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시
2021. 2. 22.
유병록,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창비시선 450,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중에서 (2020)
우리
이번 봄에는 비장해지지 않기로 해요
처음도 아니잖아요
아무 다짐도 하지 말아요
서랍을 열면
거기 얼마나 많은 다짐이 들어 있겠어요
목표를 세우지 않기로 해요
앞날에 대해 침묵해요
작은 약속도 하지 말아요
겨울이 와도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돌아보지 않기로 해요
봄을 반성하지 않기로 해요
봄이에요
내가 그저 당신을 바라보는 봄
금방 흘러가고 말 봄
당신이 그저 나를 바라보는 봄
짧디짧은 봄
우리 그저 바라보기로 해요
그뿐이라면
이번 봄이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마음에 어떤 힘도 주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는 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일인지요.
아무 다짐도 목표도 약속도 욕망도 없이, 그저 사랑의 마음만 담아 상대를 바라보는 일.
어릴 적에는 마음에 힘을 잔뜩 주는 것이 젊음의 소명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마음에 힘을 주지 않으면, 나에게도 나를 둘러싼 세상에도 의미 있는 변화 같은 건 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다짐과 계획과 실천을 둘둘 말아 옷을 지어 입고 살았습니다. 그 옷이 나를 더 근사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믿으면서요.
그런데 그렇게 나이를 우적우적 먹던 어느 날, 앙리 마티스의 <삶의 기쁨(1905-6)>과 <춤(1910)>이란 그림을 만났습니다. (<춤>은 <삶의 기쁨> 가운데 등장하는 춤추는 사람들을 따로 떼어 그린 작품입니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어요. 나신이 가장 근사한 옷이구나.
칼릴 지브란이 우리가 입는 옷에 대해 쓴 시가 있습니다.
그대들의 옷은 그대들의 아름다움을 많이 가리지만 아름답지 못한 것을 숨겨 주지는 못하니,
그대들은 옷으로 숨기고 싶은 것들을 가려서 자유를 얻으려 하나
오히려 옷이 거추장스런 갑옷이 되고 사슬이 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옷을 덜 입고 맨살을 더 드러내어 햇볕과 바람을 만나야 하리니,
삶의 숨결은 햇살 안에 있고
삶의 손길은 바람 속에 있기 때문이다.
- 칼릴 지브란, <예언자> 중 '옷에 대하여'
(브런치 작가 morgen님께서 최근 독일에 오셨다가 주고 가신 시집입니다. 얼마나 좋은지, 저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선물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몸과 마음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을 때 우리는 그림에서처럼 저렇게 사랑스럽고 행복합니다. 마티스의 그림에는 칼릴 지브란의 말들이 그대로 보입니다. 맨살로 햇살을 받고 바람을 맞는 것이 <삶의 기쁨>이라는 것, 그렇게 맨살로 햇살과 바람 속에서 추는 <춤>이 저렇게 사랑스럽다는 것.
나이를 먹고 이 그림들을 보면서 그렇게 뭔가를 겹겹이 껴입기보다 한 꺼풀 벗어두는 게, 내려놓는 게 우리를 더 빛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물론 평생을 바나나 껍질처럼 알맹이 없이 미끄덩하게 누운 채 Let it be만 부르며 살 수는 없죠. 자신을 다그치고 마음에 다짐의 탑을 쌓는 일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살다 보니 그냥 내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간도 그만큼 중요하더라고요. 힘을 주는 순간만큼, 힘을 빼는 순간도.
그냥 놓아두고 폭 빠져 있는 것.
그게 참 멋진 일인데 대체로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전화기부터 더듬거리며 찾느라 그 풍경에 흠뻑 빠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특히 불꽃놀이가 그렇더군요. 아무리 찍어도 가슴이 콩닥거릴 만큼 화려한 저 색감과 형태가 아닌, 정말이지 초라하고 비루한 모습만 담기는데. 그래도 그걸 찍겠다고 전화기 렌즈를 통해 앙상한 불꽃놀이를 보고 있다가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전화기를 확 덮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렇게 생생하고 가슴 뛰는 불꽃놀이가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이런 바보.
사진 찍느라 마음 자르지 않고, 전화기 말고 직접 내 눈으로.
그렇게 보는 풍경이 원래 열 배쯤 스무 배쯤 아름답죠.
사진 프레임이라는 조그만 틀 말고 내 눈앞에 크게 펼쳐진 파노라마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저 내 눈에 담고 내 마음에 지그시 담아두는 것.
사는 일도 사랑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삶을 두고, 혹은 사랑을 두고, 너무 많은 다짐과 계획과 목표를 들이대다 보면 삶의 반짝이는 순간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고 그 한없이 좋아야 할 사랑이 부자연스럽고 갑갑한 옷을 입게 됩니다. 그냥 놓아두고 폭 빠져 있을 수 있는 찬란한 시간이, 다짐과 계획과 목표 속에서 바스러지고 맙니다. 그냥 흘러가고 말 봄, 짧디 짧은 봄. 비장함도 반성도 없이 그냥 사랑의 마음만 가지고 따뜻한 눈빛으로 서로 바라볼 수 있으면 그 봄은 정말 얼마나 좋을까요.
이 시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몬 베유라는 철학자가 생각납니다. 정말로 짧디 짧은 봄 같은 생을 살다 간 베유는 특히 관심과 수동성에 관해 깊이 생각한 철학자예요. 그녀는 모든 문제는 수동성의 결여에서 생겨난다고, 우리는 늘 너무 적극적이고 싶어한다고 말합니다. 서둘러 판단을 내리고 늘 뛰어가는 삶보다는 천천히 걸으며 지극한 관심을 보일 줄 아는 삶. 행위보다는 동의의 의미를 이해하는 그런 삶. 현대인의 속도와 야망에는 영 걸맞지 않은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철학자들이 보여주는 그 반대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놓치는 것들의 의미에 대해서요.
같이 필사 모임을 하는 김민정 님께서는 아이를 이 시의 봄처럼 키워야겠다고 하시더군요. 내 품 안에 있을 짧디 짧은 시간 동안, 사랑 듬뿍 담아서 지그시 바라볼 줄 아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요. 아무 다짐도 목표도 약속도 욕망도 없이, 그저 사랑의 마음만 담아 아이를 바라본다는 건 꽤 어려울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눈빛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봄이 의미하는 것이 내 작은 아이여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나 가족이어도, 불쑥 찾아온 사랑이어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저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이 그저 나를 바라보는 시간.
늦여름에 진입하는 지금, 이렇게 충만한 봄의 순간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