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하는 게 너무 힘든 너에게

루소 아저씨가

by 이진민

이모네 철학 상담소 9월호 원고입니다. 사실 저는 발표할 때는 거의 긴장이 없는 편이고, 사적인 대화를 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스몰 토크를 누가 스몰 토크라고 했을까요, 매우 스몰하지 않은데...)


[이모네 철학 상담소 9월호] 발표하는 게 너무 힘든 너에게: 루소 아저씨가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게 너무 떨려서 발표를 못하겠어요. 내향적이고 소심한 제 성격이 싫어요.


모두 여름방학을 즐겁게 보냈나요? 이제는 빵처럼 익은 얼굴로 다시 교실에 모일 시간입니다. 발표를 어려워하는 친구들에게는 “방학을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얘기해 볼까요?”라는 선생님 말씀이 지옥으로의 초대장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소소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발표는 평가가 뒤따르지 않아 그래도 좀 낫지요. 앞에 나가서 내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해야 하는 데다가 그 발표에 점수가 매겨진다면, 너무 떨려서 나도 모르게 아기염소 소리가 나기도 할 거예요. 멋지게 발표를 잘하는 친구를 보면 부럽고, 주변 어른들도 자신감 있고 외향적인 아이를 선호하는 것 같아 스스로가 더 작게 느껴지곤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질까 싶어 밝히자면 저는 무척 내향적인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는 말수가 극도로 적어져서, 집에 가끔 놀러 오던 이모가 제 목소리 들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였어요. 자라면서 성격이 좀 바뀌기는 했지만 지금도 말을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닙니다. 드라큘라가 마늘과 햇빛을 대할 때의 심정을 저는 제 휴대폰이 울릴 때 느끼곤 하죠. 말보다는 글이 편하기에, 전화가 걸려오면 그게 누구든 일단 심장이 철렁하거든요. (용건이 있으면 제발 문자로 좀…)

아아악

하지만 저는 남들 앞에서 별 어려움 없이 강의도 하고, 북토크 같은 것도 곧잘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제가 그럴 수 있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덧붙여 하나씩 밝혀 볼게요. 일단은 내향적이라고 해서 모두 소심한 것도 아니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꼭 발표를 잘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내향적이지만 대범한 사람도 있고, 자신감만 있을 뿐 알맹이가 없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발표 앞에서 한없이 작은 아기염소가 되는 친구들에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긴장과 불안을 없애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겪는 문제는, 없앨 수 없는 것을 없애려고 하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전에 한 번 소개한 바 있는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세상 모든 인간이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살고 있으며,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합니다. “떨지 말고 잘해!”라는 말을 듣는다고 떨림이 없어지나요. 오히려 떨지 말자고 마음먹으면 그렇게 마음먹는 순간부터 심장이 더 크게 뛰는 것 같죠. (자율신경계의 이 도움 안 되는 자율성이란!) 그러니까 ‘나는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걸까’ 하고 자책하지 않아도 좋아요. 긴장을 하지 않는 사람이 희한한 겁니다.

그랬구나.....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무대 체질’이라는 건 그 긴장감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긴장을 전혀 안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가수들이 오디션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평생 무대에 올라 수많은 관객을 만난 베테랑 가수도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예외 없이 다소 예민해지거나 불안해하잖아요. 긴장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떨지 말자’ 보다는 ‘떨어도 괜찮아’가 도움이 될 거예요. 덜덜 떠느라 발표를 못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떨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하고 발표를 마치면 그걸로 훌륭하다는 말입니다. 어렵고 긴장된다고 해서 피하지 않고, 어쨌든 그것을 마주해서 끝냈다는 것이 중요하죠. 피하면 당장의 불안은 가라앉겠지만 이후에는 불안이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한 번 피했다고 영원히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게임에서도 주인공이 도망 다니기만 하면 게임이 진행될 수 없겠죠? 어렵고 힘든 일을 계속 만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마음을 가다듬고 잘 준비해서 마주해야겠죠. 저 같은 경우에는 긴장은 하지만 떨지 않는 편인데, 인간은 누구나 긴장을 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좀 편하게 해 줍니다.


