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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Apr 12. 2022

얼음의 온도

스물세 번째 시

2022. 2. 8. (화)

허연, '얼음의 온도'
허연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문학과 지성사, 2012)> 중에서


[얼음의 온도]


얼음을 나르는 사람들은 얼음의 온도를 잘 잊고, 대장장이는 불의 온도를 잘 잊는다. 누군가에게 몰입하는 일. 얼어붙거나 불에 타는 일. 천년을 거듭해도 온도를 잊는 일. 그런 일.



돌아보니 순수하게 몰입이 가능한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른들이 "좋을 때다-"라고 말하던 그런 시간들. 나중에 조금 후회가 되더라도, 그런 희한하고 뜨거운 에너지가 꽃처럼 피어있는 시절을 지나고 있다면 그 시간을 미친 사람처럼 즐겨야 하는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야 제때 알맞게 자랄 수 있다고요.


<집 나간 의욕을 찾습니다>를 쓰고 그리신 김파카 작가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나 답해야 하는 인생의 질문이 있는 거다. 성실히 그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인생은 언제고 다시 후진하게 된다." 중2병도 제때 오는 게 복이라고, 그때그때 몰입할 질문을 찾고, 몰입할 대상을 찾는 것은 그러므로 중요한 일이고 삶의 축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몰입, 즉 온도를 잊는 일이 꼭 어리고 싱그러운 영혼에게만 주어진 축복이라고 오해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집 나간 의욕을 찾습니다>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삽화입니다. 직업이 몰입의 대상이 되는 것도 참 축복이죠. ©kimpaca


살면서 내가 몰입해 왔던 대상들, 지금 몰입하는 대상들을 떠올려보니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만큼 기뻤고 그만큼 슬펐던 건, 그 안에서 온도를 잊을 만큼 충분히 얼어붙거나 불에 탔기에 그랬던 것 같아요. 후회가 남더라도 후회 없이 타보는 것. 이게 모순 같지만 모순은 아닌 문장이라는 걸 이 나이가 되니 알겠습니다.


같은 필사 모임에 계신 분께서는 이틀 사이에 세 아이가 모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내가 아프지 않은 게 나를 위해서 다행인 게 아니라 아이들을 돌볼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것, 이런 마음이 몰입이고 사랑이구나,' 그걸 알겠다고 하시더군요. 얼음의 온도를 잊고 불의 온도를 잊으며, 나 자신 말고 누군가에게 몰입하는 것을 생각하며 울컥했다고요. 추운 날씨에 추위를 잊고, 더운 방호복 속에서 더위를 잊고, 감염의 두려움을 잊고, 자신을 잊고, 맡은 일에 몰입하는 많은 의료진들 덕분에 내가 멀쩡히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감사의 말씀도 전하셨습니다.


그동안 저는 몰입의 순간이라는 건 삶이라는 꽃송이 안의 꿀 같은 순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분의 단상을 읽으니 몰입의 대상이 고통이나 수고가 될 수도 있다는 뭉클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고통에도 사랑의 마음으로 몰입할 수 있고, 수고에도 사명감으로 몰입할 수 있다는 것.


정재찬 교수님께서 이 시를 소개하면서 <법구경>의 구절을 얹어 주신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한평생 다하도록 현명한 이를 가까이 섬겨도 참다운 법을 깨닫지 못한다. 국자가 국 맛을 모르듯이.” 멀리 떨어진 혀는 국 맛을 알아도 늘 가까이 있는 국자는 그 맛을 모르게 되는 이치. 몰입은 대체로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거리를 감각하고 긴장을 느끼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죠. 몰입의 축복 속에서 행여 마비되는 일은 없도록, 감각 없는 굳은살을 키우지 않도록, 이제는 지혜롭게 몰입하는 법을 연습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몰입하고 계신가요.

삶이 꼭 몰입의 연속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또 몰입의 대상이 꼭 거창한 것이어야 할 필요도 없지만, 이 짧은 시를 보면서 내 몰입의 과거와 현재를 더듬어보고 미래를 펼쳐보는 건 꽤 몰입할 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라고 이 시에 대한 단상을 2월에 써놓았었는데 말이죠.


글을 발행하려고 오랜만에 시를 다시 보니, 최근 뒤늦게 <겨울왕국>에 빠진 저희 집 꼬맹이들 (이놈들에게 <겨울왕국> 버전의 모노폴리 게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라는 멜로디와 가사가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군요.

