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시
2021. 7. 19.
복효근, ‘틈, 사이'
복효근 시집 <목련꽃 브라자(2005, 시작시인선 50)> 중에서
잘 빚어진 찻잔을 들여다본다
수없이 실금이 가 있다
마르면서 굳어지면서 스스로 제 살을 조금씩 벌려
그 사이에 뜨거운 불길을 불어넣었으리라
얽히고 설킨 그 틈 사이에 바람이 드나들고
비로소 찻잔은 그 숨결로 살아 있어
그 틈, 사이들이 실뿌리처럼 찻잔의 형상을 붙잡고 있는 게다
틈 사이가 고울수록 깨어져도 찻잔은 날을 세우지 않는다
생겨나면서 미리 제 몸에 새겨놓은 돌아갈 길,
그 보이지 않는 작은 틈, 사이가
찻물을 새지 않게 한단다
잘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 벽도
양생되면서 제 몸에 수 없는 실핏줄을 긋는다
그 미세한 틈, 사이가
차가운 눈바람과 비를 막아준다고 한다
진동과 충격을 견디는 힘이 거기서 나온단다
끊임없이 서로의 중심에 다가서지만
벌어진 틈, 사이 때문에 가슴 태우던 그대와 나
그 틈, 사이까지가 하나였음을 알겠구나
하나 되어 깊어진다는 것은
수많은 실금의 틈, 사이를 허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네 노여움의 불길과 내 슬픔의 눈물이 스며들 수 있게
서로의 속살에 실뿌리 깊숙이 내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이 알려주는 '틈, 사이'의 지혜와 미학에 깊이 공감하고 감동합니다.
“벌어진 틈 때문에 가슴 태우던 그대와 나, 그 틈까지가 하나였음을 알겠구나
하나 되어 깊어진다는 것은 수많은 실금의 틈, 사이를 허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부분이 특히 뭉클하네요. 네 번째 시로 만났던 칼릴 지브란도 부부 사이에 바람을, 바다를 두라고 했었죠. 천공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도록 그대들의 공존에 거리를 두라고요.
틈이 있어야 사람도 물건도 숨을 쉬겠지요. 수많은 틈으로 숨 쉬는 항아리에서 김치가 더 맛있게 익어가고, 사람도 빈틈이 있어야 그에게로 스며들 여지가 생기고요. 필사 모임에 계신 어떤 분도 "16년 전 그 가을에 제가 빈틈없이 촘촘한 사람이었다면 지금 남편을 만나는 그날의 우연은 없었을 거예요.(주정현)"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 사랑스러운 틈 덕분에 남편을 만나게 된 그분은 지금 사랑스러운 삼 남매의 엄마가 되어 숨 쉴 틈 없는 하루를 보내고 계십니다.
같은 모임에 계신 한 피아니스트께서는 다음과 같은 단상을 남겨주셨어요.
틈, 음악에서는 쉼표라는 공간과도 같은 듯합니다. 음과 음 사이까지 가득 채운 연주야말로 최고의 연주라는 찬사를 받지요. 들리는 소리와 들리지 않는 소리를 실핏줄로 엮어내는 그 노력이 떠올라 뭉클해지네요. (안미정)
그렇습니다. 틈이 없다면 음악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겠지요. 말도 그렇고요. 말이란 건 절대적으로 침묵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틈이나 사이 없이 꽉 들어찬 음이며 말들은, 음악도 말도 아닌 그 어떤 것이 되어 애초에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고 아마 우리를 미치게 할 겁니다.
우리가 보는 찻잔은 사실 수많은 틈들이 실뿌리처럼 찻잔의 형상을 붙잡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물건의 존재 양태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말. 자연에서 나온 재료를 자연의 방식으로 만든 것들이 그런 틈을 가질 수 있는 거겠죠. 플라스틱으로 만든 컵에 과연 그런 실뿌리 같은 틈이 있어 그 사이로 바람이 불고 그 숨결로 잔이 살아있을 수 있을까요.
