진다고 한다. 늘 우리를 불러 술을 먹이던 클라우디아가 그랬다. 너 논문 심사받을 때 꼭 물 대신 술 놓고 하라고.) 그렇게 술로 단련하기를 1년 정도가 되자 나는 술 없이도 잘 웃고 말도 제법 하는 인간이 되었다. 소주는 밖으로 나가기를 바라며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말들이며 감정을 차례차례 밖으로 꺼내고 조금씩 흘려보내 주던 약이었다. 맥주를 마신다고 안에 든 알맹이가 나오는 법은 거의 없었지만, 소주 한 병이면 안에 똬리처럼 맺혀있던 매듭들이 하나씩 쑤욱 딸려 나오곤 했다. 또 이 쓰디쓴 소주가 말할 수 없이 단 날이 있더라. 약이라고만 하기엔 위장을 개박살 내곤 했지만, 몸이 갉아먹히는 대신 마음은 조금씩 보드랍게 풀어져 갔다. 소주가 아니었어도 나는 오늘날의 무던하고 편한 인간이 되어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많이 답답하고, 덜 웃고, 속은 좀 더 곪아 있는 사람으로 살지 않았을까. 그래서 20대에 그렇게 공복에 장복한 소주는 내게 약이었다, 분명히.
마음 맞는 친구와 술을 앞에 놓고 불꽃의 말로 몸을 데우고 싶은 초겨울입니다.
김현 선생님 덕분에 오늘은 특히 히레사케가 당기는군요.
술을 즐기시든 그렇지 않든, 가장 좋아하시는 한 잔 기분 좋게 털어 넣고 불꽃을 품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위에 인용한 글의 전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jinmin11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