그 유명한 '레리꼬' 노래의 마지막 라인이죠. 노래에 두 번 나옵니다. 한 번은 엘사가 두르고 있던 망토를 후련한 표정으로 바람에 휙 날려 보내는 장면에 나오고, 두 번째로는 곡을 끝내기 직전에 선언처럼 등장합니다. 눈썹 한쪽을 올리며 아주 시니컬하게 저 문장을 뱉고서는 확 뒤돌아 얼음의 문을 쾅 닫아버리죠. 나는 스스로 영광된 고립을 택할 테니 그 누구도 이곳에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며.

©Disney

엘사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차가움의 감옥에 갇혔던 가련한 죄수'에서 '차가움 왕국의 빛나는 여왕'으로 스스로를 해방시킵니다. 온도는 그대로지만, 스스로 차가움을 선택하는 자에게서 오는 얼음 같은 단호함이 엘사를 눈부시게 치장합니다.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이 문장은 사랑받으려고 내가 아닌 모습을 견디기보다는, 미움받더라도 나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서릿발 같은 선언입니다.


지난번에 서평으로 소개해 드린 이윤주 작가님이 "좀 다듬고 덧대서 책에 싣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글"이라면서 "레리꼬가 그렇게 아름다운 장면인 줄을, 나는 정말로 몰랐다"라고 쓰신 글이 있습니다. 그 글은 표현도 주제도 너무 아름다워서, 다음에 꼭 어느 책에 아름답게 들어앉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레리꼬가 그렇게 아름다운 장면인 줄을, 나는 정말로 몰랐다"에 진심으로 동의하면서, 온도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합니다.


원래 디즈니 영화 속 노래들은 인물의 변화를 극적으로 담는 기능을 자주 수행하는 편인데, <겨울왕국>의 '레리꼬'만큼 주인공의 내면과 외면이 폭발적으로 변하는 노래가 일찍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라는 주문을 시작으로 망토를 날려 보낸 엘사는, 왕관을 벗어던지고 단정히 빗어 올렸던 머리를 헝클어 풀어헤치며 몸매를 드러내는 하늘하늘한 드레스로 (그것도 헐벗은 오프숄더로!) 갈아입고, 정말 추위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복장으로 스크린 너머로 지켜보는 저 같은 수족냉증인의 오한을 불러일으킵니다. 추워서 소름 돋고 너무 매혹적이어서 소름 돋는 장면. 아찔한 힐을 신은 엘사의 이 고혹적인 걸음걸이를 <겨울왕국 2>에서 올라프가 제스처 게임에서 재현하는데, 저는 그걸 보고 웃겨 죽을 뻔했습니다.


단순히 머리나 복장의 변화뿐 아니라 표정 변화가 압권입니다. 엘사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남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외롭고 두려운 인간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고독과 해방감을 만끽하는 치명적 여성으로 변신하는데, 1절과 2절 사이에 표현되는 엘사 내면과 외면의 변화는 단연코 이 애니메이션의 백미입니다. 책임감과 도덕률에 짓눌려 있던 인간이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폭발력을 발휘할 때의 치명적인 황홀감. 처음에는 멈칫거리기도 하고 불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점차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며 힘을 팡팡 쏘아대는 엘사의 표정과 동작 변화는 정말 연기대상을 주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한 인간 안의 다층적인 감정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고백하자면 "I'm free!" 뒤에 "Let it Go!"를 외치며 환한 얼굴로 달려가는 엘사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 비루한 마음의 소유자는 그만 눈물을 줄줄 흘리고 말았습니다. 부끄럽네요.)

하지만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라는 마지막 문장이 있어 우리는 엘사가 그저 억누르고만 살았던 본연의 힘을 발산하는 즐거움만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그늘도 스스로 껴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난 원래 차가운 사람이야. 내가 마냥 선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쯤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이렇게 태어났는 걸.


