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현실의 중간지대: 12-19세 청소년들을 위한 이야기 작업실
이야기를 상상하기만 하면 그 가능성을 실험해볼 수 있는 10대 청소년 공간이 서울 한복판, 혜화에 있다. (구) 샘터 사옥 3층에 자리 잡은 스토리 스튜디오(이하 스스)가 바로 그곳이다. 스스는 입덕 하는 10대 청소년들이 이야기 기반의 창작활동을 마음껏 안전하게 시도할 수 있도록 특별히 고안되어 씨프로그램*의 투자로 탄생한 작업실이다.
*씨프로그램은 2014년에 창업자들이 모은 기금으로 벤처 필란트로피라는 낯선 방식으로 설립된 회사다. 재무적인 성과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까지 꼼꼼히 보는 펀드로서 Play Fund와 Learning Fund로 구성되어 있다. Play Fund에서는 탐험하고(Explore), 상상하고 (Imagine), 만들어내는 (창작하는, Create) 세 개의 경험을 이끌어내기 위해 아이들의 호기심을 지키는 인프라스트럭처를 만들고 확산하는데 투자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놀이의 공간, 기회 그리고 대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데이터, 리서치에 투자하고 있다.
<SEE SAW> 매거진 중에서
"이야기를 사랑하는 12~19세의 창작자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작업을 시작하고 꾸준히 하려면 어떤 환경이 필요할까?"
스스 프로젝트에 투자한 씨프로그램의 엄윤미 대표는 <미래 학교> 책을 통해 배움이 저절로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며 특히나 다음 세대에게는 유연한 공간에서 세상과 맞닿은 배움을 주도적으로 추구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미래를 살아갈 다음 세대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고민하는 제3의 어른들이 큐레이팅 한 이 공간은 오늘을 딛고 서있는 청소년들에게 학교 밖의 "새로운 놀이 환경"을 넓혀주고자 탄생했다.
화창했던 화요일 오후,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한 스스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곳이었다. 무엇이든 떠올리기만 하면 뚝딱하고 나타날 것 같은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마음껏 자세를 취하고,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마루가 눈에 들어왔다. 나선형 모양의 마루에 저벅저벅 걸어가 앉아본다. 마음 같아서는 두 다리를 올려 뻗어보고도 싶지만 '아차, 나는 어른이지'하는 생각이 들어 말았다. 두 다리로 향해있던 시선을 거두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 공간이 전혀 낯설지 않다. 보통 내가 처음 방문하는 곳에서 느끼는 어색함이 전혀 없다. 아마도 공간 곳곳에 전시된 10대 청소년 창작자의 작품들에서 내 어린 시절의 호기심을 만났기 때문인듯하다. 한때 많은 이야기를 품었던 나의 소녀 감성이 피어나는지 마음 한편이 간질간질하다.
이것저것 들고 온 것들을 마루에 올려두고, 그다음으로 시선이 향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 구역과 구역 사이에는 경계라던지 문턱이 없어서 마음껏 드나들 수 있는데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이곳에서 여러 번 걸려 넘어졌을 것 같다. 아래를 내려다볼 겨를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스스에서 만난 것들
1. 경계가 없는 공간
수많은 손길이 오간듯한 책상을 지나 첫 번째로 도착한 구역은 영상 촬영이 이뤄지는 공간과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재료바였다.
"재료바"라고 불리는 이 공간은 스스를 찾는 10대 청소년 창작자(이하 스스러)가 떠올리고 기획한 이야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험해보는 공간이다. 세심하게 큐레이션 된 재료들만큼 인상 깊은 것은 공간 이용 수칙이다. 일반적으로 이용 수칙이라는 것은 기물을 제공하는 제공자가 일방적으로 만들어서 공표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재료바의 이용 수칙은 스스러에 의해 만들어졌다. 재료바를 직접 사용해 본 스스러가 자신이 느낀 불편함이나 불필요함들을 개선하기 위해 혹은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 공간을 사용할 미래의 스스러에게 보내는 문구들이 재치 있다.
재료바의 맞은편에는 10대 청소년들이 쉽게 마련하기 힘든 도구들이 갖춰져 있다. 영상 촬영과 송출이 가능한 기기들이 그 예시다. 이 영상 촬영 공간은 스스러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며 스스러는 원하는 시간만큼 머물 수 있다. 물론 이곳에는 흔히 영상 촬영하면 떠올리는 두껍고 무거운 방음벽이 없다. 공감과 협업을 장려하는 열린 공간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100% 완성된 모습을 무대에서 단 한번 뽐내기 위해 방구석에 틀어박혀 피아노 연습을 하고, 제한에 길들여지기를 자처한 십대를 보낸 나에게는 이 협업의 산 현장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2. 멀티 콘텐츠
경계가 없다는 자유로움은 이곳을 방문한 스스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기획, 창작, 편집, 그리고 발행까지 이뤄낼 수 있도록 장려한다. 아직 구상 중인 이야기가 없다면 스스에 마련된 테마별 셀렉션과 멀티 포맷의 콘텐츠를 이용하면 된다. 다양한 책은 물론 갖은 영상물을 탐색하며 내 안에 잠재된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
또한 스스에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경우 이를 협업으로 풀어내기 위하여 전문가를 모셔온다.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에게 더 많이 다가가기 위해 사전 접수를 받고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하는 전문가와의 만남은 스스러가 주체가 되어 질문을 하고 전문가를 통해 현장의 경험을 배워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스스러들이 수동적인 청취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대화의 참여자로 참가하며 전문가와의 협업으로 상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콘텐츠의 활용을 통해 실제로 완성된 스스러들의 작품은 스스 안 곳곳에 전시된다. 원하면 작품 사진을 찍어서 남길 수도 있다. 크고 작은 아이디어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 만큼 귀하게 진열되어서 다른 창작자들과 공유될 수 있다는 점이 멋지다. 물론 스스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제한된 공간에 늘어나는 작품들을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 세상에 소중한 물건으로 보관되는 자신의 작품이 있다는 사실은 청소년 창작자들에게 큰 감동을 줄 것 같다.
3. 사람 (스스 운영자)
마지막으로 스스에는 궁금한 것을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는 다정한 조력자(스스 운영자)가 상주한다. 다수의 원활한 통제와 통솔을 위해 Do 보다 Don't을 더 많이 외치게 되는 학교 시스템과는 달리 스스의 운영자들은 개입에 앞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들은 스스 안에서 운영자라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발견하고, 개선해 나가는 제3의 어른이다. 스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설계하는 그들은 매니저라 불리며 '놀이 PLAY'를 새롭게 정의하고, 스스 안에서 놀이의 확장을 통해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주체성을 키울 수 있도록 이끈다. 그들에게 미래를 이끌어 나갈 성공한 인재란 단순히 돈을 잘 버는 사람이 아니라 탐험을 즐기고, 공감과 협업의 방법을 통해 스스로 떠올린 것을 이뤄낼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스 방문을 마치고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는 스스 예약을 스킵하고, 12-19세도 아니면서 무려 초대를 받아 다녀올 수 있었던 스토리 스튜디오. 이곳은 오랜 시간의 연구와 조사를 거쳐 탄생한 작업실인 만큼 공간, 콘텐츠, 사람까지 완벽한 3박자를 이루고 있었다. 앞으로 스스가 가진 역량이 사회에 미치게 될 영향이 기대된다.
방문 예약하기: 클릭
스토리 스튜디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hello_storystudio/
<참고>
https://brunch.co.kr/magazine/storystudio
https://brunch.co.kr/@weseesaw/3
https://brunch.co.kr/@weseesaw/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