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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Dec 31. 2019

<철학하는 엄마>가 제7회 브런치북 대상을 받았습니다

사실은 5일 전에 미리 써 둔 수상 소감 으흣

담당자님 계신 곳이 어디인가요. 계신 곳을 향해 세 번 절하고 싶습니다.

<철학하는 엄마>가 수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12월 19일. 엄마의 생일이었습니다. 병석에 계시는 엄마가 주는 선물 같았습니다. 엄마를 좀 살펴드리고 싶어서 한국에 갔다가,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찾아 들어간 상가 건물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마치 내일 내야 하는 숙제처럼 부랴부랴 만들어 낸 브런치북이었거든요.


결정된 것도 아니고 후보작이라는데, 마음이 주책맞게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습니다. 우리 꼬맹이들이 마음껏 뛰어도 좋을 조그만 우리 집을 알아보러 가는 길이었는데, 타고 있던 차가 슬그머니 둥실 떠오르는 느낌이었어요. 헿.


차창 밖 황량한 독일 시골길이 마음속 햇빛을 머금고 금빛으로 보이려던 찰나, 의식적으로 회의주의를 풀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술사가 되어 데카르트 아저씨라도 소환하자. 바랄 걸 바라야지 인간아, 브런치북 완독자 수가 미적분도 아니고 0에 수렴하던 것을 잊었는가 자네.

정신을 차리십시오 어머니. 의심하고 또 의심하십시오.

그래도 세상 사는데 늘 도움이 되는 비관적 낙관주의가 이번에도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 내가 될 리가 없는데, 그래도 나는 좀 훌륭해서 어쩌지.


다음날 제 브런치 계정에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되고, 웨일북스에서 곧 연락이 갈 거라는 담당자님의 다정한 메일이 오고서야 소환된 데카르트 님을 다시 보내드렸습니다. 저를 철학하는 엄마로 키워주신 엄마께 자랑하고 싶었는데, 속상하게도 엄마랑은 전화 통화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대신 유치원에서 돌아온 두 녀석의 꼬질꼬질한 머리통에 (아니 왜 정수리에 모래가.) 뽀뽀를 하며 생각했습니다. 고마워. 너희들 덕분이야.


브런치에 글 잘 쓰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래도 되는 건가 싶습니다. 이 허접한 인간이 쓴 허접한 글이 과연.

그래도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고래라니.

스스로 부여한 상징성에 힘입어 조그만 자신감을 가져볼까 합니다. 뽑아주신 웨일북스 측에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출판사의 귀여운 고래 로고가, 엄마로서 쓰는 제 글과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게 노력해 볼게요.


육아의 고해 속에서 어푸어푸거리며 읽고 쓰고 소통하고 싶었던 엄마에게 위안과 위로가 되는 플랫폼을 열어준 브런치에 참 고맙습니다. 지난 몇 년간 힘든 일이 많았는데, 글을 쓰는 동안은 참 신나고 행복했거든요. 긴 글 읽기를 버거워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 브런치를 통해 글이라는 매체를 진지하고 귀하게 대하는 많은 분들의 글을 볼 수 있었던 점이 저를 부쩍 키웠던 것 같습니다.


책 한 권이 나온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층 다른 차원의 책임감으로 세상과 소통하게 된다는 기대가, 걱정과 손잡고 몽글몽글 피어납니다. 제 인생은 크게 변할 일이 없어도, 제 책으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변할 일이 생긴다면 가문의 영광일 겁니다. 세상이 새 발의 피(...의 헤모글로빈...)만큼이라도 더 다정해지고, 철학이 여러분들께 조금이라도 더 말랑말랑하게 느껴질 수 있다면요.


올해 4월에 처음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시스템을 잘 몰라서 우왕좌왕할 때, 첫 구독자가 생기던 순간의 그 간질간질한 마음을 기억합니다. 그 마음으로 책을 엮고 또다시 글을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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