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시
2021. 11. 17.
이산하, ‘나무'
나를 찍어라.
그럼 난
네 도끼날에
향기를 묻혀주마.
마치 종교적인 잠언 같기도 하고, 방패와 곤봉을 들고 대치하는 전경들 앞에서 꽃을 들고 서 있었던 어느 시위대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하는 시입니다. 시인의 성함마저도 그냥 시와 하나가 되어 향기가 어리는 듯하네요.
한쪽이 살의를 가지고 맞설 때, 그럼에도 향기로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럴 수 있는 건 아마 셋 정도가 아닐까요. 사랑과 평화가 마치 황금의 방패처럼 영혼을 두르고 있는 성자, 영화 <공공의 적>에서 보는 사람 입술을 깨물게 했던 종류의 어머니, 아니면 한없이 품 넓은 자연. 인간들이 그토록 베고 찌르고 찍어도 말없이 향기만 묻혀 주던 자연이었는데, 요즘은 자연의 너그러움에도 한계가 와서 우리들에게 복수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무섭습니다.
네가 나에게 상처를 입혀도 나는 같은 방식으로 너를 대하지 않겠다. 내 육신에는 해를 입힐 수 있을지언정 너는 결코 나의 중심에 닿을 수도, 나를 망가뜨릴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그저 오롯이 나로 남을 것이고 너처럼 되지 않겠다. 공은 다시 너에게 넘겨질 것이고, 네 몸에 묻은 나의 향기를 보고 어떤 선택을 할지는 네게 달렸다. 이거 진짜 환장하게 멋있는 멘털리티입니다. 요즘 들어 나무라는 존재가 얼마나 멋있는지에 대해 가끔 생각합니다. 인간의 가장 좋은 스승은 늘 곁에 말없이 있는데, 우리는 초점 잃은 눈으로 항상 먼 곳을 두리번거리네요.
같은 필사 모임에 계신 이헌주 님께서는 이 시를 읽고 김소월 님의 <진달래꽃>을 떠올리셨다고 합니다.
네가 나를 찍어버려도 나는 너를 기억한다일까요.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즈려밟고 가시옵소서가 떠오르네요.
마치 보내주는 듯 하지만,
네 도끼날에 나의 향기를 묻히고
네 신발에 꽃잎들을 묻혀
나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겠다는 다짐처럼 들려요.
향기는 추억처럼 오래도록 기억되니까요.
그리고 이 시를 저희에게 소개해 주신 허진영 님께서는 이 시에 대한 시인 이문재 님의 단상을 함께 소개해 주셨습니다.
분노와 화는 다르다. 분노가 사회적인 것이라면 화는 사적인 것이다. 분노가 정의나 평등과 같은 보편 가치에서 비롯된다면 화는 모멸감이나 열등감 같은 사적 감정에서 우러난다. 분노가 이성과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면 화는 말 그대로 화풀이, 분풀이다.
분노와 화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사회적 주체와 심리적 자아가 균형을 이룬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사적인 화를 공적 영역에서 분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감정조절 장애가 ‘한국병’으로 자리 잡았다. 감정노동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은 갈수록 떨어진다. 감정에 관한 한 대다수 어른이 미성년이다.
이산하 시인의 ‘나무’는 비극적으로 생애를 마감한 정치인을 추모하기 위해 쓴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시가 너무 짧다는 이유로 행사장에서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시를 쓰게 된 배경이 어떻든 간에 저 짧은 시는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도끼를 들이대는 상대방을 향해 고개를 빳빳이 들었을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나’에겐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끼날에 묻는 것은 피일 텐데 왜 굳이 향기라고 했을까.
향기는 보이지 않지만 멀리 퍼져 나간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향기는 우리의 두 눈을 지그시 감게 한다.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에 따르면 분노는 창조적이어야 한다. 창조적 분노는 공공성을 중시하고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한다.
