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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Mar 15. 2022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강연 홍보)

스물두 번째 시

2022. 3. 2.

최승자,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최승자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중에서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나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

……

아 썅! (왜 안 떨어지지?)




제가 단편적으로 들여다본 최승자 시인의 시들은 비명이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조금 안 좋은 일이 있었어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대체로 무한 긍정이 샘솟는 저 같은 인간은 쉽게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 같기도 했어요. 그분의 시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곳으로 가라앉아 보려고 노력하지만, 저 아래 무엇인가 있음을 알면서도 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숨이 모자라 다시 수면 위로 둥둥 올라갈 수밖에 없는 해녀 같은 심정을 느낀달까요.


그런데 이 시는 유쾌했어요.


보통 우리는 좋은 것을 꿈꿉니다.

더 나은 미래, 사랑, 금은보화…(음?)

그러면서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맛봅니다. 슬픔이라든가 답답함, 허탈, 좌절, 자기 연민 같은.


그런데 시인은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꿈꾸나 봅니다. 떨어지고 있다고 믿었는데… (말줄임표가 시각적으로 줄어드는 모습부터 웃음이 납니다) 이런 젠장,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마이너스에 마이너스가 만나면 플러스가 되듯, 부정에 부정을 더하면 긍정이 되죠. 부정적인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뒤에는 깊은 차원의, 어쩔 수 없는 긍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이 시를 추락마저도 허용되지 않는 절망감, 온전히 떨어지지도 못하는 답답함 같은 걸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반전을 통한 탄력성, 아이러니를 통한 삶의 긍정 같은 것으로 보고 싶습니다.   


절망이나 추락 같은 단어에는 다소의 인플레가 있는  같기도 해요. 떨어져  적도 으면서 떨어진 것처럼 착각하기도 하고, 그렇게 심하게 떨어진 것도 아닌데 과하게 절망의 옷을 두르기도 하고, 떨어지고 보니 사실   아닌  같기도 하고.


어, 잘 떨어지지도 않네, 썅, 이러면서 살아내는 게 인간이다, 시인은 혹시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얕은 물에서 혼비백산하는 사람처럼, 날개도 없이 추락한다고들 하지만 실은 날개도 필요 없어, 너는 떨어진 게 아니라 그냥 넘어진 거야. 일어날 수 있어. 유난 떨지 말고 그냥 조용히 가던 길 가.


사실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이라는 제목을 붙인 걸로 보아서는, 추락마저도 꿈꿀 수 없을 만큼 지난하고 질긴 삶에 대한 답답함을 그린 시인 것 같긴 합니다. 좌절이든 추락이든 죽음이든, 그 어떤 부정적인 것마저도 ‘꿈꾸는 것’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답답한 삶 말이죠. 하지만 위에도 밝혔듯이 애초에 잘 가라앉지 않는 저 같은 인간은 이 시도 그렇게 긍정의 맛으로 먹고 싶습니다.


새로운 대통령이 뽑혔습니다.

지난 며칠은 누군가에게는 솟아오르는 느낌의 희망찬 시간, 누군가에게는 떨어져 내리는  답답한 시간이 되었겠지요. 이도 저도 아닌 덤덤한 마음가짐의 소유자들도 계셨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국가 지도자의 당선이 주는 소회라는  어떤 방식으로든 있었을  같아요. 저는 꿈을   있는 5, 답답하지 않은 5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이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최승자 시인의  " !" 힘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 우리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에 품는다면, 모두가  같이 위를   있지 않을까요.


+

저 사실 저 쌍시옷 단어를 글자로 써본 게 제 기억으론 처음이라 되게 설레었어요(왜).
저 되게 곱게 살았나 봅니다.



잠시 홍보 좀 하고 가겠습니다.


3월 23일 수요일, 한국 시간으로 오후 7시에 서울대 법학연구소 법이론연구센터에서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중 한 챕터인 클림트와 슈클라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편히 오셔도 된다고 해요. 지난번 연세대 강의를 안타깝게 (그럴 리가) 놓치셨던 분들이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가신청을 하실 수 있는 링크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신청 양식을 작성해주시면 Zoom 접속 정보를 개별적으로 보내드린다고 하네요.

https://bit.ly/legaltheory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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