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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Sep 14. 2021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작업실이 있었더라면

스토리 스튜디오를 소개합니다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던 8월의 마지막 날.

그동안 온라인 세계에서만 만나오던 C-program 해외특파원들 중 일부가 혜화동 모처에서 접선하기로 한 날입니다. 타지에서 각자 아이들을 데리고 고군분투하면서 마르지 않는 영감과 연대의 샘이 되어주는, 정말 보고 싶었던 분들. 비가 쏟아져서 수영복을 입고 나가야 할 것 같은 날씨에도 마음이 뽀송뽀송하고 헤실헤실 웃음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나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도착한 곳은 오랜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담쟁이 옷을 입고 혜화역 2번 출구 앞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붉은색 벽돌 건물. 구 샘터 사옥으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은 곳이죠. 이제는 공공일호라는 이름을 가진 이 건물 3층에는 12세에서 19세 사이의 친구들이 마음껏 탐색하고 창작하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 스토리 스튜디오, 그리고 그들이 작가가 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주는 스토리 라이브러리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원래 어른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인데, 특별히 초대를 받아 둘러볼 수 있었던 만큼 이곳을 정말 최선을 다해 잘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스토리 스튜디오를, 다음 글에서는 스토리 라이브러리를 차례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바로 이 건물! (스스의 민매니저님께서 올려주신 사진입니다.)

저는 2020년 9월에 스토리 스튜디오를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요. 그때는 오픈한 지 두어 달 남짓 된 따끈한 공간이었어요. (지금은 스토리 라이브러리가 새로 오픈한 지 두어달 쯤 되었습니다. 왠지 저는 오픈한 지 두 달째에 자꾸 가게 되는군요.) 2년 새 이 공간도 많이 바뀌어 있더군요. 더 활기차고, 더 유연하고, 더 근사하게 엉망이고, 에너지며 작업물들이 더 꽉 들어찬 공간으로요. 저는 이 보석 같은 작업실들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에 공간에 대한 분석 같은 건 내려두고 그저 이 공간이 얼마나 귀하고 근사하고 매력적인지, 그냥 침이 마르게 칭찬할 예정입니다. 따라오시죠.


# 스토리 스튜디오


먼저 작업실인 스토리 스튜디오(이하 스스)입니다.

우선 잠깐 둘러보세요. 아이들이 얼마나 여기에서 즐겁게 뭔가를 만들어 놨는지.

올림픽의 영향으로 아이들이 직접 만든 탁구대며 농구대 같은 것이 보이는군요. 저는 저 <내 동생 머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이곳이 뭘 하는 곳인지 느껴지시나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어 볼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한 작업실이에요.

아래의 모든 재료며 도구들을 마음껏 이용하면서 탐색해 보고,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어 보고, 또 작업물에 대해 서로 의견도 나눌 수 있는 그런 곳.  

입장 조건은 단 하나, 12세에서 19세 사이일 것. (네, 무료입니다. 으흐흐.)

종이며, 나무판이며, 펜이며, 물감류며, 스탬프, 그리고 영감을 줄 수 있는 각종 책들까지 그냥 뭐 다 있어요 다.

1년밖에 안 된 작업대가 닳고 흠집이 나고 아주 너덜너덜 난리가 나 있는 걸 보니 왠지 흐뭇했습니다.

아이들은 특히 톱으로 나무를 썰어보는 걸 엄청 좋아한다는군요. 그럴 기회가 흔치 않으니까요.

1년 전의 나름 깔끔했던 작업대(좌)는 곧 이렇게 난리가 나고 맙니다(우). 흐뭇하죠?  

지금은 특별히 ‘도구전’을 하고 있기도 한데요.

아이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재료들을 가지고 자기만의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코너예요.

고무줄과 종이컵으로 개스크(ㅋㅋㅋ)를 만든 친구가 눈에 띄네요.

무엇이든 만들어 볼 자유가 주어졌지만 뭘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는 친구들을 위해서 아래 사진처럼 활쏘기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어요.

자기가 활로 쏘아 맞힌 곳에 있는 주제어 카드 뒷면에는 이런저런 문장이며 질문들이 들어있거든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을 시작할 수 있게 점을 하나 찍어주는 거죠.

조용한 격려가 돋보이는 곳.

뉴욕 특파원인 지수님의 아름다운 손 등장

작년에 왔었을 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점이 많았지만 유독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 세 가지 정도 눈에 띄었는데요.


1. 첫째, 존(zone) 구분은 따로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역시 아이들이란, 그리고 창작자들이란 경계를 허무는 존재들이죠 :-)


그냥 자유롭게 한 번 둘러보시겠어요.

마음껏 뚝딱뚝딱 재료를 꺼내 만들어 볼 수 있는 곳도 있고, 담쟁이가 예쁜 창가에 앉아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빈백에 파묻혀 재미있는 책이며 만화를 볼 수도 있고, 좋아하는 영화를 볼 수도 있고.  