나는 도끼날에 묻은 저 당당한 ‘향기(분노)’가 변화의 촉진제가 되리라 생각한다. 도끼를 든 자뿐만 아니라 저 시를 읽는 모든 이에게.
이문재 (시인)
약간 옆길로 새는 이야기지만, 나무와 향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덧붙입니다.
2년 전부터 저희가 살 조그만 집을 지으려고 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관청도 닫히고 자재값도 많이 올라서 전면 중단했었거든요. 다행히 상황이 조금씩 풀려서 내년 봄에는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건축과 공사 분야에서는 정말 놀랄 만큼 속도가 느린 독일 특성상 입주는 후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 같지만, 우리 집 정원이 생기면 무엇보다 같이 나이 들어갈 친구 나무를 사귀고 싶어요. 비 오는 세상을 같이 바라보며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아이들에게 기쁨을 줄 과일나무를 데려오고 싶기도 하고 겨울에 반짝이는 트리 장식을 얹어 줄 아담한 전나무 생각도 나지만, 가장 심고 싶은 건 목련과 라일락입니다. 굳이 나무를 베지 않아도 좋은 향기를 전해주는 나무.
어린 시절 집 마당에 커다란 목련나무가 있었어요. 봄이면 커다란 구름 하나가 우리 집 마당에 내려앉은 듯이 탐스럽고 눈부신 꽃들을 가득 피워내는 나무였지요. 잎보다 꽃이 먼저 만발하는 나무라서, 가지마다 송이송이 커다란 꽃만 듬뿍 달고 있는 모습은 어린 눈에도 참 황홀했어요. 살짝 노란빛이 도는 흰색을 아이보리, 즉 상아색이라고 한다는 것을 그 꽃을 통해 배웠습니다. 캄캄한 봄밤에 보는 흰색은 낮에 보는 흰색과는 분위기며 광채가 다르다는 것도요. 송이가 크고 튼튼하고 우아한 꽃.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니, 어린 마음에도 그 예쁜 이름부터 착 달라붙었습니다.
목련꽃 향을 맡아보신 적이 있나요. 키 큰 나무에 피면 높아서 냄새를 맡기 어려워 그런지 목련꽃 향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을 많이 보지는 못한 것 같은데, 저희 집 목련나무는 꼬맹이를 위해 가지 몇을 아래로 슬쩍 내려주는 마음씨 좋은 나무였습니다. 조그만 접이식 사다리에 올라가거나 어른이 안아주시면 향을 맡을 수 있었어요. 장미의 달콤하고 강렬한 향과는 다른 결의 감미롭고 그윽한 향.
하늘거리는 꽃잎이 아니라 도톰하게 힘이 들어간 꽃잎이라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살짝 잡고 꼭꼭 눌러보다 결을 따라 찢으면 코에 향이 훅 닿아오곤 했지요. 나무 아래로 수북하게 떨어지는 꽃잎들이 다 장난감이었어요. 꽃잎으로 소꿉장난도 많이 하고, 마당에서 놀다 소나기를 만나면 나무 우산 속으로 피하기도 하고, 바람이 차가워지면 겨울 잘 나라고 나무 허리에다 새끼줄을 돌돌 감아 아빠랑 옷을 입혀주고, 털이 보송보송 오동통한 눈을 만져보기도 하고, 그 안에 꽃이 들어있을지 잎이 들어있을지 궁금해서 표시를 해 놓고 겨우내 기다리기도 하고. 눈들이 하나씩 살금살금 털옷을 벗는 모습은 아이가 고깔모자를 쓴 것처럼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아직도 그 나무가 그 자리에 있을지 궁금하네요.
그래서 저의 원픽은 일단 목련입니다. 꽃나무만이 줄 수 있는 벅찬 아름다움과 향기를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낮에는 자목련이 좋고 밤에는 백목련이 좋으니 둘 다 심어야 할까요.
여러분들께도 마음속에, 혹은 가까이에 간직한 특별한 나무가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