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열세 번째 시

by 이진민

2021. 9. 27

박성우, '바닥'

박성우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 (창비, 2011)> 중에서


[바닥]


괜찮아, 바닥을 보여줘도 괜찮아

나도 그대에게 바닥을 보여줄게, 악수

우린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위로하고 위로받았던가

그대의 바닥과 나의 바닥, 손바닥


괜찮아, 처음엔 다 서툴고 떨려

처음이 아니어서 능숙해도 괜찮아

그대와 나는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핥았던가

아, 달콤한 바닥이여, 혓바닥


괜찮아, 냄새가 나면 좀 어때

그대 바닥을 내밀어 봐,

냄새나는 바닥을 내가 닦아줄게

그대와 내가 마주 앉아 씻어주던 바닥, 발바닥


그래, 우리 몸엔 세 개의 바닥이 있지

손바닥과 혓바닥과 발바닥,

이 세 바닥을 죄 보여주고 감쌀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겠지,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겠지





첫 행부터 마음을 훅 끌어당깁니다.

"괜찮아, 바닥을 보여줘도 괜찮아."


손바닥, 혓바닥, 발바닥.

우리 몸에 있는 세 개의 바닥을 죄 보여주고 감쌀 수 있다면 사랑이다.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다.

굉장히 귀엽고 매력적인 연시(戀詩)네요.


손을 잡고 악수하는 것, 입술을 맞대고 키스하는 것, 지친 날 냄새나는 발을 씻어주는 것. 시인에게 사랑이란 이렇게 일단 몸으로 만나는 거군요. 몸에 있는 바닥을 서로 내보이고 맞대는 행위. 그렇게 몸의 바닥을 보이다가 마음 바닥을 보여주는 날 아마 두 사람은 그야말로 '바닥을 보여준 사이'가 될 겁니다. 바닥을 보여준 사이라니, 그런 사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에서 보고 마음에 담아둔 문장이 있습니다. "사랑은 결례의 와중에서만 완성된다." 즉, 사랑에 있어서 예의는 장애물이 되거나 심지어 모독이 되기도 한다는 말. 바닥을 보이고 서로 그 바닥을 감싸고 부비고 핥아주는 건 예의의 영역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니까요. 결례가 사랑스럽고 결례를 갈망하게 되는 유일한 영역, 사랑.


손바닥.

손바닥을 보이며 손을 맞잡는 행위는 내가 너를 해치지 않겠다는 오래된 약속, 즉 평화의 제안입니다. 내가 너에게 맹수처럼 이를 드러내지 않겠다는 표시, 가시로도 찌르지 않겠다는 다짐, 상처 줄 마음 없이 너의 눈을 보겠다는 표현. 악수를 하면서, 즉 너의 손바닥을 내 손바닥 위로 놓으면서 “서로의 바닥을 위로하고 위로받았다”고 쓴 중의적 표현이 귀엽습니다. 저는 크고 따뜻한 손이 제 손을 감싸줄 때의 느낌을 참 좋아해요. 요즘은 작고 따뜻한 손이 제 손 안으로 쏙 미끄러져 들어올 때 한없이 행복하고요. 그 작디작은 바닥이 나에게 한없이 자신의 존재를 기대고 내려놓을 때, 얼마나 두려우면서도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발바닥.
냄새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나이 들면서 가장 서글픈 것은 침침해지는 눈도 희어지는 머리도 아니고 나이 든 내 몸에서 나게 될 냄새가 아닐까요. 미리 두려워하고 싶지는 않지만 저는 사실 그게 가장 두렵습니다. 냄새나는 발바닥을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이라는 것은 서로를 측은하게 여기고 감싸줄 만큼의 끈끈한 친밀감이 있다는 말이겠죠. 그런 친밀감이 없더라도 발을 씻어주는 행위에서는 종교적 차원이든 세속적 차원이든 어떤 헌신성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한없이 낮아져도 좋다는 그런 마음.


혓바닥.

모두들 아시겠지만 인간의 체액이라는 것은 어떤 종류든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못됩니다. 하지만 타액을 섞으면서도 그게 혐오스럽지 않고 아무렇지 않거나 심지어 짜릿한 사이라는 건 평생 손꼽을 정도로 기적적인 일입니다. 그런 상대가 곁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죠. 사실 손바닥 발바닥을 서로 감싸주는 사이는 친구든 가족이든 지인이든 여러 관계가 있을 수 있어도 혓바닥을 감싸고 핥아주는 사이는 연인뿐입니다. 몸의 바닥 중에서도 가장 수줍음 많고 촉촉한 바닥. 아무에게나 내어줄 수 없는 바닥. 처음이 아니어서 능숙해도 괜찮아, 라는 문장에서 뒤늦게 많이 웃었습니다.


이 시가 참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사실 만나지 않고 만지지 않고도 사랑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몸의 바닥을 보여주지 않고도 마음 바닥을 보여주는 게 가능하니까요. 사실 사랑은 바닥과 관계없이 시작되는 거고, 엄밀히 말하자면 서로의 바닥을 확인하는 건 그 사랑의 견고함과 관계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고백하자면 제게는 살면서 바닥을 어느 정도 보여준 사람은 있어도 제가 아주 밑바닥을 보여준 사람은 아직 없어요. 저는 즐거이 결례를 저지르되 아주 밑바닥을 보여주지는 않는 것, 그게 우정이며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종류의 사람이라서요. 나는 바닥을 보여줬는데 너는 왜 보여주지 않아? 이 질문 앞에서 다소 불쾌한 기분으로 얼어붙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나 친밀한 사이든 과연 상대의 바닥을 볼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아마 모두들 바닥에 관한 입장이 조금씩 다를 겁니다. 마음 바닥의 시스템은 조금 복잡하지만 몸의 바닥에 관한 거라면 이 시에 즐겁게 동의해요.

이렇게 세 가지 바닥을 보여주고 감쌀 수 있다면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그런 사랑일 수 있겠다 생각하며 웃어 봅니다. 참고로 사랑이 가끔 바닥을 치는 건 괜찮지만 결혼 생활이 바닥을 쳐서는 좀 곤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웃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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