틈 사이가 고울수록 찻잔이 깨어져도 날을 세우지 않는다는 사실도 참 의미가 깊습니다. 애초에 자기 몸을 벌려 무수한 틈을 내어 그 사이에 뜨거운 불길을 넣고 그 사이로 바람을 통하게 해 둔 관계는 설사 깨져도 날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 날을 세우며 깨졌던 관계들, 서로를 날카롭게 그으며 헤어졌던 관계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구절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으면서 역시 세상 이치의 끝판왕은 (저렴한 어휘 선택에 송구하오나 이런 저렴한 어휘들이 저의 틈입니다) 중용이 아닌가 생각했었거든요. 적절한 줄타기라는 것. 우리는 틈으로 인해 조화를 이루지만 또 그 틈이 우리 사이에 균열을 만듭니다. 틈이란 게 이렇게 서로 스며들 수 있는 통로가 되고 때로는 숨 쉴 구멍이 되고, 진동과 충격을 견디는 힘이 되고, 틈 사이로 피가 돌고 바람이 불어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지만 또 자칫 그 틈이 깊어지면 관계가 어그러지고 깨어지는 바로 그 시작점으로 작용하겠죠. 그러므로 틈이란 건 꼭 필요한 존재로서 너그럽게 받아들이면서도, 가끔은 그 틈이 돌이킬 수 없는 간격으로 벌어지지 않도록 가끔은 돌아보고 매만져주는 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인간이라는 단어 안에 '사이'라는 말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 인(人), 사이 간(間).
'틈, 사이, 관계'라는 투명한 바람이 우리 존재 안에 이미 들어있는 셈이죠.
그렇게 우리는 모두 틈을 품은 존재들입니다. 홀로는 살기 어려운 존재, 틈을 두고 함께 있음으로써 충만해지는 존재.
틈이 얼마나 고맙고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 되어 기쁘고 행복합니다. 시를 읽다 보니 틈이 너무 벌어져 깨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지혜가 더 필요한 것 같지만 지혜가 모자랄 땐 틈이 예쁘게 든, 잘 빚은 술잔을 적절히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필사한 다른 시를 하나 덧붙이고 갑니다.
A Drinking Song / William Butler Yeats
Wine comes in at the mouth
And love comes in at the eyes;
That’s all we shall know for truth
Before we grow old and die.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and I sigh.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네.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알게 될 진실은 그것뿐.
잔 들어 입에 가져가며
그대 보고 한숨짓네.
보면 한숨이 나올 만큼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가끔 잘 빚은 술잔에 술 한 잔 하면 어떨까요.
이상, 맛있는 음식이 별로 없지만 맥주가 맛있어서 맥주를 마시면 대체로 음식이 먹을만해지는 마법이 횡행하는 독일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댓글로 전해주시는 틈에 대한 이야기들이 너무 좋아서 여기에 모아두려고 합니다.
안미하님: 여름에 조그맣게 종종 매달려 익어가는 감들. 너무 촘촘히 달려있으면 나중에 서로를 밀어서 떨어뜨리는 만행(?)을 저지르더라고요. 틈과 사이가 많은 것을 살리는 것 같아요^^
캐리소님: 스스로의 몸을 깨뜨려 새끼를 낳는 생물들.
인생을 갈아 넣어 문화를 만들고 삶을 이어가는 인간의 일도 틈과 사이가 있어 이어질 수 있는 거겠죠?
적절한 거리는 서로를 살게 하는, 작금의 (코로나) 현상에도 적용 가능한 글이에요.
LII님: 실핏줄처럼 얽힌 맥주의 마법으로 맛없는 음식들 틈을 메우고 살고 계시군요 ㅋㅋㅋㅋ
틈이라기엔 너무 거대한 간극을 건너고 있는 듯한 시절이지만 이것도 장구한 역사의 한 '사이'에 지나지 않게 되겠죠? 그 덕분에 또 무언가 견고한 새로운 실체가 탄생할 수도..
윤영수님: 제 짝꿍도 모자부터 천천히 전신을 드러내며 제 눈에 들어왔고, 두 눈동자 사이의 커다란 틈(!)으로 인지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