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시
2021. 4. 28.
김경미, ‘식사법’
시집, <쉬잇, 나의 세컨드는 (2006, 문학동네)> 중에서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끝까지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 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 것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의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 을
잘 넘길 것
삶이란 건 알고 보면 그냥 "식사와 소화의 연속"이라는 말을 한 친구가 있어요. 농담으로 한 거지만 비유적 표현으로는 이렇게 근사한 말이 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식과 지혜와 경험을 먹고, 기쁨이며 행복이며 고통이며 좌절을 마시고, 가끔은 소화불량을 앓으면서도 끝내는 조금씩 소화시켜 그것을 우리가 자랄 자양분으로 삼습니다. 때로는 독버섯 같은 경험을 먹고 삶을 마비시키는 독성에 쓰러지기도 하고, 도저히 삼키지 못할 고통을 가만히 토해내기도 하지요. 슬프게도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식중독으로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요. 그러니 결국 내 것으로 잘 소화시키는지의 여부가 '계속 살아간다는 것'일 겁니다.
시인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아무리 우리 인생이 보잘 것 없는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목이 타들어갈 것 같은 보드카로 마음속 어딘가에 독한 연료를 채우지 말고, 달콤한 꿀을 바른 사탕과자로 잠시 나른하게 눈을 가리지 말고, 독하게 매운 시뻘건 불닭 같은 걸로 제 몸이 상하도록 분노의 불을 지피지도 말고, 그저 야채의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하라고 합니다. 그저 내 마음을 맑고 순하게 만들 수 있도록, 그냥 담백한 삶의 자세를 이어갈 수 있도록.
또 우리 생에서 좌절은 규칙적인 것이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러니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라고 합니다. 힘들어도 곧 지나갈 테니 참으며 시간을 흘려 보내고, 행복한 날들에도 다음 번 좌절을 대비해 조금은 긴장하고. 이렇게 좌절을 규칙으로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생선처럼 미끈하게 삶의 급류 속을 헤엄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이 시에서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이에요.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단정히 (하고 싶어도 잘 안 되는 사자 갈기 같은 머리를 갖고 있습니다만) 묶으면서 한 벌의 수저를 떠올립니다. 오늘 하루도 겸허히 잘 쓰이는 소박한 도구가 되어야겠다고.
잘 익혀서, 한 톨도 흘리지 말고, 단맛이 없더라도 묵묵하게 끝까지 먹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떼어내 버리거나 뱉지 말고, 삶을 잘 씹어 넘기는 일.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씹혀도 순한 눈빛을 먹고, 좌절에도 미끈하게 빠져나와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것. 인생이라는 긴 식사를 이런 담백한 식사법으로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한 모금 식후 물처럼 꿀꺽, 또 한 번의 삶을 잘 넘길 수 있기를.
다만 반찬은 성실 말고도 요행이라든가 운이라든가 축복이라든가, 좀 다채로왔으면 좋겠고 가끔은 달콤하거나 시원한 디저트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실이라는 딱 한 가지 반찬으로만 먹는 삶이라는 건 좀 재미없잖아요. 야채의 유순한 눈빛을 닮은 삶이면 좋겠지만 늘 절밥을 먹고 싶지는 않은 게 우리 인간이니까요. 저의 오늘 점심은 그래서 라면입니다. 그래도 유순한 눈빛에 대한 존중의 마음으로 순라면을 먹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맛있는 식사법으로 오늘 하루의 삶을 꿀꺽, 잘 넘기시기를.
(오래 전에 작성해서 서랍에 넣어둔 글입니다. 그 사이에 어떤 다큐를 보고 분노와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는 일이 있어서 이제 라면은 오뚜기로 가려고 해요. 참깨라면과 굴진짬뽕이 있으니 저는 괜찮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