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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Mar 01. 2022

반성

스물한 번째 시

2022. 1. 25.

함민복, ‘반성'
함민복 동시집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 중에서


[반성]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저는 함민복 선생님의 시들을 좋아합니다. 시집 제목부터 마음에 예쁜 곡선으로 착 닿아와 우리 입모양을 작은 곡선으로 만들죠. 이 시도 곡선입니다. 직선으로 주장하거나 꾸짖지 않고, 곡선으로 부드럽고 둥글게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렇게 간결하고 소박하게 생명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담다니. 그것도 동시로 아이들의 마음에 가만히 담아주시니 참 좋죠. 사실 아이들에게 건네는 어른의 둥그런 지혜가 아니라, 정말로 아이의 동그란 마음을 깨닫고 그걸 옮기신 건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들은 어른보다 생명의 무게를 더 진지하고 무겁게 받아들이곤 하죠. 눈높이가 우리보다 낮아서 그런 걸까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어른들과 달리, 작은 동물들과 동등한 마음 높이를 가지고 따뜻하게 눈을 맞춰주곤 합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뭔가를 알려줘야 할 게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에서 어른들이 배워야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최근의 일입니다. 둘째가 저를 부르더라고요. 가보니 레고 상자에 아주 조그만 연두색 벌레가 꼼틀대며 붙어 있었습니다.

"얘가 왜 여기 있지? 엄마가 데려갈게."

종이에 올려서 테라스로 내보내려고 문을 여는 순간, 아이가 급하게 외치더군요.

"엄마, 벌레 춥게 하지 !"


그래서 저는 벌레를 다시 데리고 들어와서 대체 얘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바질 화분 속 잎사귀에 안착시켰습니다. 그렇게 훅, 직선으로 단순하게 밖으로 나갔던 어른의 마음에 커브를 틀어 온 집안을 따뜻한 곡선으로 배회하게 만든 건 동그란 아이의 동그란 마음이었습니다. 벌레를 균과 동일시하는 어른과 달리, 한겨울에 밖으로 나가면 벌레가 추울까봐 걱정하는 아이의 마음이 꼭 이 시를 닮았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마음으로 세상이 꽉 차 있다면 세상엔 전쟁 같은 것도 없을 텐데요.

  


시를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삶의 진리며 철학은 이렇게 쉬운 모습으로 낮은 곳에서 우리를 향해 웃고 있는데, 우리는 늘 난해한 문장, 멋있는 선언 같을 찾느라 목을 빼고 위를 올려다보네요.


저는 어렸을 때 강아지들과 뒹굴면서 컸습니다. 어렸을 때는 언니들이랑 남동생까지 모두 한 방에서 쪼르륵 음표처럼 누워 잤는데, 저희가 늦잠을 자면 엄마랑 아빠가 눈도 못 뜨고 꼬물거리는 강아지들을 데려다가 자고 있는 저희 얼굴 위에 한 마리씩 올려놓곤 했어요. 따뜻하게 꼬물거리는 느낌에 꼬롬한 냄새, 낑낑거리는 소리. 무엇인가 어마어마하게 귀여운 것이 지금 내 얼굴 위에 놓여있다는 느낌. 아주 성능 좋은 생체 알람이었죠. 제 첫 책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에도 썼던 내용인데, 저는 엄마가 젖병에 분유를 타 주시면 마당으로 들고나가 나 한 입, 강아지 한 입, 이렇게 나눠먹으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아니 뭐라고요 엄마.) 어쨌든 그래서인지 조금 상한 것 같은 음식을 함께 먹어도 저는 탈이 잘 안 나는 편입니다. 균보다 제가 더 더러워서 그런가 봐요. 아니면 강아지와 친구 하면서 균과도 친구가 된 걸까요.


지금도 곁에 강아지가 있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어른이 되니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가 훅 커져버려서 마음을 못 정하고 있습니다. 큰아이는 사회 시간에 한 학기 내내 고슴도치에 대해 배우더니 반려동물로 고슴도치를 키우고 싶다고 하고(그러나 지렁이를 먹는다고 해서 제 마음속에서 급히 삭제. 주변에 아는 채식주의자 고슴도치 있으면 연락 주세요), 작은아이는 강아지가 있으면 좋겠는데 응가는 엄마가 치웠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너희들의 응가에서 해방된 지 얼마 안 되는 엄마로서는 조금 생각해 볼 문제라고 답했습니다.


봄에 출간할 새 책 원고에 ‘만물의 영장이 아닌 만물의 친구로 자랐으면’이라는 제목의 챕터가 있어요. 이 시와 함께 놓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조금 옮겨 놓겠습니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만물의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스스로가 부여한 자리, 시상대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만으로 꽤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을까. 우리는 광활한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임을 깨닫고 겸허해졌으면 좋겠다. 주변의 인간들에게 친절한 만큼, 주변의 동물에게도 식물에게도 다정했으면 좋겠다. 나는 나무에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나의 아이들이 삼촌처럼 몸을 내어주는 나무들에게 고마워할 줄 알았으면 좋겠고, 열심히 지나가고 있는 벌레를 아무 이유 없이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라브 하우게의 시 <비 오는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서다>에서처럼,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오랜 우정을 쌓아가는 나무가 한 그루씩 있으면 좋겠다. 넓은 모자처럼 비를 가려주고, 비 오는 세상을 같이 바라보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나무. ‘친구 나무’의 존재라는 건 생각만 해도 참 따뜻하다. 나무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이 모든 세상이 우리에게 따뜻하고 고마운 존재들이다. 우리에겐 더운 여름에 풍덩 몸을 담글 맑은 호수가 있어 주어서 고맙고, 황홀한 윤슬이 아름다운 강이 흘러주어서 좋고, 모래사장에 앉아 있는 나에게 왔다 갔다 장난치며 말을 거는 파도가 있어 기쁘다. 부지런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우리의 마음도 배 속도 채워주는 식물들이 있어 다행이고,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웃음도 주고 때로는 살도 내어주는 동물들이 있어 미안하고 고맙다. 우리는 같이 살아야 한다.”





곧 나올 새 책 제목은 <아이라는 숲>입니다.

제목 선정에 얽힌 비화는 아래에 붙인 제 페이스북 포스팅을 참고하시고요. (출판사에서 망나니 저자를 달래느라 늘 애쓰시고 계십니다.) 이 시를 읽고 보니 제가 직선으로 툭 뱉은 제목을 반려하시고 이렇게 고운, 여러 겹의 곡선 제목으로 골라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3월 말에서 4월 초, 세상의 숲이 조금씩 깨어날 무렵에 만나실 수 있습니다. 아무도 안 물어봤지만 열심히 알려드리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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