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시
2021. 4. 2.
김경인, ‘여름의 할일'
김경인 시집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문학동네, 2020)> 중에서
올여름은 내내 꿈꾸는 일
잎 넓은 나무엔 벗어놓은 허물들
매미 하나 매미 둘 매미 셋
남겨진 생각처럼 매달린
가볍고 투명하고 한껏 어두운 것
네가 다 빠져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생겨나는 마음과 같은
올여름의 할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느린 속도로 열리는 울음 한 송이
둥글고 오목한 돌의 표정을 한 천사가
뒹굴다 발에 채고
이제 빛을 거두어
땅 아래로 하나둘 걸어들어가니
그늘은 둘이 울기 좋은 곳
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
올여름은 분노를 두꺼운 옷처럼 껴입을 것
한 용접공이 일생을 바친 세 개의 불꽃
하나는 지상의 어둠을 모아 가동되는 제철소
담금질한 강철을 탕탕 잇대 만든 길에,
다음은 무거운 장식풍의 모자를 쓴 낱말들
무너지려는 몸통을 꼿꼿이 세운 날카로운 온기의 뼈대에,
또하나는 허공이라는 투명한 벽을 깨며
죽음을 향해 날아오르는 낡은 구두 한 켤레 속에,
그가 준 불꽃을 식은 돌의 심장에 옮겨 지피는
여름, 꿈이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그러니까 올여름은 꿈꾸기 퍽 좋은 계절
너무 일찍 날아간 새의
텅 빈 새장을 들여다보듯
우리는 여기에 남아
무릎에 묻은 피를 털며
안녕, 안녕,
은쟁반에 놓인 무심한 버터 한 조각처럼
삶이여, 너는 녹아 부드럽게 사라져라
넓은 이파리들이 환해진 잠귀를 도로 연다
올여름엔 다시 깨지 않으리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저번에는 박준 시인의 시집 제목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한참 들여다보았는데요. 이 시가 들어앉은 집 제목도 한참 마음속에서 굴려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 앞에서 일부러 아닌 척하는 요망하고 잔망스러운 감성인가 싶었지만, 시를 읽다 보니 시라는 것 자체가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쓰는 문학 장르구나 싶습니다. ‘시적 허용’을 아름답게 정의한다면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가 되지 않을까요. ‘그 사람이 천천히 눈물을 흘렸다’가 아닌, ‘느린 속도로 열리는 울음 한 송이’를 만나게 되는 세계. 그렇게 울음 한 송이가 느린 속도로 열리고, 우리 삶이 은쟁반에 놓인 무심한 버터 한 조각처럼 녹아 부드럽게 사라지는 세계.
작년에 나온 시집인데 왜인지 87년의 뜨겁던 여름이 생각나는 시였어요. 비록 저는 그때 아무것도 모르고 올림픽이나 기대하던 꼬맹이였지만, 세 개의 불꽃이라는 이미지가 어쩐지 그 뜨겁던 여름을 온몸으로 꿈꾸고 울고 분노하며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읽혔습니다. 지상의 어둠을 모아 담금질한 강철을 탕탕 잇대 만든 길에, 무거운 장식풍의 모자를 쓴 낱말들, 그리고 허공이라는 투명한 벽을 깨며 죽음을 향해 날아오르는 낡은 구두 한 켤레.
시인은 올여름엔 분노를 두꺼운 옷처럼 껴입고, 깨지 말고 내내 꿈꾸며,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으라 말합니다. 그늘은 둘이 울기 좋은 곳, 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말하면서요.
사실 시인이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적은 말들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직관적으로 확 와닿는 시들도 있지만, 시를 받아 들면 대체로 수수께끼를 푸는 어린아이 같은 심정이 되곤 해요. 일부러 틀리게 적은 부분을 이해해 보라는 수수께끼.
하지만 나태주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더군요.
너무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마시게
굳이 이해하려 하지 마시게
그것은 상징일 수도 있고
던져진 느낌일 수도 있고
느낌 그 자체, 분위기일 수도 있네
느낌 너머의 느낌의 그림자를
느끼면 되는 일일세
그림을 보듯 하고
음악을 듣듯 하시게
속속들이 알려고 하지 말고
그냥 건너다보시게 훔쳐가시게.
나태주 시인의 조언 따라 제가 그냥 느끼고 훔쳐 온 부분. 아래의 두 부분인데요.
느린 속도로 열리는 울음 한 송이, 올여름의 할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이 부분이 제 마음에 빠른 속도로 맺히는 꽃 한 송이가 되었습니다.
