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시
2021. 6. 29.
김수우, ‘뒤'
김수우 시집, <몰락경전 (실천문학사, 2016)> 중에서
앞서간 사람이 떨구고 간 담뱃불빛
그는 모를 것이다 담뱃불이 자신을 오래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 최후가 아름답고 아프다는 사실을
진실은 앞이 아니라 뒤에 있다
한 발짝 뒤에서 오고 있는 은사시 낙엽들
두 발짝 뒤에서 보고 있는 유리창들
세 발짝 뒤에서 듣고 있는 빈 물병들
상여 떠난 상가에서 버걱거리는 설거지 소리를 망연히 듣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뒤에서 걷는다
물끄러미, 오래,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눈동자, 내게도 있을까
신호등 건너다 고개 돌리면
눈물 글썽이는, 허공이라는 눈
“진실은 앞이 아니라 뒤에 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날개를 편다는 말이 있습니다. 헤겔이 <법철학>이라는 저서에 남긴 말인데, 이번 시에 들어있는 저 시구를 읽으면서 자동적으로 떠올랐어요. 지혜와 철학의 여신인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어둠이 내려앉은 뒤에야 날아오른다는 말은, 이 세상 많은 일들은 지나간 다음에야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는 말인데요. 그래서 진실은 늘 뒤따라 오는 것, 가고 나서야 환히 보이는 것이라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사실 시인이 ‘뒤에서 보고 있는 것들’로 나열한 담뱃불, 은사시 낙엽들, 유리창들, 빈 물병들, 상갓집의 버걱거리는 설거지 소리 같은 것을 하나하나 보자니 딱히 미네르바의 부엉이까지 가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혜나 역사적 진실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우리 뒤에서 우리를 보는 것들이 주는, 작고 쓸쓸하고 소박한 진실이며 아름다운 상념 같은 것들이 그저 그대로도 참 의미 있지 않은가 싶어서요.
앞모습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뒷모습에서는 보일 때가 있죠. 앞모습에서는 괜찮았는데 돌아선 뒷모습을 보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던 기억. 나이 드신 아빠가 그랬고, 그 어느날엔가의 그가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뒤에서 걷는다
물끄러미, 오래,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눈동자, 내게도 있을까”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 살짝 울컥했습니다. 내가 어딜 가든 안 보일 때까지 뒤에 서서 날 바라봐주시던 엄마. 꼬맹이 때부터, 장성한 다음에도, 늘 그렇게 변함없이 뒤에 서서 자식의 뒷모습을 보시는 그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를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면 “눈물 글썽이는, 허공이라는 눈”을 만나게 되네요. 이 코로나 시국에 부득부득 한국에 돌아온 이유는 사랑하는 엄마의 1주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엄마의 그런 눈길을 밥처럼 받아먹고 큰 저는, 누군가가 내게서 멀어질 때 주로 먼저 돌아서지 않고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으로 배웅하는 편입니다. 상대의 차가 출발해서 도로로 미끄러져 들어가 멀어지는 모습, 친구의 나비 같은 원피스가 지하철 계단 아래로 사라지는 모습, 다음을 기약하며 다정히 끌어안은 후배가 횡단보도를 건너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인파 속으로 묻혀 들어가는 모습. 특히 아이들이 어딘가를 갈 때면 그 작은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길을 보냅니다. 그렇게 눈길을 보내는 동안 상대가 한 번쯤 돌아보고 웃으면 마음속에 반짝, 환한 불이 켜지기도 하죠.
제 아이들은 아빠가 차로 출근할 때면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어 차가 차고에서 나와 창 앞을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아빠를 보냅니다. 제가 산책을 나갈 때도 건물을 나와 뒤를 돌아보면 변함없이 유리창에 동글동글 붙어있는 귀여운 얼굴들을 만납니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겠다고 지키고 서있는 마음. 물끄러미, 오래,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는 눈동자.
내 뒤에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들이 있고, 작고 소박하고 쓸쓸한 것들이 가만히 뒹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만 보고 살지 말고 뒤도 보며 살아야겠습니다.
이제 저는 또 사랑하는 이들을 뒤에 남기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떠납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들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