애초에 이 공간은 수영장 컨셉으로, 튜브를 타고 다니듯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리저리 흐르며 탐색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해요.

가구 높이도 모두 창 높이에 맞춰서, 건물 자체에 예쁘게 드리운 담쟁이와 대화할 수 있게 만드셨다고 합니다.

요 동글이들이 튜브 컨셉 (2020년 사진)

2. 두 번째로 느껴진 건 아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늘어났다는 점.

아이들은 스스로 만든 걸 갖고 친구들과 interaction 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해요.  

내가 만든 걸 친구들이 작동시켜 보기를 원하고, 댓글을 달아 달라, 투표를 해달라 등등 창작물들을 통해 서로 만나길 원한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들은 어느 12살짜리 친구가 제안한 컨테스트인데요. 바로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빙봉 컨테스트.

빙봉에게 옷을 입히는 컨테스트를 통해 친구들이 아이패드 드로잉을 해볼 수 있게 만든 컨테스트랍니다.

많은 친구들이 즐겁게 참여하고 있고, 1등부터 3등까지 뽑아서 시상도 한다고 해요. :-)

짱구 빙봉, 미니언 빙봉, 방호복을 입은 빙봉, 찰리브라운 빙봉, 엘사 빙봉

3. 세 번째로 달라진 점은 전시공간이 후욱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작년 사진에서는 책을 놓아두었던 공간이, 올해 가보니 아이들의 작업물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책보다는 다른 친구들의 작업물에서 영감을 얻는 친구들이 많아서, 아이들이 만든 것들 중에서 비슷한 것들을 모아서 스스의 매니저님들이 저렇게 큐레이션을 해 준다고 합니다.

참고로 작업실인 스토리 스튜디오에 상주하는 어른은 [매니저], 청소년 작가들의 공간인 스토리 라이브러리에 상주하는 어른은 [편집자]로 부른다고 합니다. 크으. 네이밍에서부터 벌써,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셨는지 그 다정함의 깊이가 보이지 않나요.  

왼쪽 사진은 작년, 우측은 올해. 책을 놓아두던 공간이 전시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스스에서는 전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요. 창작한 친구는 자부심을 느끼고, 다른 친구들은 영감을 얻고. 그래서 아이들이 만든 작업물들을 근사하게 찍을 수 있는, 촬영용 포토박스도 마련해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찍은 사진들은 최근에 @objet_storystudio 라는 인스타 계정을 하나 만들어서 차례로 올려주고 있다고 해요.

내가 스스에서 만든 창작물이 이렇게 근사한 대접을 받으며 온오프에서 예술작품처럼 전시되는 공간들. 참 좋죠? (자꾸 좋음을 강요 중입니다.)

아래는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전시하는 책들입니다. 뭔가 써보고 싶게 만드는 작은 책들이 자유롭게 공급되고, 아이들은 그 안에 자기의 얘기들을 담아낸다고요.

<궁금하면 봐라>라는 제목 너무 멋지고

사실 12세에서 19세의 나이라는 건 우리나라에서 딱히 갈 곳이 없는 나이입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놀이터든 키즈카페든 놀러 갈 곳도 많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며 워크샵 같은 것도 많고, 어른들도 이 나이대의 아이들에게는 즐겁게 놀 수 있도록 배려를 많이 해 주죠. 무엇이든 많이 그리고 쓰고 짓고 만들라고 격려도 많이 해 주고요.


하지만 12-19세의 아이들은 딱히 갈 곳도 마땅치 않고, 어른들은 저 나이대의 아이들에게서 붓이며 가위며 종이들을 빼앗고 대신 참고서와 문제집을 쥐여주곤 합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아주 어렸을 땐 뚝딱뚝딱 동화도 쓰고 뭘 만드는 것도 참 좋아하고 그랬는데, 중학교에 들어가고 저 나이대를 지나면서 에너지를 빼앗기고 스스로 굉장히 납작해졌다는 생각을 해요.  

십 대의 나에게도 마음껏 뭔가 만들 수 있는 공간, 호기심을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탐색할 공간, 친구들이 만든 것들을 보면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이 공간은 입장 가능 나이를 훨씬 뛰어넘은 제게도 너무나 부러운 공간입니다.


어떠셨어요.

이 공간이 궁금하거나, 주변의 반짝이는 누군가에게 소개해 주고 싶으시다면 [스토리 스튜디오 혜화랩]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인스타그램 @hello_storystudio 를 둘러보셔도 좋고요. 세종에도 전주에도 수원에도 이런 스스의 컨텐츠가 확산된, 비슷한 공간이 생겼다고 해요. 보다 많은 십 대들이 이런 마법 같은 공간의 혜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스토리 스튜디오 방문 예약하기 클릭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12세에서 19세 사이의 청소년들만 입장 가능한 공간입니다.

어른들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하고, 또래들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방침이에요.


그럼 다음 글에서는 아이들이 작가가 되는 공간, 스토리 라이브러리를 소개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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