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장

여덟 번째 시

by 이진민

2021. 4. 5.

함민복, ‘수목장'

함민복 동시집,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 (문학동네 동시집 68, 2019)> 중에서


[수목장]


할머니가 소나무 밑에 묻혀 소나무가 되었다


휜 허리는 곧게 펼쳐지고

흰 머리카락은 푸르러지고

할머니 냄새 대신 향긋한 냄새가 난다


책에서 보니까 인디언들은 살아서

제일 많이 따 먹은 과일나무 밑에 묻혀

그 나무의 거름이 된다고 하던데

할머니는 송편 찔 때 솔잎 많이 써

소나무 밑에 묻혔나


그런데 할머니

먼 곳이 보고 싶으면

키 더 크시면 되겠지만

늘 서있어 다리 아파 어쩌지


바람 많이 분 다음 날

할머니 보러 또 올게


잘 가라고 이제 손 그만 흔들어 줘도 되는데

새로 생긴 친구들에게도 벌써 내 자랑하셨나

할머니 주위 나무들도 손을 흔들어주네


아이 참, 할머니도…




지금 보니 식목일에 배달받은 시네요.

구구절절 다정하고 귀여워 미소가 지어지면서도 또 애틋하고 먹먹해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동시가 어쩌면 이렇게 인간의 오만가지 감정을 다 건드리나 싶습니다. 어려운 낱말들이 뾰족하게 박혀있고 알듯 말듯 안개 같은 비유가 자욱한 어른들을 위한 시보다, 이렇게 소박하고 순수한 동시가 때로는 세상을 더 울림 있게 담아내는 그릇이 되는군요.


필사를 시작하면서 좋은 시들을 많이 만났는데요.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이 분의 시집을 꼭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시인을 두 분 만났습니다. 문장들을 읽다 보면 나의 주파수를 정확히 건드려, 외계인의 교신을 받는 것 같은 순간이 있죠. 함민복 시인의 시들이 그랬고 박준 시인의 시들이 그랬습니다. (다른 시인들 작품의 감동이 덜했다는 말이 아니라 두 시인들의 언어가 저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다는 말입니다.)


“할머니가 소나무 밑에 묻혀 소나무가 되었다.”

첫 문장이 담백하게 마음에 쑥 들어옵니다. 휜 허리는 곧게 펴지고, 흰 머리는 푸르러지고, 할머니 냄새 대신 향긋한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예뻐지셨네요.


굽은 허리, 하얀 머리, 특유의 그 시간의 냄새.

할머니 하면 떠오르는 그 대표적인 이미지들이 이렇게 곧고 푸르고 향긋하게 변하는 모습에 첫 부분부터 괜히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그 대비가 슬프도록 강렬하기도 했고, 할머니가 곱게 다시 살아난 느낌이 들기도 했고, 죽었나 싶었던 고목에서 새싹이 돋아나듯 죽음에서 다시 시작이 생기는, 그런 ‘생의 순환’에서 오는 경이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해서요.


바람에 한들거리며 다른 나무들과 정겹게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에 ‘벌써 내 자랑하셨나’ 생각하는 이 손주는 분명 할머니 생전에 사랑을 듬뿍 받은 ‘우리 강아지’가 틀림없네요. 누구에게나 무턱대고 자랑하고 싶은 존재였던 그 손주는, 이제 나무가 된 할머니가 늘 서 계셔서 다리가 아플까 봐 걱정합니다. 이렇게 죽음이라는 건 둘 사이를 딱히 갈라놓지 못했습니다. 둘은 아직도 서로에게 다정하고, 둘 사이에는 따뜻한 바람이 솔솔 붑니다.

“Death ends a life, not a relationship.”

죽음은 한 생의 끝일뿐, 관계의 끝은 아니라는 것.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 나오는 구절인데요. 제가 참 좋아하는 문장이고,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분들께 서툰 위로 대신에 건네고 다니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동시 안의 두 사람은 그렇게 더 사랑스러운 관계로 오래도록 서로 마음을 나눌 것 같아 마음이 말랑말랑해집니다.


제게는 아빠의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없고(순둥순둥한 저를 엄청 예뻐하셨다는데, 제가 세 살 때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엄마의 엄마에 대한 기억만 있는데요. 작은 체구에 하늘빛이 살짝 도는 흰 한복을 입으시고 늘 비녀를 꽂아 쪽 찐 머리를 하고 계셨어요. 금빛 안경 뒤로 나를 보시던, 따뜻함 가득한 지혜로운 눈빛이 생각납니다. 휜 허리, 흰 머리, 할머니 냄새와 더불어 늘 살풋 맡아지던 향냄새. 저희 할머니는 늘 향을 피워 올리고 기도를 하셨으니 향나무가 되셨다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저에게 생을 주신 분들. 사진이 낡아서 할머님들 한복이 좀 더러워졌네요.


소나무 밑에 묻혀 소나무가 되고, 많이 따 먹은 과일나무 밑에 묻혀 그 나무가 되는 삶. 정말 좋지 않나요.

이 세상은 하나이며 결국 돌고 도는 건데, 썩지 않으려고 애쓰는 인간들이 각종 썩지 않는 제도며 물건들을 만들어 내면서 세상을 헝클어뜨리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돈이 그렇고, 플라스틱들이 그렇고요.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쓴 와나타베 이타루는 부패가 생명을 가능케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경제를 부패하게, 잘 썩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고민합니다. 인위적으로 동원한 물질들이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탄생시키는 것처럼, 인위적으로 동원한 돈은 부패하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경제의 악순환을 낳는다고 말합니다. 부패하지 않는 음식이 먹거리의 가격을 낮추고 일자리를 값싸게 만들며, 부패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는다고요.


그래서 그에게 있어 부패는 좋은 것입니다. 그는 열심히 일한 몸속으로 기분 좋게 배어드는 빵과 맥주와 와인 같은, 잘 발효되고 썩어서 기분 좋은 그런 경제를 만들고 싶다고 합니다. “매일 천연균을 접하며 일하다 보면 자연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기분 좋은 안도감이 가슴속에서 솟아오른다”고 쓴 부분을 보고 참 좋았습니다. 저도 자연과 다정한 관계를 맺고 살다가 이렇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이면 좋겠다고 늘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아마 우리 인생에서 가장 겁나는 일일 거예요. 연습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일. 하지만 그렇다고 또 천년만년 사는 게 좋을까 생각하면 그것도 아니죠. 불멸은 단연코 축복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존재와 살아가는 속도가 다른 일(예를 들면 반려동물과 인간 삶의 속도 차이 같은 것 말입니다)도 마음이 무너지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살면서 사랑하는 존재들을 끝없이 보내며 살아야 한다면 그건 축복이 아니라 형벌 아닐까요.


저는 적당히 살다가 나중에 라일락 밑에 묻히고 싶습니다. 공식대로라면 맥주의 원료인 홉을 재배하는 밭으로 들어가야겠지만 (쿨럭) 살아서는 술에 취하고 죽어서는 꽃향기에 취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죽어서 나무가 된다고 생각하면, 죽는 일이 딱히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은 느낌입니다.


뭉클하고 따뜻하고 편안한 시.
아직 할머님이 생존해 계신 행운아들이 계시다면, 오늘은 꼭 안부 인사 전하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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