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시
2021. 2. 2.
박준, ‘숲'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19, 2018)> 중에서
오늘은 지고 없는 찔레에 대해 쓰는 것보다 멀리 있는 그 숲에 대해 쓰는 편이 더 좋을 것입니다 고요 대신 말의 소란함으로 적막을 넓혀가고 있다는 그 숲 말입니다 우리가 오래전 나눈 말들은 버려지지 않고 지금도 그 숲의 깊은 곳으로 허정허정 걸어 들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쯤에는 그해 여름의 말들이 막 도착했을 것이고요 셋이 함께 장마를 보며 저는 비가 내리는 것이라 했고 그는 비가 날고 있는 것이라 했고 당신은 다만 슬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숲에 대해 쓸 것이므로 슬픔에 대해서는 쓰지 않을 것입니다 머지않아 겨울이 오면 그 숲에 ‘아침의 병듦이 낯설지 않다' ‘아이들은 손이 자주 베인다'라는 말도 도착할 것입니다 그 말들은 서로의 머리를 털어줄 것입니다 그러다 겨울의 답서처럼 다시 봄이 오고 ‘밥'이나 ‘우리'나 ‘엄마' 같은 몇 개의 다정한 말들이 숲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 먼 발길에 별과 몇 개의 바람이 섞여 들었을 것이나 여전히 그 숲에는 아무도 없으므로 아무도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나눈 그 많은 마음이며 말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말들이 도착해 서로 머리를 털어주는 공간이라니, 그렇게 우리의 말들이 버려지지 않고 모여있는 공간이라니, 그 숲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귀엽고 신기하면서도 슬프고, 그러면서도 또 따뜻하고 그립고요.
말에는 온기도 감정도 잔뜩 담겨 있었을 텐데, 그 말을 꺼낸 사람도, 그 말을 받은 사람도 없는 그저 소리뿐인 말들은, 즉 인간의 곁에서 울리지 않는 말들은 그렇게 소란해도 적막한가 봅니다. 그래서 시인은 비록 말이 가득 찬 숲이지만 적막하고, 그 숲에서는 아무도 외롭지 않을 거라고 하는군요. 말들은 그걸 내뱉은 사람을 오래전에 떠나왔고, 숲은 아무도 없는 곳, 즉 발화의 주체가 없는 공간이니까요.
고요와 적막을 구분하는 시인의 섬세한 감성이 좋았고, 겨울의 답서처럼 다시 봄이 온다는 표현이 좋았습니다. 매년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마다 생각날 것 같은, 봄바람 냄새가 나는 문장.
여기에 그려진 ‘말의 숲’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 조금 얼굴이 붉어지기도 합니다.
내가 뱉은 말을 다 모아두면 그 공간은 어떤 느낌일까요.
내 얼굴에 책임을 지듯이 그렇게 내 말에도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시집 이름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데 시 속에 함께 장마를 보는 순간이 나오네요. 같은 풍경을 보며 각각 '비가 내린다, 비가 날고 있다, 다만 슬프다'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함께 같은 비를 보고도 우리는 이렇게 다른 문장을 내뱉습니다. 비가 내린다고 담백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 곁에는 비가 날고 있다고 노래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고, 또 그 곁에는 다만 슬프다고 마음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문장’이란 건 같은 알맹이를 두고 그저 형식만이 다른 경우도 있고, 아예 알맹이 자체가 다른 경우가 있겠죠. 가끔은 같은 느낌을 다르게 자기만의 언어로, 또 가끔은 같은 것을 경험하고서도 전혀 다르게 자기만의 마음의 필터로. "비가 내린다, 비가 날고 있다, 다만 슬프다." 그것이 슬픔의 공감이었는지, 아니면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가사처럼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였는지는 아마 그들만 알겠지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시에 있는 것과 비슷한 말의 숲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어?"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말들을, 상대는 잘 털어서 담아두면서 거기에 별과 몇 개의 바람을 섞어두었던 그런 경험. 다들 있지 않으신가요? 뾰족한 말, 예쁜 말, 따뜻한 말, 둥근 말, 서리 낀 말.
저는 “네가 그때 그렇게 나서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는 말에 기억도 잘 안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제가 새삼 좋아졌던 기억이 있고, “그때 네가 ‘힘들지?’ 한 마디 건네준 게 늘 그렇게 고마웠다”는 말에 마음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만큼의 힘을 싣지 않은 말에, 상대가 온 힘으로 일어섰다는 사실에 되려 미안해져서요. 솔직하지 못한 말, 못난 말들도 참 많이 했는데, 그냥 툭툭 털어서 숲에다 밀어 넣어주었던 상대들이 새삼 고마워지네요. 지금도 참 많은 말들을 세상에 내뱉고 있는데 부디 내 말들이 상대를 찔러 “다만 슬프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마음을 또박또박 전하기가 어려워서 제가 농담인 듯 진심을 담아 건넸던 말들도, 버려지지 않고 허정허정 걸어 들어가 몇 년 뒤에라도 상대의 마음에 도달해 그의 마음을 털어주고 어루만져 줄 날이 오기를.
이 시는 필사 모임에 계셨던 분들의 단상들이 모여서 또 하나의 숲이 되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허락을 받고, 몇몇 분들이 나눠주신 말들을 그대로 옮겨 담아둡니다.
아이랑 밤에 잠들기 전 침대에서 나누는 대화가 그냥 허공으로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어느 날 문득 너무 그리워질 것 같아서, 녹음기를 켜 두고 잠든 날이 있었어요. 생각보다 그 그리움의 날은 빨리 오더군요. 우리의 대화가 어느 숲으로 허정허정 들어가 그곳에 머물러있다면, 어느새 11살이 되어버린 큰 딸의 세 살 적 목소리는 마치 참새 소리 같을 거예요. 엄마, 라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그 목소리가 그리워지다가 문득 내가 어린 시절 엄마를 부르던 목소리도 함께 머물러있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다정한 말들이 도착해 있는 그 숲을 소중한 사람이랑 함께 걷고 싶어요. (주정현)
스스로가 입으로 뱉었던 말보다 귀로 들은 타인의 말들을 더 오래, 더 잘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말들이 머무는 숲이 되어주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같은 일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하기도, 그때 한 말들 중 각기 다른 단편을 마음에 묻기도 하죠. 흘러가듯 주고받은 말들 중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유난히 선연하게 남는 기억이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좀 슬픈 기억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더 많은 따뜻한 순간들 덕분에 지난 시간들은 아름다운 순간만 기억에 남는가 봅니다. (안선희)
먼발치에서 2020년이라는 숲을 생각해 봅니다. 아마 선인장처럼 따가운 말들이 수없이 소란스럽게 하고 있겠네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슬프고 외롭기도 합니다. 하지만 퍼붓는 비에 힘듦을 씻겨보내기도 했고 혹독한 겨울엔 서로의 머리를 털어 마침내 따스한 봄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2021년 새해의 숲에서는 꽃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말만 가득하기를, 부드러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불처럼 느끼게 해 줄 수 있기를... (김민정)
나의 머리와 마음에는 우리가 나눈 말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나에게 있지만 그 숲은 내 것이기도 하고 내 것이 아니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숲은 나를 기쁘게 하기도 하고 슬프게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나는 숲 속을 거닐기도 하고 그 숲의 말의 열매를 꺼내 먹으면서 지금의 나로 자라났습니다. (김경진)
박준 시인에게 '당신'은 누구인가, 물었더니 '제가 그리운 사람'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리운 나 자신,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수신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인 시인. 그래서 독자들은 시인에게 있어서 말의 숲이 되어 주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의 시시한 글들을 받아, 숲이 되어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