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다섯 번째 시

by 이진민

2021. 2. 15.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89)> 중에서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첫 시 필사 모임 때 가장 처음으로 내가 고른 시.

각자 나누고 싶은 시 두 편씩을 건네면 운영자 분께서 취합해서 날마다 시 한 편을 배달해 주시는 시스템인데, 내게 있어 쓰다듬고 싶은 시라면 당연히 이 시가 제일 먼저 쪼르륵 달려와 내 앞에 선다. 괜찮냐는 얼굴로.


대학시절 노래패 활동을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도 나왔던 늘푸른소리라는 동아리인데 실재하는 노래패다. 나는 노래를 더럽게 못 부르는데,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하던 친구가 여기에 가입하면서 내 이름까지 같이 칠판에 적어놓은 죄로 얼떨결에 들어갔다. 그 친구는 1년 정도 활동을 하고 그만두었지만 그가 밀어 넣은 나는 남았고, 동아리 활동은 내 대학 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드라마 안에서는 율동하는 노래패 컨셉으로 나왔지만 대체로 움직임 없이 뻣뻣하게 서서 부른다. 율동하는 동아리였으면 애초에 내가 들어갈 일이 없었을 것…)


2학년으로 올라가던 겨울의 내 생일날. 그 친구가 기형도 시인의 산문집을 선물로 주면서 이 사람을 과 선배로 둬서 부럽다고 했었다. 늘푸른소리는 사회과학대학 노래패라서 정외과, 행정학과, 신방과가 모인 동아리였고 나는 정외과, 그 친구는 신방과였다. 과에 그리 정을 못 붙이던 나에게는 친구의 그 말이 꼭 자석 같았다. 지금도 출신학교 출신학과가 자랑스러운 건 기형도가 팔 할이다. (왜 정을 못 붙였냐고 묻는다면, 내가 기대했던 걸 배우는 학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외과 안에서 조금 외딴섬 같은 정치철학을 택했다. 물론 정외과 잘못은 아니고 거기에서 뭘 배우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어리고 무지했던 내 탓이다. 정치철학을 전공하면서 꽤 만족했고 지금은 정외과여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좋아한다. 모든 영역에 슬그머니 발을 걸치고 있는 자유로운 학문적 특성도 좋고,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선물해 주는 보물상자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내게 가장 좋아하는 과 선배를 만들어 주었던 그 친구는, 요절한 시인보다도 더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함께 교정을 걸을 때부터 그 아이는 내가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종종 했다. “콘크리트 바닥을 걸으면 허리가 아프지 않아? 이렇게 물렁물렁한 흙바닥을 걸으면 괜찮은데.” 콘크리트고 흙바닥이고, 그때는 일단 허리라는 부위가 존재하지 않았던 나는 당최 그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 이리저리 길을 바꿔 걸어보면서 난해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밤에, 아마도 봄밤이었던 것 같다. 그 친구의 언니한테서 삐삐로 음성 녹음 연락을 받았다. 동생이 하늘나라로 갔다고, 그동안 네가 그 아이 곁에 있어줘서 참 고마웠다고. 투병중인 건 알았지만 친구가 그렇게 될 거라고는 진짜 털끝만큼도 생각 못했던 나는 얼이 빠져서 공중전화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 내 뒤에 사람이 얼마나 줄을 서있는지 깨닫지도 못할 만큼 엉엉 울었는데, 아무도 나에게 나오라고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지금의 나는 그 친구가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살고 있다. 이 나이가 처음이라 당황스러울 때도 종종 있다. 그럴 때면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데, 그러면서 함께 나이 들지 못한 그 친구도 생각한다. 별일 없이 살아서 지금껏 마음을 나누며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곱고 날카롭고 깊고 담백하던 친구. 꿰뚫어 보는 듯한 조용한 눈으로 날 쳐다보면서 특유의 그 살짝 투정 부리는 듯한 말투로 조곤조곤 말을 건넸을 친구. 그 아이가 자기의 수줍은 웃음을 닮은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었다면 나는 그 아이를 수줍은 마음으로 사랑했을 것이다. 엄마가 된 그 친구를 보는 일은 그냥 참 좋았을 것이다.


가끔 그 아이를 아는 신방과 친구를 만나 한 잔이라도 하게 되면 나는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마냥 운다. 병석에 누웠을 때 그 친구와 꼬박꼬박 편지를 나눴는데, 그 아이가 이 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앞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는데, 이 시가 너무 공감이 간다고. 그때는 미친 소리 말라고 꾸짖기만 했는데, 보내고 나서는 가만히 쓰다듬으며 들여다보는 시다.


오늘도 많이 그립다.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그렇게 지칠 줄 모르고 공중을 머뭇거리다, 친구를 만나서 서로의 질투를 꺼내놓고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보고싶다.



새벽이라 스탠드 불빛이 노랗습니다. 절반 이상 뚝 자르긴 했지만 그래도 개인적인 메세지를 공개한 걸 알면 그 친구한테 혼날 것 같습니다. 글씨를 보니 또 미칠 것 같네요.




덧.


기형도 시인의 시 중에는 좋아하는 시가 참 많은데, 딱 하나만 덧붙이고 갑니다. 제가 엄청 좋아하는 과 동기는 좋아하는 시를 통째로 외워서 술자리에서 가끔 뱉곤 하는데요. 그 녀석이 이 시의 첫 부분을 푸념처럼 읊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떼창이라도 하듯 같이 외우며 우르르 술잔을 들던, 그 어느 날의 기형도 모먼트가 생각나는 시입니다.


[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딱히 덧붙일 것도 없이 늘 마음을 휘젓는 시.

이십 대 때는 마음을 후벼 파는 시라고 생각했고

삼십 대 때는 마음이 먹먹해지는 시라고 생각했고

사십 대인 지금에는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라는 행을 손끝으로 만져봅니다.


옮겨 적다 보니 ‘빈 집’은 이제 그만 좋아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어야 할 시 같아서요. :)



+

아니,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어도 좋아할 수는 있는 것 아닙니까.

시에 대한 애정 전선 이상 무.

(6월 12일에 작성했던 글을 6월 29일에 퇴고하면서 덧붙이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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