이것은 무감각의 선언입니다. 인간 사이의 따뜻한 교류도 필요 없고, 책임감이나 도덕감에도 무감각해질 거라는 선언. (노래 중간에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라는 가사도 들어있죠.) 나를 차가운 사람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고, 그게 나라고, 나란 인간은 이 얼얼한 차가움 속에서 얼음의 온도를 잊을 때 진정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 다시 말해서 엘사는 살아있음을 감각하기 위해 무감각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겨울왕국>은 그야말로 온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차갑다는 건 신체적으로 느끼는 추위의 뜻도 있지만 마음이 차갑다는 뜻으로도 쓰이죠. 신체적 차가움과 마음의 차가움 사이의 미묘한 관계가 <겨울왕국>의 모든 서사를 지배합니다. 엘사는 추위와 얼음과 눈을 만들어내는 능력 때문에 다른 이들을 해칠까 봐, 꼬마 때부터 자신의 힘을 억누르고 감추며 "느끼지 말고(don't feel)" 살도록 "사랑의 억압"을 받아온 인물입니다. 즉 온도 때문에 고립되었던 인간이죠. 사람이란 건 따뜻해야 하니까, 사랑이란 건 따뜻해야 하는 거니까, 엘사는 따뜻한 마음으로 차가움을 억누르며 차갑게 갇혀 자라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를 억압하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요. 그녀의 차가운 능력이 세상 앞에 발현되는 것 역시 동생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감정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 내면에서 불과 얼음은 종이   차이죠. 마음을 불로 지지면 희한하게도 얼음이 생성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음이 다시 불을 만나면 어쩔  모르고 녹아 눈물이 되기도 하고요. 사랑이 얼음을 만들고,  사랑이 얼음을 녹인다는  희한한 진리.   후지게 말하면 원래 인생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마음이 얼었다 녹았다 하며 사는 거라는, 왠지 목욕탕에 월정액 쿠폰 끊어서 다니는 아줌마 같은 소리.   


이 깜찍한 애니메이션은 "얼음의 온도를 잊는 일"의 두 가지 의미를 보여 줍니다.
엘사를 통해, 그리고 올라프를 통해서요.

엘사가 얼음의 온도를 잊는 일, 즉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라는 엘사의 선언은 세상이 정해놓은 온도의 법칙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게 몰입하는 일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본연의 내가 되는 대신 타인과의 따뜻한 감정 교류를 포기하고 살겠다며 문을 쾅 닫아버리는 엘사의 모습에서 과연 진정한 사랑이라는 건 꼭 타인을 향해야 하는 것일까,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있는 것이죠. 우리는 왜 사랑이라는 감정을 자동적으로 타인을 향해 돌려놓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왜 꼭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엘사가 얼음의 온도를 잊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건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차가운 깨달음을 줍니다. 좀 차가운 인간이 되는 것도 존중받을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를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면. 나 자신을 녹아 없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

 

올라프는 눈사람이면서 여름을 갈망하는 아이러니를 가진, 존재와 발상 자체가 귀엽기 그지없는 녀석입니다. 여름에 대한 세레나데를 부르는 올라프를 보고 있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누가 쟤한테 얘기 좀 해줘야 할 것 같은데.." 하는 크리스토프의 마음이 됩니다. 올라프는 차가운 세상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온도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지요. 이를테면 "The heat never bothers me anyway"의 철학을 가졌다고 할까요. 내가 녹아 없어지더라도 나는 얼음의 온도를 잊고 여름을 즐겨보고 싶어. 본연의 나도 좋지만 나는 다른 세상의 다른 온도를 느껴보고 싶어. 내가 없어지더라도 너를 꼭 안아보고 싶어. 엘사가 만들어낸 눈사람이 이렇게 정반대의 철학으로 따스함을 주는 것을 보면서 "얼음의 온도를 잊는 일"의 다른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다른 온도에 몸을 던지고, 그 온도에 젖어 나 자신을 잊어보는 일.


글만 썼다 하면 길어지는 지병 때문에 짧게만 덧붙이려던 4월의 단상이 2월의 단상을 파묻을 기세로군요. 얼음에 그만 몰입하고 따뜻한 차 한 잔 우려서 현실 세계의 봄 온도를 느끼러 가야겠습니다. (드디어 독일에도 봄이..!)


오늘 여러분의 마음의 온도가 궁금합니다.

냉탕인가요 온탕인가요.
오늘의 나는 엘사 쪽인가요, 올라프 쪽인가요.    




+
본문에 등장한 이윤주 작가님의 글.

실로 사랑받을 만한 글입니다.

https://brunch.co.kr/@jogeum/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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