소설가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으면서, 이야기 속에 되풀이되는 화두는 '친절함'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느새부터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117)
마흔 몇 번 옴을 잡으며 살았으면 세상에 베풀 친절은 다 베푼 거라고도 했다. (216)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265)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은영이라든가 옴잡이 혜민, 인용한 마지막 대사를 말하는 인표 같은 인물들은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지독하게 폭력적인 세계와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가끔은 피할 수 없이 다치는 일이란 걸(185)" 깨달으면서도 세상에 보상 없이 친절함을 베풀고, 모르는 사람의 그늘과 꾸준히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승리에 필사적인 투사가 되기는 어려워도, 지더라도 괜찮은 친절한 사람이 되는 건 할 수 있을 거야,’ 하고 제 마음을 다지게 해 줬던 소설입니다. 그렇게 여름에만이라도,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이라고 적어둔다면요.
실은 최근에 아는 사람의 그늘을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처 울고 돌아다니는 정치철학자 김만권 씨가,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열어보는 글이라며 그날도 왠지 울었을 것 같은 폰트(이를테면 휴먼질질체)로 링크를 하나 보내주었는데요. 가난에 관한 글이었는데 보면서 마음이 약간 액체화되었다가, 마지막에 글쓴이의 이름을 보고 가슴이 쿵 내려앉아서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는 후배의 글이었어요. 시간이 겹치지 않아서 패밀리처럼 지낼 기회는 없었지만, 시간차를 두고 같은 공부를 했고 지금도 근사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뭐랄까,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흰 아기곰의 느낌이라서 그렇게 힘든 시절을 겪었는 줄 전혀 몰랐습니다. 왠지 모르게 저 아래 어딘가에서 낯빛이 살짝 좋지 않게 느껴지는 건 어제 마신 술이 덜 깨서 그런 걸 거라고 (미, 미안) 단순히 생각했었죠.
아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게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것보다 더 조심스럽고 더 다양한 감정이 솟아오르는 일이란 걸 느꼈습니다. 지나간 그늘을 발판 삼아 햇살 가득한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생겼고, 그래서 "그늘은 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이라는, 시를 읽을 땐 알 수 없던 시구가 일순간 스르르 와닿기도 했습니다. 지혜로운 시인이 적어둔 역설이 이해되는 경험이었어요. (후배의 그 글은 너무 좋은 글이라, 말미에 링크를 걸어두겠습니다.)
대권주자 경선을 놓고 안팎으로 시끌시끌합니다. 우리가 정치인에게 바라는 것도 기본적으로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이 아닐까 해요. 잘 드러나지 않는 그늘을 읽고, 시에서처럼 같이 울어주고, 함께 꿈꾸는 것. 오늘 심은 씨앗이 피어나 올여름은, 내년 여름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로 조용히 바빠지기를 바라봅니다.
덧 1.
이 시의 구절이 다가올 여름을 맞아 서울 광화문 글판에 올라와 있다죠. 지나다 만나는 분들 계시다면 반갑게 눈에 담아 주시길.
글판의 그림은 누군가를 (그 누구도 될 수 있는 사람을, 아마도 모르는 사람을) 안아주는 모습이네요.
동아리 친구가 기타를 잡으면서 누군가를 안는 느낌이라서 좋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뒤로 저는 가끔 기타를 잡을 때 그 말을 떠올리며 기타를 꼭 안아보곤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만나면 반갑다고 안아대는 외국에서 생활하게 되었죠. 사람이 사람을 꼭 안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사인지, 긴 이야기 뒤에 나누는 포옹은 얼마나 따뜻한 언어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룸메이트의 남자친구가 꼭 안겠다고 팔 벌리고 다가올 때 진심으로 도망칠 뻔) 곧 가장 좋아하는 인사법이 되었고요.
김소연 시인은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상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손에서는 얼굴에서만큼 그 사람이 보이거든요. 모든 손들이 얼마나 부지런히 살고 있나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지지 않나요. 손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코로나 19로 한동안 강하게 금지되었지만 우리는 말로도, 마음으로도 상대를 어루만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올여름에는 여름 한낮처럼 뜨거운 마음과 소나기처럼 깨끗한 손으로, 손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이 종종 허락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 2.
본문에 등장했던, 제가 최근에 알게 된 '아는 사람의 그늘'입니다. 정말 좋은 글이고, '여름의 할일'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읽어 주시길.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132121&memberNo=4836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