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라이브러리 방문기와 흑역사 대방출 에세이
이 도서관의 최대 과제는 이용하는 사람들이 즐겁게 책을 고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도서관을 운영하는 측 논리로 플랜을 짜게 되면 아무래도 관리하기 쉬운 것을 우선하여 서가를 배치하게 됩니다. 게다가 도서분류법을 따르면 수장되어 있는 책들이 무기질처럼 보이게 되죠. 이 도서관은 책을 찾는 곳뿐 아니라, 별생각 없이 와서 서가와 서가 사이를 걸어 다니기만 해도 즐거운 장소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장서가 햇빛에 변색되는 문제도 있지만, 역시 도서관은 다소 어두운 편이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않을까 합니다. 서가에는 미술관에서 사용하는 조명을 준비하고, 열람용 테이블에는 독서등이 있기 때문에 책 읽는 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일부는 쇼케이스처럼 만들어, 특별 기획을 할 때마다 배열을 바꾸는 거죠. 미술관이나 박물관, 학예원처럼 개가식 서가에 놓을 책을 전시품으로 생각해서,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고 어떻게 배열할 것인지 도서관 사서가 결정하는 겁니다. 망라해 모으는 것은 다른 도서관의 역할이고 이 도서관의 역할은 책과 만나기 위한 장소로 만드는 겁니다.
도서관에서 작가가 출연한 영상을 홀에서 상영해도 좋고, 영화화된 원작도 얼마든지 있겠죠. 책 전체에서 어떤 테마를 발굴하는 것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 종래의 도서관은 책 선택을 이용자에게 맡기는 수동적 시스템이었습니다. 책을 빌리러 오는 이용자에게는 찾는 책이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니까요. 국회도서관쯤 되면 국가의 지적, 문화적 재산을 모두 소장하는 것이 최대의 역할이지만 이렇게 방대하게 책이 간행되고 있는 시대에 19세기의 도서관 같은 콘셉트로 하다 보면 사장되는 책이 늘어갈 뿐입니다. 이용자들이 이거다, 할 만한 새로운 제안이 필요합니다.
책 대출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미리 정해져 있습니다. 이 도서관은 파묻혀 있는 책들과 만나기 위한 장소입니다. 여기에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해서 공공 도서관에서 빌려도 되고, 헌책방에서 사도 되죠. 열람용 의자와 테이블을 편하게 만들면, 일부러 도서관에 다니면서 책을 끝까지 읽어보는 즐거움도 생기죠. 이 도서관은 책 대출 서비스 기관이 아니라, 책과 기적처럼 만나기도 하고 독서를 위해 정리된 환경에서 질 높은 책 읽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장소로 만들고 싶습니다.
"소설을 잘 쓰고 싶으면 이런 책을 사서 볼 게 아니라 좋은 작품을 많이 읽으렴."
한 새로운 세계의 창조 앞에는 언제나 언어와 이야기가 있어왔다. 그러니 살아 있는 자의 심장에서 나온 살아 있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살아 있게 하는 데 필수적이다. 한 사람의 좋은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좋은 이야기는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부드럽게' 각인되고 남아서 우리의 자아를 바꾼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드러움 중 가장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것은 인간의 변화다.
우리 존재는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만큼이나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고 무엇을 상상하느냐에도 달려 있다.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