두 번째는 발표의 내용에 집중하는 겁니다. 외면보다는 내면이, 포장보다는 알맹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꼭 철학자들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죠? 뭐든 종합하는데 관심이 많았던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은 외면이 곧 내면이고 내면은 곧 외면이라고 믿었지만, 그로부터 약 40년 후에 태어난 키르케고르는 외면성과 내면성이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내용도 좋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도 효과적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전달하는 행위 자체에 긴장이 따른다면 무엇을 전달할지 그 내용에 정성을 쏟아 보세요. 사실 평가하는 입장에서는, 말만 번지르르하고 내용은 없는 발표보다 긴장해서 많이 떨더라도 정성껏 준비해서 독특하거나 알찬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에게 훨씬 마음이 가는 법입니다. 선생님들은 다 알고 계세요. 저에게도 처음 유학을 가서 영어가 자유롭지 않던 때에, “나는 네가 말수는 적지만 누구보다 훌륭한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라며 제 노력을 알아주고 격려해 주던 선생님들이 계셨답니다. 덕분에 남들 앞에서 의견을 얘기하는 것이 조금 더 편해졌고요. 자신감 있고 외향적인 사람만이 꼭 좋은 발표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기억해 두면 좋을 거예요.

그때 그 선생님. 성함마저 미소를 부르는 Prof. Smiley :)

세 번째로,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최인철 교수가 쓴 <프레임>에 ‘조명효과’라는 심리현상이 나오는데, 우리는 마치 연예인처럼 세상이 나에게 조명을 비추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타인의 시선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쓴다는 말이죠. 불안이 생기는 것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생각하기 때문인데, 발표를 보는 사람들은 내 실수나 미숙한 부분을 의외로 잘 캐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일에 관심이 별로 없어요. 여러분은 오늘 입고 나온 옷에 김칫국물이 묻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루 종일 안절부절못하겠지만, 남들은 자기 옷에 묻은 케첩 자국 신경 쓰느라 바쁩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는 그리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인데, 이들의 철학에서는 나에게 달린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구별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우리는 희한하게도 우리가 잘 통제할 수 있는 것에는 정신적 에너지를 별로 쓰지 않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많이 쏟는 경향이 있어요. 내가 준비할 수 있는 발표 내용에 신경을 더 쓰면 좋은데,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타인의 평가에 더 집착하고 지레 걱정하는 겁니다. 통제할 수 없으니 거기에서 불안이 더 커지는 것이죠.


혹시 ‘나’라는 사람이 너무나 크게 생각된다면,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세요. 우리는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티끌에 가깝습니다. 티끌 하나가 발표 좀 실수했다고 해서 우주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외계인이 비웃을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내 머리 위 가상의 조명을 끄고, 넓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을 편안하고 겸허하게 만들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에게 서투를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발표를 잘 못해도 괜찮아요. 그걸 연습하고 배우기 위해 교실이 있고 발표의 기회가 있는걸요. 처음부터 걷기를 생략하고 뛰어다니는 사람은 없어요. 아기 때부터 넘어지면서 비틀비틀 내디딘 발걸음이 오늘날의 잽싼 걸음을 만든 거죠. 그러니 조금 실수해도 좋고 부족해도 좋습니다. 다음에 더 잘하면 돼요. 서투름은 잘못이나 실패가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더 특별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귀한 특징이에요. 특히 여러분 같은 학생에게는 서투를 권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권리라는 사실을 여러분 스스로 마음 깊이 담아두기 바랍니다. 간혹 주변 어른들이 여러분의 서투름을 탓한다면 그건 어른들이 잘못하는 거예요.

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저는 루소 이름 써보기로 셀프 치매 검사를 합니다 ©강서해

스위스 출신의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인간은 누구나 서툰 존재라는 것을 자신의 철학에 담았습니다. 그는 서투름을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고, 인간을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존재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지요. 루소가 말한 개념 중 ‘적응성(perfectability)’이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가 발전하고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해요. 루소에 따르면 이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는 특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물쭈물해도 좋고 우왕좌왕해도 좋습니다. 현대철학의 포문을 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라고 말했어요. 그러니 나의 이 불안과 혼돈, 두려움은 새로운 가능성의 원천입니다. 거기에서 빛나는 별이 나올 거라고 우리 함께 믿어 볼까요?

BTS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에도 나오는 니체의 그 문장



이모네 철학 상담소는 마지막에 고민 해결을 도와줄 메뉴를 추천하는데, 이걸 고르는 게 늘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었어요. 이번 글에는 라테 아트를 붙였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