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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Jun 13. 2019

[놀이] 달걀 껍데기 깨기

아이들은 달걀을 굉장히 깨 보고 싶어 합니다.

가끔 깨 보라고 주기는 하는데, 그릇에 달걀 반 껍질 반 버무려 넣어주시곤 하죠.

그것도 와사삭, 껍질을 어찌나 조각조각 부숴 놓는지 말입니다.

그럼 엄마는 마치 쌀 한 자루와 조 한 자루를 섞어 놓고 다시 원래대로 나눠 자루에 넣으라는 미션을 받은 동화 속 주인공처럼, 젓가락을 들고 그 미끄덩거리는 계란 속에서 망할 껍질들을 골라내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달걀을 마음껏 깨 보게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다가, 어떤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어 고안한 놀이입니다.

알이 쏙 빠져나오는 재미는 못 느끼더라도 껍질을 마음껏 때려 부수며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겠죠.
(혹시나 싶어 찾아보니 이런 계란 껍데기 놀이 포스팅이 이미 몇 개 온라인에 있네요. 반갑.)


우선.

달걀 요리를 하셔야 합니다. 흐흐흐.

요리하실 때마다 껍질을 잘 씻어서 (하나 사용할 때마다 놀이 아이템 두 개 획득!) 말려 두시고, 어느 정도 모였다 싶으면 껍질에 사인펜으로 모양을 그려주시거나, 크레파스로 색깔을 표시해 주시거나, 숫자나 글자, 알파벳 등을 씁니다.

그냥 깨도 재밌겠지만 조금 더 놀이답게 만들면 더 재미있으니까요.

이것은 다양한 모양을 그려 넣은 달걀 껍데기들 ⓒ a little teapot

그런 다음 아이들이 쓰는 놀이 탁자에 저런 미술용 놀이매트나 신문지를 깔아 주시고, 달걀 껍데기를 섞어 늘어놓으시면 됩니다. (아이들에게 늘어놓으라고 하면 좋아합니다. 첫째는 조심조심, 깨지 않게 살살 놓지만 힘이 넘치는 둘째는 잡다가 부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몹시 난처한 표정을 짓습니다.)

아이들에게 뿅망치를 쥐어주고 "A는 어디 있어?" "동그라미는 어디 있을까?" "빨간색은 어느 거야?"하고 찾게 한 다음 찾는 사람이 껍질을 깨게 해 주면 되는 아주 간단한 놀이.

실은 저희 집에 알파벳 성애자(5세)가 살고 있습니다 ⓒ a little teapot
만들기 난이도 ★☆☆☆☆
(별 하나도 과분하다)

재료 획득의 어려움 ★☆☆☆☆
(집에 뿅망치가 없을 수 있어서 별 한 개)

아이들의 호응도 ★★★★★
(미친 호응도를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치울 때의 분노 ★★☆☆☆
(밑에 뭐 안 깔고 그냥 하시면 치우실 때 분노 게이지 상승)

가능 연령대: 색깔, 모양이나 숫자를 알기 시작하는 나이부터 추천 (저희 자식 놈들의 경우 두 살 반부터)  

* 저희 집도 뿅망치가 없어서 부엌에서 고기 연하게 두드릴 때 쓰는 망치(meat hammer)를 사용합니다. 으하하.
망치로 내려칠 때의 그 쾌감이 좋은 것 같긴 해도, 뿅망치를 꼭 사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작은 페트병 두 개를 T자로 놓고 테이프로 감아 망치처럼 만들어도 좋을 것 같고, 권투 글러브처럼 수건을 두껍게 주먹에 말아 고무줄로 끼우고 주먹으로 내리쳐도 아마 되게 즐거울 겁니다!


* 잘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작은 조각이 밟히는 경우가 있어서 분노의 별을 두 개 증정했습니다.

처음에는 껍데기 밑에 수건을 깔고 했는데요. 오히려 털어내기가 번거롭더라고요.

와자작 깨지는 느낌을 아이들이 좋아하니 수건보다는 다소 딱딱한 평면이 좋을 것 같아요.
치우기 편하려면 뭘 깔아야 하는데, 신문지도 좋고 저런 매트도 좋습니다. 신문지보다 탄력이 있는 매트는 살짝 구부릴 수 있어 쓰레기통에 버릴 때 더 편해요.  

가장 좋은 것은 이런 얕은 스티로폼 박스입니다. 소리도 크게 안 나고, 치우기도 편하고, 이게 아주 와땁니다.

아이가 100까지 만들어달래서 엄마는 곤란했습니다 ⓒ a little teapot

그런데 테이블에 그냥 늘어놓고 놀아도 생각보다 많이 튀지는 않더라고요. 아이들이 회를 거듭할수록 껍데기를 가운데에 놓고 많이 튀지 않게 조절을 잘하기도 하고(신기했어요!), 멀리 튀어나간 파편이 있으면 냉큼 가서 주우며 낄낄거리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아이들은 마음껏 파편을 튀기는 걸 더 즐거워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집안에 파편이 튀는 것이 싫으시면 마당이나 테라스 같은 곳에 나가서 하셔도 좋겠습니다.


* 의도치 않은 쓰레기 줄이기 기능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완전 박살을 내 주기 때문에 쓰레기 부피가 현저히 줄어드는 순기능이.

주말에 우리 집에 놀러 온 유치원 친구도, 집에 돌아가서는 이 놀이가 제일 재미있었다고 우리도 하자고 엄마를 졸랐다고 합니다 :-) ⓒ a little teapot

그럼 즐겨주세요!  



참고로 저는 원래 달걀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삶은 달걀에 종종 그림을 그려서 주곤 하는데, 받는 사람들이 대체로 좋아하더라고요 :-)

어린이집에 보내는 도시락. 다음 학기부터는 어린이집 급식을 먹기로 결정. 엄마 신남. ⓒ a little teapot


이렇게 저희 아이들 이름이 등장하네요.


첫째는 순리를 그르치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고 소중한 것들을 많이 지어(create) 이 세상을 더 재미있고 신나는 곳으로 만들라고 지음이고요, 둘째는 깨어지기 쉬운 이 세상에서 마음과 마음을, 생각과 생각을, 사람과 사람을 따뜻하게 이어주는(connect) 사람이 되라고 이음이입니다. 두 아이들이 아름답게 서로 이어져, 함께 근사한 것들을 많이 지어가는 좋은 친구로 자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만, 독일에 와서 둘 다 이음이가 되었습니다(독일에서는 J를 Y처럼 발음합니다). 망했어요.

(와! 망했어!)


공항에서 입국 심사대를 통과할 때마다 "이음...? 운트(and) 이... 음?" 하면서 애들 이름을 왜 이렇게 지었냐고 물으시는데.. 낸들 우리가 독일에 살 줄 알았나요. 허허허.
둘 다 이음이인 건 차라리 낫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제 이름입니다.

저는 독일에 와서 인민(Jinmin)이 되었습니다.  

정당에라도 가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호응이 좋았던 여름 놀이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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